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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들은 스스로를 ‘범죄자 같다’고 표현한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미림(가명)이가 그렇다. 미림이의 아빠는 지난해 구속되었다. 미림이는 아빠를 “떠올리기도 싫다”고 했다.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였어요. 재미 있고 늘 저에게 잘해줬어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아빠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도 다 옛날 얘기예요. 이제는 아빠를 보고 싶지도 않아요.”

맨 처음에는 아빠가 구속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미림이의 엄마는 아빠가 해외로 파견나갔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외국에 나갔다고 해도 연락도 안 되는 건 이상하잖아요. 엄마에게 몇 번이나 물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술을 마시고 얘기해줬어요. 아빠가 나쁜 짓을 해서 교도소에 있대요.”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방 세 개짜리 집에서 한 개짜리 집으로 이사를 갔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면서 얼굴을 보기 어려워졌다. 친했던 친구들과 대화하는 일이 껄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친구가 ‘코로나 상황’인데 아빠가 어떻게 미국에 갔는지 물었어요. 아빠가 미국에 갔다고 했는데, 무슨 일 때문에 간 건지 어떻게 간 건지 하나도 생각해두지 않았거든요. 얼굴이 빨개지고 대답을 못 하게 되자 친구들이 아예 입을 다물더라고요. 아마 거짓말인 걸 안 거 같아요.”

중학교에 진학한 미림이는 친구를 만드는 일을 포기했다. ‘돈이 부족하다’는 엄마의 ‘부탁’으로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게 됐다. 집에서 혼자 TV를 보는 시간만 늘어났다. 미림이는 몇 번이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청소 일을 하며 다른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있는 미림이의 엄마는 바쁘게 끝마친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림이가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자꾸만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우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림이는 엄마의 걱정을 전해 듣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범죄자의 딸은 범죄자처럼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뭔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외로워져야 하나 싶다가도 아빠가 범죄자라는 생각을 하면 저는 불평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져요. 마치 제가 죄를 지은 것처럼요.”

  

부모의 공백으로 생긴 부정적 감정들 

미림이와 같은 처지의 미성년자를 가리켜 ‘수용자 자녀’라고 부른다. 부모가 구치소나 교도소 등의 교정시설에 수감되어 있는 아동·청소년을 일컫는 말이다. 법무부가 지난해 4월 실태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당시 수용자 자녀 수는 1만2167명으로 밝혀졌다. 조사 시점에 수감돼 있는 수용자의 자녀 수만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연간 생겨나는 수용자 자녀 수는 그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펼치며 추산한 결과로는 연간 수용자 자녀는 5만4000여명에 달한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지만 이들은 줄곧 아동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가해자’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있던 미성년 자녀에게는 범죄에 대한 어떤 책임도 없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이들에게도 향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수용자 자녀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온 신연희 성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들 수용자 자녀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봅시다. 든든한 양육자를 잃어버리고 가정환경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재난처럼 다가왔습니다. 안락한 가정에서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현실로 노출된 것입니다.”

수용자 자녀 입장에서는 미성년인 자기를 보호해줘야 할 부모가 갑자기 사라진 셈이다. 2017년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수용자의 남은 가족들이 느끼는 어려움 중 가장 많이 꼽은 것이 ‘수용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일’이었다. 즉 부모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생기는 공백을 메우는 일이 힘들다는 것이다.

수용자 자녀 중에서도 지난해 실태조사를 기준으로 80명은 아예 홀로 생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아이들을 인터뷰해온 배영미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에 따르면, 이런 아이들이 가장 크게 느낀 어려움 중 하나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보호자가 필요한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 때로는 스스로가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이들을 짓눌렀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수용자 자녀는 평범한 가족 관계를 맺고 있던 경우가 많다. 미림이의 가족만 하더라도 부모·자녀 관계는 여느 가정과 다름없이 화목한 수준이었다. 미림이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자상하던 아버지의 자리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공백이 생긴 것도 견디기 어려운 일인데, 부모의 행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지난해 4월에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입소 후 자녀와 연락하지 않거나 간접적으로만 연락한다는 수용자가 51.5%로 절반이 넘었다. 상당수 수용자 자녀는 부모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막연히 시간을 흘려 보낸다.

