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개월 동안 주간조선이 소개한 12명의 청년 정치인(기초의원 후보). (맨아래 왼쪽부터) 손준기·김세종·구자민·전진형·김찬래, (가운데 왼쪽부터) 김윤후·우인철·허승규, (맨위 왼쪽부터) 박한창·손혜영·김한슬·김가영. photo 영상미디어
지난 5개월 동안 주간조선이 소개한 12명의 청년 정치인(기초의원 후보). (맨아래 왼쪽부터) 손준기·김세종·구자민·전진형·김찬래, (가운데 왼쪽부터) 김윤후·우인철·허승규, (맨위 왼쪽부터) 박한창·손혜영·김한슬·김가영. photo 영상미디어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 풍경이 뒤바뀌고 있다. 각 정당 지도부, 지역·당협위원장의 하향식 후보 내리꽂기에서 실제 지역 거주민이자 이웃들의 자발적 선거 출마가 적지 않다. 기존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했던 의사, 변호사, 판사, 회계사 등의 이른바 ‘사’자 전문직만큼이나 자영업자, 회사원, 경단녀 등 주변 직군 종사자들의 선거 도전도 두드러졌다. 과거 기초·광역의원 후보군이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역·당협위원장의 이른바 ‘거수기’ 인사들로 채워졌다면, 지금은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사’를 자처하는 후보들도 눈에 띈다.

이런 변화된 분위기를 주도한 건 다름 아닌 청년 정치인.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총선 및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이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하향되는 등 정계 진출 장벽이 낮아지면서 청년 후보들은 기존 선거판에 또 다른 정치 바람을 몰고 왔다.

주간조선은 지난 1월부터 5개월 동안 비영리단체 ‘뉴웨이즈’가 발굴한 청년 정치인, 즉 기초의원 선거 출마자 12명을 선정·소개하는 기획 연재를 이어온 바 있다. 이들 12명의 선거 출마 배경, 공약만 봐도 후보자들의 면면이 과거와는 달라졌음을 엿볼 수 있다. 일례로 ‘심리상담사’ 출신의 박한창 민주당 후보(서울 강동구 바선거구)는 체계적인 학생 심리 지원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출마를 결심했고, ‘배우’ 출신의 김윤후 국민의힘 후보(서울 노원구 바선거구)는 문화예술인들의 무대 기회를 늘리겠다며 선거에 뛰어들었다. 허승규 녹색당 후보(경북 안동시 마선거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좋아 귀향했는데, 교통문제를 직접 해결해야겠다며 시의원 후보로 나섰다. ‘엔지니어’ 출신 김가영 정의당 후보(서울 마포구 아선거구)는 자신이 다니던 대기업의 부당함에 맞서고자 선거에 출마했다. 이들 12명은 모두 경선 등을 거쳐 현재 소속 정당의 각 선거구 후보로 공천된 상황이다. 주민·지역 밀착형 정책에 기성 정치인과는 차별화된 길을 계획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을 포함한 청년 정치인들이 이번 선거에 대거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엔 개개인의 노력 외에 기존 정치권의 청년 정치 확대 노력이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다. 당초 민주당은 기초·광역의원 후보 30%를 여성·청년에게 할당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국민의힘은 청년들의 정치 입문 장벽을 낮춘다는 취지에서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PPAT) 등을 실시했다. 또 정의당은 청년 후보에게 60% 가산점을 부여했다.

각 당 내부에선 이를 기반으로 한 청년 정치인들의 자발적 연대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에선 ‘민주당에 실망했지만 민주당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모임’이란 수식의 청년 정치인 연대 ‘그린벨트’가 조직돼 현역 민주당 의원들의 지원까지 받아내기도 했다. 정의당에서 지방선거 2030 출마자그룹 ‘넥스트정의당’이 출범한 것도 자발적 연대의 대표적 사례다. 국민의힘에선 지난 3월 지방선거 청년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청년 정치 활성화를 위한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김세종 국민의힘 후보(서울 동대문구 다선거구)는 “지역을 다니다 보면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지방정치에서부터 뛰쳐나와야 한다며 옹호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기성 정치인들과 함께 나이 들며 지켜본 결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평가였다”라고 말했다. 손혜영 민주당 후보(서울 도봉구 다선거구)는 “그러다 보니 실제 청년 세대 후보자들이 적지 않다”며 “기존 선거와 달라진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보여주기식 청년 ‘나’번 공천

이런 분위기는 지난 2018년 7회 지방선거와 오는 8회 지방선거 청년 후보자 출마 비중을 비교·분석한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뉴웨이즈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재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오는 8회 지방선거에 출마한 만 18세 이상 만 39세 이하의 전체 청년 후보자 비중은 9.6%(전체 후보 7601명 중 729명)를 기록했다. 기초·광역의원만 따로 떼서 보면 시도의원 선거에서의 청년 후보 비중은 10.1%, 구시군의원 선거에선 10.5%였다. 지난 7회 지방선거 전체 청년 후보자 비중이 7.0%(9266명 중 652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3%포인트가량 오른 수준이다.

