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이재명 당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마 기자회견을 하며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8일 이재명 당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마 기자회견을 하며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명진(가명)씨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자친구와 어제 말다툼을 좀 했어요. 제가 ‘개딸’이라는 걸 알고 나서 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거든요. 험한 말까지 나오고 나서 지금 냉전 중입니다.”

‘개딸’은 지난 6월 1일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추종하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28살 직장인인 김씨는 지난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이재명 의원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도 호감은 있었는데 팬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선거가 끝나고 나서 제가 ‘이장님(이재명)’을 잘 몰랐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언론이 그분을 악마화시켰다는 것도 알게 됐고, 영상 같은 것을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입덕(팬이 됨)’했어요.”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이재명 의원의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접속한다고 했다. 이 의원을 가리키는 단어, ‘이장님’이라는 말이 유래된 곳이기도 하다.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의원님’이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남자친구에게 깊이 실망했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었다.

인터뷰 도중 김씨의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30분 넘게 자리를 비우며 그와 통화한 김씨가 돌아와 처음 한 말은 “결국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견해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 있느냐”며 놀란 기자에게 김씨는 “지금 나에게는 그만큼 의원님이 중요한 존재”라고 대답했다.

2017년 5월 8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서울 광화문 유세 현장. photo 뉴시스
2017년 5월 8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서울 광화문 유세 현장. photo 뉴시스

깨어 있는 시민 vs 적폐 세력

‘의원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개딸들의 수는 많다. 개딸은 원래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에서 언급되었던 단어인데, 작중 아버지 역할의 배우가 말썽꾸러기 딸을 가리켜 ‘개(같은)딸’이라고 말하던 것에서 따온 말이다. 짓궂지만 친근한 사이에서나 쓸 수 있는 말이라는 점에서 이재명 의원을 ‘아빠’, 추종자들을 ‘개딸’이라고 지칭하는 식이다. 그러던 것이 ‘개혁의 딸’이라는 뜻도 더해졌다.

대선 후 더불어민주당에 새로 가입한 20만명의 신규 당원 중 상당수가 개딸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마냥 든든한 지지자가 아니다. 당장 6·1 지방선거 패배를 둘러싸고도 개딸의 책임을 묻는 정치인이 많다. 선거 전에도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 같은 경우는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팬덤정치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점점 커져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팬덤정치란 도대체 무엇을 일컫는 것일까.

정치인이 팬덤, 즉 팬 집단을 가지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덤 ‘노사모’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팬덤 ‘박사모’는 두 대통령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 언급되는 팬덤은 이들과는 결이 좀 다른 집단이다. 이전 팬덤은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모임이었다.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보이는 팬덤은 단순히 열성 지지자 모임을 넘어선 것이다.

사실 개딸의 근원은 따로 있다. 개딸은 노사모가 아니라 ‘문빠(혹은 문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문빠와 개딸은 서로 다른 집단이다. 어떤 문빠는 개딸이 되었지만, 어떤 문빠는 개딸을 배척한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개딸은 문빠를 계승하고 있는데, 이 집단이 포퓰리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먼저 포퓰리즘이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독일의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의 책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를 읽어보자. 대중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 포퓰리스트는 현재의 엘리트가 국민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신 포퓰리스트는 오로지 자신만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즘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다. 엘리트는 악하고, ‘진짜’ 국민은 선하다. 단순하게 구분되는 선과 악의 이분법 속에서 포퓰리스트들은 하나의 옳은 것만을 얘기한다. 그걸 반다원주의적이라고 표현한다.

차태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분석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2021년 논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불화’를 통해 팬덤정치가 포퓰리즘이라는 점을 짚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팬덤, 문빠를 떠올려보자.

문빠는 ‘깨어 있는 시민’들로 구성돼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은 기존의 정치권과 언론, 이른바 적폐 세력이 왜곡해놓은 현실을 직시한 진짜 시민들이다.

적폐 청산의 통치 전략은 포퓰리즘의 특성을 꼭 닮았다. 적폐 세력을 대표하는 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과 언론이다. 민의를 대표하지 못하는 기존 권력 집단이다.

적폐 청산의 언사는 단순할 정도로 이분법적이다. 개혁을 가로막는 것은 같은 적폐이거나 ‘토착왜구’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유구한 역사의 수구 보수세력이라는 강력한 악이 존재하는 한 개혁 세력은 옳다. 개혁 세력을 흔들려는 움직임, 이를테면 조국 사태 같은 것은 개혁 의지를 해치려는 일종의 음모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당수의 문빠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지고 문재인 정권을 흔드는 것은 ‘언론의 악의적인 프레임’이다. 결국 개혁을 실패하게 해 기존의 언론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집단은 결속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 놓인 이재명 민주당 의원 지지자들의 화환. photo 뉴시스
지난 6월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 놓인 이재명 민주당 의원 지지자들의 화환. photo 뉴시스

복사되는 문빠와 그 후의 정치 부족들

똘똘 뭉쳐진 개혁 세력은 하나의 부족(tribe)이 되었다. 여기서 부족은 씨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호회, 회사, 친구 집단 등 모든 것이 부족이 된다. 현대사회 대중은 수많은 부족으로 이뤄져 있는데 누구든지 시민은 부족에 속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법학자 에이미 추아는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나 인종이 아니라 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도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각각의 부족들이다.

