6·1 지방선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국회입법조사처가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호 1번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 몫이다. 우리네 투표용지에 기입되는 후보의 순서는 정당의 의석수로 정해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별 의심 없이 자연스레 이 순서를 받아들여 왔다. 

여기서 생길 법한 의문이 있다. 우리가 정한 이 방식은 보편적일까. 다른 나라에서도 이렇게 할까. 후보자들의 순서가 선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국회입법조사처의 허석재·송진미 정치의회팀 입법조사관이 펴낸 ‘투표용지 양식의 불평등성 논란과 쟁점:정당 특권과 기호순번제 문제’는 이런 의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5월 26일, 서울 강남구 대치4동주민센터에 설치된 대치4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소 관계자가 모의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5월 26일, 서울 강남구 대치4동주민센터에 설치된 대치4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소 관계자가 모의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 다른 나라는 어떻게 후보 순서를 정할까

우리네 투표용지 양식은 보편적일까. 그렇지 않다. 보고서는 몇몇 해외의 실례를 보여준다. 미국은 각 주에 따라, 선거유형에 따라 후보자 순서배정방식이 다르다. 연방의원 선거조차 50개 주마다 그 배정방식이 다르고 같은 주 내에서도 선거단위에 따라 다르게 운영된다. 그래도 정당이 후보를 추천하는 연방의회를 기준으로 볼 때 후보자 순서배정방식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단 해당 지역 선거관리당국이 재량권을 갖는 경우가 있다. 현직자 혹은 현직자를 추천한 정당에 순서가 우선 배정되는 경우도 있다. 후보자 성(姓)의 알파벳순으로 배정하는 경우도 있고 추첨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알파벳이나 추첨으로 정한 기호를 투표구별로 순환 배정하기도 한다.

영국은 기호를 부여하지 않고 등록한 후보자의 성(姓)을 기준으로 한 알파벳 순서로 나열한다. 만약 성이 같은 후보가 있다면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나열한다. 

프랑스는 우리와 달리 복수 투표용지를 채택하고 있다. 한 장의 투표용지에 모든 후보가 기입돼 있는 방식이 아니라 각 후보가 각각 자신의 투표용지 인쇄를 담당한다. 만약 5명의 후보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면 유권자가 기표소에 가지고 들어가는 투표용지는 5장이 된다. 유권자는 선택하고자 하는 후보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만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호주 하원 선거의 경우 소선거구 다수대표제 중에서도 선호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 사람을 선택하는 우리 방식과 달리 출마한 후보를 모두 두고 선호하는 순위를 매긴다. 투표 용지의 후보자 순서는 추첨으로 결정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직접 한 명의 후보자 이름 또는 정당의 명칭을 써서 투표함에 넣는 자서식(自書式)을 채택하고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후보자 이름, 중의원 비례대표에서는 정당명, 참의원 비례대표를 뽑을 때는 정당명 혹은 후보자 이름을 직접 쓴다. 
 

■ 투표용지 순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까

용지에 등장하는 후보들의 순서는 선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보고서는 '초두 효과(primacy effect)'를 언급한다. 인지심리학에서 선택 대안이 시각적으로 제시될 경우 첫 순위의 대안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초두 효과라고 부른다. 보고서는 "대통령선거처럼 투표 선택을 위한 정보가 많이 제공되고 유권자 본인이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선거에서는 순서효과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반면,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와 같이 정보량이 적고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선거에서는 순서효과가 커진다"고 지적한다.

만약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선거라면 유권자는 '정당'이라는 단서를 선택에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순서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반면 정당 공천이 배제된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등을 뽑는 선거에서는 순서효과가 커진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국내 연구도 투표용지 게재순서가 득표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후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수록 그 가능성이 커진다고 본다. 보고서는 "이런 맥락에서 가장 주목도가 낮은 기초의원선거에서 순서효과가 두드러질 것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새로 도입된 기초의원 중선거구제를 대상으로 여러 연구가 수행되었는데, 앞 순위에 배정될수록, 같은 선거구에서 ‘가’ 기호를 배정받을수록 당선 확률과 득표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4회 지방선거(2006)부터 제7회 지방선거(2018)까지 있었던 기초의회 중선거구 개표 결과를 보면 기호 '가'의 당선율은 작게는 78.44%, 크게는 93.62%에 달했다.
 

■ 문제 제기는 없었을까

투표용지의 순서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은 그간 있어왔다. 투표용지 후보자 게재순위와 관련된 국내 위헌소송은 지금까지 8차례 제기됐다. 하지만 1996년 다수의석 정당에 대한 우선권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첫 결정이 나온 뒤 지금까지 모든 판결에서는 거의 동일한 결정을 유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회에서 투표용지의 후보자 게재순위와 관련한 입법정책적 시도들이 있었고 그 결과 문제점을 일부 개선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큰 정당에 유리하게 편재해 있는 투표용지의 순서구조를 시정하는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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