주요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의 전체 청년 후보자 비중은 7.5%에서 12.4%로, 국민의힘은 4.4%에서 10.0%로, 정의당은 21.8%에서 25.0%로 늘었다. 외관상으론 이번 선거가 청년 정치 확대와 관련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다만 선거에 출마한 청년 후보자들 사이에선 질과 내용 면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천 과정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결국 청년 정치인이 불리한 지점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기초의원 선거에선 당을 막론하고 적지 않은 청년 후보들이 ‘가’번이 아닌 ‘나’번을 받으면서 열세에 놓이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2~3인 선거구제를 취하고 있는 기초의원 선거에서 나번 후보는 당선 확률이 극히 낮다. 일부 시도당 위원회에선 이 점을 활용해 현역 의원들에게 나번을 배정해 ‘물갈이’를 시도할 정도다.

주간조선이 앞서 소개한 청년 정치인 12명 중 ‘나’번을 받은 김윤후 국민의힘 후보는 “양당의 가번 후보들은 사실상 당선권에 있다 보니 선거운동을 거의 안 한다. 결국 민주당의 나번 후보와 국민의힘의 나번의 경쟁이다. 문제는 민주당 나번 후보 또한 현역 의원이란 점이다. 경선을 치러 올라왔지만 나번의 청년 후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공정 경쟁 외의 청년 후보 지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지역세가 상대적으로 작은 청년 후보 입장에선 경선 준비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출마 선거구를 포함한 서울 노원구병에선 경선을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실시했다.

강원 동해시 나선거구 시의원선거에서 나번을 받은 민주당의 김찬래 후보는 나번을 받기까지도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김 후보는 “동해시에서 유독 나선거구만 후보 확정이 늦었다. 가번과 다번 후보가 정해졌는데도 나번은 한동안 결정되지 않았다. 단수 공천 혹은 경선 등의 방식을 두고 논의가 수차례 오가며 결과를 번복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 21세로 강원도 역대 최연소 지방선거 출마자다. 그는 결국 경선을 거쳐 5월 9일 나번을 따냈지만, 자신의 어린 나이가 이 같은 공천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의 그린벨트 등 각 당의 청년 정치인 모임에선 자당 후보들을 상대로 단순 공천 여부를 넘어 어떤 식으로 공천됐고 컷오프됐는지까지 파악 중이다. 좀 더 실질적인 청년 후보 지원방안을 다음 선거에서 요구하기 위해서다. 나번 공천은 결국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청년 정치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부 정당에선 당초 공언한 청년 공천 할당을 준수하기 위해 경선 없이 청년 후보를 공천했다가 해당 후보가 무투표 당선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해당 후보가 자신을 알리거나 증명할 기회를 되레 잃었다는 원성이 나온다는 점이다. 앞서의 손혜영 민주당 후보는 “여성 30% 공천 할당을 맞추기 위해 지역에서 여성 후보를 꼭 한 명씩 내다 보니 경선 없이 단수 공천이 됐다. 문제는 지역에 경쟁 후보가 없어 무투표 당선까지 됐는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선보이거나 선거운동으로 스스로를 알릴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다. 감사할 일인 것은 맞지만 앞으로의 4년 임기가 더 무겁게 느껴지고 있다. 지역에선 젊어서 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에 손 후보와 같은 무투표 당선자는 494명에 달한다. 호남이나 대구·경북처럼 지역색이 강한 지역에선 민주당 혹은 국민의힘 측에서 후보를 내면 여타 정당에서 경쟁 후보를 내지 않은 데 따른 결과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무투표 당선자도 그렇지만 오랜 기간 선거를 준비해온 여타 정당 청년들은 선거에 나가지 못하게 돼 정치 의욕만 꺾였다”며 “그렇게 당선된 후보가 청년이라 하더라도 향후 지역·당협위원장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청년 정치가 퇴색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의 김가영(36) 마포구의원 후보가 유세를 하던 중 지역 어르신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정의당의 김가영(36) 마포구의원 후보가 유세를 하던 중 지역 어르신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노력’만으론 안되는 청년 정치