그런데 문빠 이후에 형성된 부족들을 보면 대개 비슷한 양식을 가진다. 차태서 교수는 몇 가지 특징을 짚었다. 이 부족들은 ‘노무현 트라우마’로 시작해 ‘지켜주지 못한’ 죄의식 때문에 ‘지키기’에 몰두한다.

이를 테면 노무현이라는 “‘비극적 영웅’을 죽음으로 내몬 거악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원한”이 문빠의 근원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죄의식은 ‘문재인 지키기’로 이어진다. 자주 보이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는 얼핏 보면 아이돌 팬덤에서나 볼 법한 가볍고 발랄한 구호 같지만 사실은 “복종의 다짐이자 대통령을 무오류의 존재로 격상”시키는 발언이다.

사실 문빠의 행동 양식은 대중문화의 아이돌 팬덤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기념품을 의미하는 굿즈를 만들고, 응원 문자를 보내고 댓글을 남기는 등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이 행동 양식이 수렴하는 곳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 아니라 개혁 세력의 리더로서 깨어 있는 시민들을 대변하는 ‘이니’다.

문빠 부족 안에서 문재인은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단지 단 하나의 방향으로 재해석된다는 것이 문제다. 문재인의 오류는 기존 적폐 세력의 모함으로 생긴 오해다. 사실 알고 보면 문재인과 개혁 세력의 의도는 항상 옳았고, 잘못 알려진 것이 너무 많다.

이 특징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빠 이후의 팬덤에게서 반복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팬덤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의원의 팬덤은 모두 비슷한 시작점을 가지고 있다.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사건, ‘트리거’가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탄핵이었고, 조국 전 장관은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재명 의원은 대선에서의 낙선이 계기가 됐다. 이 변곡점들을 팬덤에서는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공격받아 생긴 일이라고 여긴다.

스스로를 조국 전 장관의 팬이라고 말하는 26살 유소라(가명)씨가 꼭 그렇다. 그는 조국 전 장관이 부당한 ‘표적 수사’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이 노무현 대통령님과 겹쳐 보였어요. 트라우마가 자극되는 기분이었어요. 노무현 대통령님이 돌아가셨을 때 부모님을 따라서 봉화마을에도 다녀왔었거든요. 그때 엄마가 우시면서 ‘죄송하다’고 한 말이 생각나더군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51살 김준영(가명)씨도 박 전 대통령은 “공격받았다”고 표현했다.

“물론 대통령님이 잘못하신 부분도 있습니다.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지나친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있지도 않은 일을 부풀려서 만들어낸 일이라는 거, 이제는 모두 알잖아요?”

이 인식들은 ‘지켜야 한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개딸임을 주변에 알리고 다니는 30살 이나현(가명)씨는 인터뷰를 하다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이분이 이재명 의원님이 계양을 지역구에 전략공천 하는 걸 반대했었거든요. 이런 반대의견을 가만히 두고 보면 또 억울한 일만 당하겠지요. 저 하나라도 행동으로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억울한 일’을 겪지 않은 정치인은 열성적인 팬덤을 형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다. 문재인 정권과 척을 지면서 형성되었던 팬덤은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오히려 흩어진 것처럼 보인다. ‘지켜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해 낙선했던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팬덤 정치를 시도하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역시 아직 그에게는 ‘지켜줄 필요’가 잘 보이지 않는다.

 

팬덤정치에 여성이 경도되는 이유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팬덤정치라는 현상을 만들고 있는 부족 구성원 중에는 유독 젊은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포퓰리즘에 대해 연구해 온 도묘연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미디어의 영향을 이야기했다. 도 교수가 연구한 바를 보면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를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배타적인 성향을 띨 가능성이 높았는데, 연령이 낮을수록 그랬다. “청년세대일수록 뉴미디어를 통해 포퓰리즘에 경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도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여성이 팬덤정치에 몰두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포퓰리즘이 형성되는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쉴즈는 포퓰리즘이 “지배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의 질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포퓰리즘은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도묘연 교수는 “여전히 실제적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포퓰리즘의 유혹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를 둘러싼 이대남 논란 이후 개딸 같은 여성 포퓰리즘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것에 주목해봐야 한다. 일종의 반작용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문빠에 많은 여성들이 포함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불거지기 시작했던 페미니즘 논쟁과도 관련이 있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커뮤니티로 알려진 ‘메갈’이 처음 생겨난 것이 2015년이고, 여성 혐오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킨 ‘강남역 살인사건’이 2016년에 발생했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거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2017년이다. 문 전 대통령이 당선 전후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청했었다는 점까지 고려해보면, 여성들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까지 포함하고 있는 ‘적폐’ 청산 슬로건에 더 끌리기 쉬웠다. 거기다 애초에 포퓰리즘이 기득권 집단에 대한 반작용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연령과 성별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청년 여성들이 팬덤정치에 합류하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팬덤 집단은 자주 자신들을 피해자이자 소수자로 위치시킨다. 절박함은 오히려 기세를 올리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팬덤 집단 내부에서는 매일같이 서로를 독려하는 말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서 팬덤 부족의 한 명 한 명은 투사가 된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혀 나간다. 정치인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을 악한 세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결집한다. ‘우리가 아니면 이장님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팬들의 독려 때문에 활동량은 더욱 커져 보인다. 팬덤정치는 날이 갈수록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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