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코인으로 각광받았던 테라·루나의 몰락은 많은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동시에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루나 사태 이전에도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이어져 왔다. 지난해 6월 스테이블코인으로 발행됐던 ‘타이탄’이 65달러에서 0달러대로 폭락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폰지사기로 매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들은 루나 사태와 겹친 긴축 장세 여파로 심한 매도세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6월 21일 암호화폐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중국계 저스틴 선이 만든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USDD와 연동된 ‘트론’은 0.06달러로 일주일 전보다 21.2% 떨어졌다. 같은 기간 USDN과 연동된 ‘웨이브’는 4.75달러로 14.5% 떨어졌다. 루나 사태 이후로 따지면 13달러에서 63.5%나 급락한 셈이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기반 암호화폐도 꽤 된다. 트론, 웨이브, 니어프로토콜, 팬텀, 카바, 하이브 등 8개나 있다. 이들 코인의 공통점은 루나처럼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1달러에 맞추기 위해 담보로 찍어낸 코인들이다. 스테이블코인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이들 코인을 찍어내서 시중에 풀린 스테이블코인을 사들여 가격을 떠받치는 방식으로 다시 1달러에 맞춘다. 그러나 최근 암호화폐 매도세가 급격하게 강해지자, 스테이블코인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루나처럼 붕괴 우려가 커진 것이다. 6월 21일 현재 USDD(트론)는 0.96달러, USDN(웨이브)은 0.98달러, USDX(카바)는 0.91달러 등 이미 1달러 이하로 가치가 떨어지는 ‘디페깅’이 시작되어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크게 4종류가 있다. 법정화폐 담보, 암호자산 담보, 상품 담보 스테이블코인과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나뉜다.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기관에 법정화폐를 예치하고 예치금에 상응하는 가치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받아 사용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암호자산 담보 스테이블코인은 이더리움과 같은 기타 암호자산을 스마트 콘트랙트에 맡기고, 프로토콜의 담보대출 비율에 따라 대출받아 사용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상품 담보 스테이블코인은 금·은·석유·원자재·부동산 등을 담보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알고리즘과 스마트 계약에 의존하여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200여개 발행, 1300억달러 가치
현재까지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은 200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치로는 약 1300억달러로 집계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수요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0월 1년간 495% 이상이 증가했을 만큼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 중에서 실제로 사용 빈도가 높고 화폐를 대신하여 사용되는 코인은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인 USDT(테더)와 USDC(서클) 그리고 암호자산 담보 스테이블코인인 DAI(다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중국계 자본인 ‘테더’보다는 미국 자본인 ‘서클’을 밀어줄 공산이 크다. 서클(USDC)은 암호화폐 기업 서클과 미국 대표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 간의 협업을 통해 개발된 스테이블코인으로 골드만삭스가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반면에 테더는 달러 표시자산으로 담보자산이 형성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문제는 준비금이 대부분 1년 이하 초단기 채권(52.4%), 기업 어음·CD(36.7%), MMF(4.6%) 형태로 구성돼 있다는 데 있다. 한때 이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아 뉴욕 검찰의 조사와 2017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거짓말 혐의로 4100만달러의 과징금을 물었다. 당시 테더는 준비금으로 보유한 달러가 시총 대비 7분의1밖에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테더의 준비금이 초단기 채권과 어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만약 ‘코인런’이 빚어진다면 투매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채권시장 등 자산시장을 일대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들의 준비금에는 중국 부동산기업들의 달러 표시 채권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부동산 위기나 금융위기 시에 취약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우려가 시장에 확산하면서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인 CBDC 발행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의 디지털화폐 개발 검토 긴급 행정명령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개발하거나 시범 운영하고 있어 오히려 미국의 진입이 늦은 편이다. 게다가 중국의 디지털위안화가 속도를 내고 있어 중국과 미국의 ‘디지털화폐 패권’ 다툼은 세계 각국의 CBDC 도입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CBDC와의 전쟁 피할 수 없는 운명
6월 17일 현재 코인마켓캡 자료에서 테더의 시가총액은 약 692억달러로, 지난 5월 800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서클은 현재 550억달러 수준으로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어 미국 주도 스테이블코인의 약진이 예상된다.
앞으로 통화 세계는 기존의 법정통화와 암호화폐(가상자산),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스테이블코인 4자 간의 전쟁(경쟁)이 예상된다. 이들이 전쟁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과 협력이 상존하는 전쟁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 중앙은행디지털화폐와 스테이블코인 간의 전쟁(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강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일단 저렴한 송금 수수료와 송금의 즉시성이다. 현행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 간 통신협정) 시스템에 의한 은행 간 국제 외화 송금 수수료는 금액에 따라 8~25%라는 고액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거치는 단계가 많기 때문이다. ‘환전수수료+송금 수수료+전용망 수수료+수신 수수료+환전수수료+현금 수수료’ 등 여섯 단계마다 수수료가 부과되다 보니 이렇게 고율의 수수료가 발생하는 것이다.(참고로 은행보다 빠르게 해외 송금을 진행하고 싶다면 페이팔, 웨스턴유니온, 와이즈와 같은 해외 송금 전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중앙은행디지털화폐로 송금하게 되면 단계가 대폭 축소된다. ‘환전수수료+송금 수수료+환전수수료’의 3단계로 축소되어 수수료는 5% 내외로 줄어든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의 경우는 환전할 필요가 아예 없다 보니 환전수수료가 들지 않아 수수료가 2% 내외로 대폭 줄어든다. 게다가 앞으로는 제로로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송금 측면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세계 어디서나 환전하지 않고 통용될 수 있는 세계화폐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또한 송금 소요 시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은행을 이용한 해외 송금의 경우, 송금이 완료되는 데 보통 1~2영업일이 소요된다. 더구나 국가 간 시차가 존재하고, 나라마다 은행 영업시간과 휴일이 달라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은행을 거치지 않고 전자지갑에서 전자지갑으로 이동하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송금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통 송금 후 몇 분 이내 확인이 가능하다.