그래서 수용자 자녀 중에는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가 수감된 이후 수용자 자녀 중 문제행동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족이 해체되었다는 스트레스에서 오는 불안감, 갑자기 변화한 환경에서 오는 우울감,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비관적인 생각 같은 감정들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17년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매사에 의욕이 없고 기가 죽어 있다’고 응답한 수용자 자녀는 35.6%, ‘불면증이나 우울 증상이 있다’고 답한 아이는 27.1%에 달할 정도다.

  

권리를 박탈당한 아이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것이다. 많은 수용자 자녀는 부모가 수용되기 전부터 결코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지난해 법무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미성년 자녀가 있는 수용자가 입소하기 전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등 국가 지원을 받고 있었던 경우는 21%에 달했다. 2017년의 실태조사에서도 수용자 자녀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은 82.1%에 달했다.

수용자 자녀 가운데에는 부모가 수용되고 나서 주거 환경·생활 환경이 크게 악화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주거지의 문제 같은 현실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미림이의 가족도 아버지가 수감된 이후로는 월세를 내기 어려워 방 한 개짜리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열악한 경제 환경은 자연히 수용자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경제적인 문제에 쫓기다 보면 남은 부모는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2015년부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수용자 자녀를 돕는 활동을 펼쳐온 사단법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이경림 대표는 “자녀 양육 문제는 5순위, 6순위가 되어 버리는 사례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기 어렵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만 6세 이하 수용자 자녀 수도 3094명에 달하는데 이들 미취학 아동들에게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수용자의 자녀로서 아이들에게는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다.

이런 점을 보자면 수용자 자녀들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부모가 수용자이든 가난하든 관계없이 아이들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수용자 자녀들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부터 부모에게 양육받을 권리, 연령에 맞는 적합한 지원을 받을 권리 등을 모두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경림 대표는 “‘수용자’라는 딱지를 떼고 보면 이 아동들은 ‘자녀’일 뿐”이라면서 수용자 자녀도 다른 자녀와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수용자 자녀에 대한 지원은 효용성이 높다. 많은 국내외 연구는 수용자의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재범률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통 재범률은 25% 남짓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세움에서 지원해 온 수용자들의 재범률은 5.7%에 불과했다. 수용자 자녀에 대한 지원이 단순히 자녀 본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이 대표는 “가족 관계가 회복되면서 수용자들의 책임감, 의무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법률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부모의 재범률만 낮추는 것이 아니다. 호주나 영국 등의 자료를 보면 부모가 수용자일 때 자녀가 범죄에 연루될 확률은 평균 30%가 넘는다. 그런데 세움과 같은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인해 안정을 찾은 수용자 자녀는 무척 많다. 이경림 대표는 “세움의 지원 활동 중에 가장 만족도 높았던 활동 중 하나가 멘토링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다가온 재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어른을 만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수용자 자녀를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강조되면서 국가적으로도 정책이 마련되고는 있다. 수용자 자녀가 수감된 부모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도록 접견 환경을 개선한다거나 부모를 체포할 때 미성년 자녀가 이를 직접 목격하지 않게 보호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법령을 개정한 것이 예다.

그러나 수용자 자녀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부족하다. 이를테면 수용자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로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 집행법)이 있다. ‘아동복지법’에 근거해서는 수용자 자녀가 취약계층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수용자 자녀만을 위한 법률적 지원 근거는 아직 없다.

신연희 교수는 “형 집행법은 말 그대로 수용자가 대상이지 수용자 자녀가 대상이 아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로부터의 체계적인 지원은 당연히 어렵다. “교정본부, 행정기관, 지자체가 각각 따로, 컨트롤타워 없이 수용자 자녀 문제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수준”이라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니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단체에서 정부 지원금 없이 순수 민간 후원금으로만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0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수용자 자녀 보호 3법’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수용자 자녀에 대한 법률 지원을 해온 강정은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이 법이 다른 의원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상태”라며 “법률안이 개정되어야 할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인식 개선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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