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주장하며 폭파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주장하며 폭파 작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3번 갱도 복구를 마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4번 갱도까지 핵실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북한의 연쇄 핵실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사이트 ‘비욘드 패럴랠(Beyond Parallel)’은 전날 촬영한 위성사진을 근거로 풍계리 핵실험장의 4번 갱도 입구 주변에 건축 자재와 벽체가 보이는 등 새로운 건설 활동 포착 사실을 알렸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일부에서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 시설보다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더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말한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이번에 핵실험을 준비 중인 3번, 4번 갱도다.

연쇄 핵실험 가능성이 커지면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 능력 국가(잠재적 핵보유국)’로 인정받고 있는 파키스탄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하루에만 다섯 차례 등 총 여섯 차례 연쇄 핵실험을 하면서 핵보유국을 선언했다. 전문가들 역시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서는 한 번의 핵실험은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시작을 하면 기술이 완료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데, 기왕에 할 거면 파키스탄처럼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우려다.

북한은 이미 전략핵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전략핵은 엄청난 폭발력 때문에 실전 사용이 사실상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북한은 소형이면서 폭발력이 작은 전술핵 개발을 추진 중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또는 KN-24에 탑재할 수 있는 300㎏ 내외의 소형 핵탄두를 만드는 것이 목표로 보이며, 이를 위해서는 3~5회의 핵실험이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 번의 핵실험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리 비토권 행사로 추가 제재가 어려운 지금이 북한으로서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연속 핵실험이 예상되는 이유다.  

 

북한, 중국 버리고 미국 선택한다?

북한이 파키스탄 방식으로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파키스탄은 미국을 도운 대가로 핵을 인정받았다. 

작년 7월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북한 핵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남·북·미 동맹’ 결성을 주장했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당시 크게 주목받지 않았으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크게 논의가 되었다. 

당시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과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에 공동 기고한 ‘북한과의 일괄타결’이란 글에서 브룩스는 한·미의 대북 인도적 지원,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 종전선언,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 해소, 북한 비핵화 검증, 남·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을 언급하며 ‘북한과의 동맹’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한·미가 북한과 동맹을 맺고 그 대가로 한국은 북한에 경제적 투자를, 미국은 국제기구를 통해 경제 회생 자금 공급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북한에 중국을 버리고 ‘친미정권’임을 선언하라는 것으로 당시에는 황당한 생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이러한 가능성은 국내 학계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2018년 발표된 ‘북한의 전략적 선택에 대한 동맹이론적 검토’(나호선·차창훈, ‘21세기 정치학회보’)를 보면 “북한은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상의 교환 과정에서 비핵화 과정의 감독 및 사찰과 역내 평화 안정 유지 등을 위해 미군 주둔을 허용할 수 있다”며 “북한이 구소련에 제공했던 항구와 공군 기지는 미국의 대중포위망의 최전방으로 매력적인 전략 입지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을 협상장에 끌어들일 수 있는 강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비슷한 사례가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9·11테러 이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을 도왔다. 나아가 빈라덴 제거까지 도우면서 현재는 묵시적으로 핵보유를 인정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신냉전 국면에서 만약 북한이 미국을 돕는다면, 9·11테러 직후 파키스탄의 행보와 비슷하게 된다. 과거 파키스탄 사례를 생각하면 북한 입장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핵 문제를 미국과의 담판으로 해결하려 한다. 판돈이 올라갈수록 북한에는 유리하다. 전략·전술핵을 모두 손에 쥐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몸값을 올리려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미국을 회담장에 끌어들인 후 북한이 미국으로 향하던 핵 미사일의 방향을 중국으로 돌린다면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아가 제재도 풀고 경제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통일학 박사)는 “굳이 북한이 친미 국가라고 선언할 필요도 없이 핵보유 명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미국에는 끌리는 제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북한은 핵을 개발하는 대외적 명분으로 ‘미국의 대북 핵 선제 타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왔는데, 이를 바꿔서 ‘동북아 평화와 힘의 균형을 위해’ 핵을 보유한다고 하면 자신들의 핵무기가 미국이 아닌 중국을 향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효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중국 방어선의 최전방을 북한이 맡겠다고 스스로 선언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핵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북한이 주장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도와줄 명분이 생긴다. 설령 여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핵을 협상장에 올려놓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몸값을 올리며 협상을 하면 북한이 얻을 것이 많다. 이러한 핵 담판을 염두에 두고 전술핵이라는 더 큰 판돈을 협상에 올리기 위해 이번에 북한이 연속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도 북한 핵실험이 나쁘지 않다?

이런 상황이 실제 전개된다면 미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 북한이 이번에 핵실험을 하는 것이 미국에도 불리하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역시 중국이 주요 변수다. 미국으로서는 만일 북한이 핵무장을 할 경우 한국, 일본 여기에 더해서 대만이 핵무장에 나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중국에 이야기할 명분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핵무장 국가들의 포위를 받게 된다. 최근 아산정책연구원의 핵무장 관련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의 70.2%가 핵무장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역시 핵무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핵 개발 도미노 체인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책임을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 중국에 돌릴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하는 효과도 생긴다.

여기서 다시 파키스탄 상황이 떠오른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분쟁을 이용해 서로를 자극하면서 핵 능력을 키워나갔다. 이들의 핵보유 명분 역시 상대가 핵을 가졌으니 자위권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슷하게 북한이 핵을 가졌으니 한국, 일본, 대만 핵무장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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