앞으로 소비자들이 어떤 통화를 송금용으로 선호할 것인지는 불 보듯 명확하다.
법정화폐와 암호화폐 간의 가교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암호화폐 간의 가교역할을 할 전망이다. 암호화폐의 가장 큰 약점은 가격 급등락이 빈번해 ‘화폐의 본원적 기능’, 곧 ‘교환의 매개수단, 가치척도의 기능, 지불수단 기능, 가치저장 수단 기능’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코인이 스테이블코인이다. 달러 등 법정화폐에 1 대 1 페깅시켜 가격 안정성을 도모한 코인이다. 이로써 법정화폐와 암호화폐의 장점을 모두 공유한 코인이자 양쪽의 가교역할을 하는 코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디파이와 메타버스 시대의 총아로 떠오를 전망이다. 중간에 은행을 배제한 탈중앙금융((DeFi·Decentralized Finance), 곧 ‘디파이’는 스마트 계약으로 개인과 개인을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은행의 중간마진을 개인들에게 귀속시켜 예금과 대출 이자를 큰 폭으로 개선시켰다. 물론 너무 과도한 수익률을 약속하여 폰지사기의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미래 금융의 원형을 보여준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에 주로 예치하는 코인이 스테이블코인이다.
또 스테이블코인은 메타버스에도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는 1992년 미국의 SF소설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 단어이다. 그때만 해도 소설 속에 있을 법한 얘기로 치부됐지만, 최근 들어 메타버스에서 부동산을 구입하여 매장을 꾸미는 것은 물론 온갖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열리고, 패션위크가 개최되고, 결혼식을 올리는가 하면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이벤트가 가능해진다. 그것도 현실세계의 행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즐길 수 있다. 또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현장에서 보다 훨씬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장점 또한 갖고 있다. 여기에 더해 원격업무는 물론 원격교육, 원격의료, 원격관광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점차 우리 곁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메타버스의 가상세계에 참여하기 위한 결제와 거래 수단이 암호화폐이며, 그중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거래 시장의 기축통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금도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코인이 스테이블코인이다. 대부분의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사고팔 때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 CBDC의 대항마로 기대
스테이블코인은 중국 중앙은행디지털화폐에 맞설 수 있는 화폐의 역할을 할 전망이다. 중국은 인민은행디지털화폐를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가 아닌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로 부른다. 국민들 사이에 중앙집권적인 냄새가 나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라고 인식되어지기보다는 ‘전자화폐’ 또는 ‘디지털위안화’로 알려지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추적 가능한 중앙은행디지털화폐의 위압감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은 디지털위안화의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통화 정책적으로 다른 암호화폐는 일절 불허하고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이 발행하는 알리페이와 위챗 등 중국의 모바일결제 핀테크 산업마저도 통제함으로써 대내외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까지 2억6100만개의 디지털 위안화 지갑이 열렸고, 총거래액은 876억위안에 달했다.
디지털위안화에는 휴대폰끼리 ‘부딪치기 기능’이 있어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도 거래되고 결제될 수 있다. 이 기능으로 인해 기존 금융 서비스 이용이 불편했던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효율성 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위안화가 이 지역들에 급속도로 전파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이다. 이는 달러 패권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보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 개발에서 많이 뒤처져 있는 미국이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것이 달러와 페깅되어 있는 스테이블코인이다.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의 확대와 전파는 곧 달러의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중국과 미국의 입장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국부의 유출 특히 자본 유출이 엄격히 통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중국은 암호화폐를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스테이블코인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이 추적 가능한 디지털위안화의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어차피 달러가 해외에서 많이 사용될수록 ‘시뇨리지 효과’에 의해 미국의 이익이 늘어나는 것으로 간주된다. 달러와 페깅된 스테이블코인의 확대는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미국도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투자자 보호를 위해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서두르고 있기는 하다. 미국은 자금세탁 방지조건과 함께 적정 회계 심사를 위해 스테이블코인의 담보물을 제3의 기관 곧 은행 등에 예치함으로써 투명성을 제고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 정부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시각은 근본적으로 우호적인 편이다. 결국 금융국경을 지키려는 CBDC와 금융국경을 허물려는 스테이블코인의 한판 승부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 연준이 앞으로 CBDC를 개발해 출범시킨 이후에도 스테이블코인을 계속 허용할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의 디지털화폐가 생긴다면 스테이블코인도 가상자산도 필요 없어질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해 한 말이다. 연준이 발행하는 CBDC가 스테이블코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발언이다.
디지털위안화 서두르는 중국은 스테이블코인 인정 안 해
하지만 이는 두고 볼 일이다. 금융국경을 지키려는 CBDC와 금융국경을 허물려는 스테이블코인의 한판 승부는 그리 호락호락할 것 같지 않다.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최소한 미국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국경의 제약이 없는 환경에서 거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파월 의장조차도 스테이블코인을 금지하자는 입장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했을 뿐이다.
그때까지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생태계가 얼마만큼 성장해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도 월스트리트 금융권의 참여도와 더불어 대선을 좌우할 정도로 커진 코인 생태계 유권자들의 파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성인 미국인의 약 16%(약 4000만명)가 암호화폐에 투자하거나 거래 또는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기본적인 스탠스는 과거 IT 기술이 버블을 통해 커왔듯이 암호화폐 기술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는 것과 동시에 달러 패권을 보호하기 위한 암호화폐 통제 사이를 오가고 있다. 미국은 양쪽 과실을 모두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