기초 단위로 내려갈수록 공천 투명성이 떨어지는 건 여전하다. 중앙정당이 공천 관련 방침을 정한다 해도 기초 단위 선거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보니, 중앙당의 관리·감독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시도당이나 지역·당협위원장이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는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의회 비례대표 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의 한 후보는 “사실 인천지역 기초의원 선거에 지역구 후보로 나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공천 과정이 정말 깜깜이인 데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더라. 물밑에서 서로 끌고 당기는 일이 만연했다. 어렵더라도 체급을 높여 그나마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용산구의회에선 대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결정으로 여야 간 정치 공방이 치열했는데, 각 정당에선 이를 빌미로 청년들의 구의원 선거 출마를 막아서기도 했다고 한다. 신인 정치인보다는 무게감 있는 중진 의원을 중용해야만 여야 힘 겨루기에서 승산이 있을 거란 각 당 윗선의 판단 때문이었다. 용산구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해왔던 민주당의 한 청년 정치인은 “경선에 나갔더라면 다선 의원 제한에 청년 가산점 등으로 구의원 후보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에서 정치 구도상 지금은 안 된다며 경선에 나가지 말라 하더라. 앞으로의 정치 생명을 고려했을 때 이에 불복하긴 어려웠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오는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지난 3~4년 동안 중앙당과 지역을 넘나들며 열심히 활동해온 청년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와 관련해 앞서의 김세종 국민의힘 후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년세대가 원하는 건 투입한 노력만큼 보상을 받는 체계다. 근데 정치권은 이와 정반대다. 노력한 사람은 당선이 안 되고, 노력을 안 한 사람이 당선이 된다. 정치인이 매력적인 직군으로 평가되기 어렵다. ‘똑똑한 사람이니 정치를 한다’라는 말보다 ‘똑똑한데 왜 정치를 하냐’라는 말이 더 와닿는 이유다. 이번 선거가 오히려 청년들의 정치 출마 의지를 줄였을 수 있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청년 정치와 관련해 정작 유권자와는 얼마만큼의 공감대를 이뤘느냐에 대한 반문도 제기된다. 앞서의 김가영 정의당 후보는 “아직 우리 사회는 청년을 정치의 주체로 잘 떠올리지 못한다”라고 평했다. “청년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 보니 유권자들도 청년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느껴본 경험이 적다. 정치에서 청년이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동시에 유권자와의 교감도 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민주당의 박한창(34) 강동구의원 후보가 슈퍼맨 복장을 입고 거리에서 지역민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있다. photo 유장훈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민주당의 박한창(34) 강동구의원 후보가 슈퍼맨 복장을 입고 거리에서 지역민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있다. photo 유장훈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정당별 인재 발굴 상설조직 시급”

앞서 언급했듯 오는 지방선거에서 청년 후보 비중은 지난 선거보다 늘긴 했지만, 해외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해외 국가들의 국회 및 지방의회의 40세 이하 청년의원 비율은 전체 의원의 20~30%에 달했다. 노르웨이 34.3%, 스웨덴 31.4%, 덴마크 30.7%, 핀란드 29.0%, 프랑스 23.2%, 영국 21.7% 등이다. 선거에 출마한 청년 후보자 비중은 이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국회 청년의원 비중이 4.3%, 광역의원 5.6%, 기초의원 6.6%에 그친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비영리단체 뉴웨이즈 측은 각 정당에서 인재 발굴 조직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당에 여성국, 총무국 등이 있는 것처럼 인재국 등 인재 발굴 관련 상설조직을 신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매 선거마다 인재 양성 시스템을 두자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를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청년 후보자 비중이 7.0%에서 9.6%로 오른 양적 성장에 가려진 질적인 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선거를 보면 청년 할당을 맞추기 위해 지역에서 급하게 인물을 찾아 내보낸 경우도 적지 않다. 공천 투명성, 공정성이 담보될 리 없다. 예측 가능한 인재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앞서의 손혜영 후보는 “정치권이 이번 선거를 앞두고 청년을 이슈화하는 데엔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그 이후에 대한 고민, 논의는 부재했다”며 “민주연구원 등 각 정당의 싱크탱크에서 본질적인 청년 정치인 양성을 위한 방안,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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