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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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도비만 환자인 A(29·남)씨는 체중 증가를 감당할 수 없어서 비만 전문 의사를 찾아갔다. 체중 130㎏에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까지 와서 5종류의 약을 복용하는 상태였다. A씨는 의사의 처방대로 식이와 운동요법을 병행하면서 2~3주 간격으로 병원을 방문해 근육량과 지방량을 체크하며 성실히 치료에 임했다. 치료 초기에는 항비만약물도 복용했다. 그 결과 1년 뒤에는 체중이 78㎏으로 줄어들었고 건강도 회복되어 고혈압 약과 당뇨 약을 모두 끊었다.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이지원 교수의 비만 치료 성공 사례다. 그러나 비만 치료 현장에서 A씨의 경우와 같은 ‘성공 드라마’는 흔치 않다. 이 교수는 “비만 치료에 성공하는 비율은 금연 치료 성공률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항비만약제의 승인 기준 중 하나가 연 5%의 체중 감량인 것만 봐도 체중 감량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라.’ 대부분의 비만은 이처럼 치료법이 너무나 단순, 명확하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비만은 치료를 소홀히 하기에는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지방간질환, 천식, 통풍, 골관절염, 우울증, 암 등 각종 난치성 질환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만은 얼마나 위험한 질환이며 왜 고쳐서 살아야 하나. 비만 연구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이지원 교수와 마주 앉았다. 이 교수는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비만 개선과 대사질환 치료 관련 연구를 많이 해왔고, 연구 결과를 진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장지방은 대사증후군 등 각종 질환의 원인이지만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하면 피하지방보다 먼저 줄어든다. photo 게티이미지
내장지방은 대사증후군 등 각종 질환의 원인이지만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하면 피하지방보다 먼저 줄어든다. photo 게티이미지

- 왜 비만을 가볍게 보면 안 되나. “대사증후군 등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인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발생 위험도는 과체중 상태인 체질량지수(BMI) 23~24.9㎏/㎡에서는 정상 체중에 비해 각각 2.4배, 1.6배, 1.2배, 1.2배 높지만, 비만 상태인 BMI 25~29.9일 때는 각각 6.5배, 2.8배, 1.6배, 1.6배로 상승한다. 초고도비만인 BMI 35 이상에서는 각각 43.4배, 9.1배 4.0배, 4.4배로 급증한다.”

- 비만 인구의 증가 추세가 가파른데. “국내 전체 성인 인구의 비만 유병률(BMI 25 이상)은 2000년대에 들어 30% 초반을 유지하다가 2015~2019년에는 33~34% 사이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2020년에 38.3%로 급증했다. 비만 유병률 증가는 남성이 주도해 2020년 기준으로 성인 남성은 48%에 이른다. 특히 30대 남성의 비만 유병률은 무려 58.2%이고 40대 남성도 50.7%다.”

비만은 신체 내 지방세포가 비대해진 상태다. 지방세포는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면서 에너지 조절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지방세포는 칼로리 섭취가 많을 때는 중성지방 합성을 촉진하는 반면, 칼로리 소모가 섭취보다 많을 때는 유리지방산 형태로 전환되어 생리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연료를 공급해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 몸은 에너지 섭취와 에너지 소모가 정교하게 균형을 이루지만 이 균형이 깨지면서 비만이 발생한다.

- 2020년에 비만 인구가 급증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인가. “코로나19와 서구식 식생활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동안 체중 증가의 주요 원인은 ‘활동량과 운동량 감소’ ‘식이의 변화’였다. 식이는 포장음식 증가가 뚜렷했다.”

- ‘젊은 비만’이 급증하는 원인은. “고지방, 고열량 음식과 단순당의 과도한 섭취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음료 형태의 단순당 섭취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문제다. 여기에 짧은 식사 시간, 좌식 생활, 장기간 텔레비전 시청과 컴퓨터 게임 등으로 인한 활동 부족도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루 2시간 이상의 텔레비전 시청은 비만 위험도를 23%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6시간 이하의 수면도 비만을 부추긴다.”

- 40대 이상의 비만은 원인이 다른가. “몸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왕성했던 신진대사가 줄어들고 호르몬의 변화와 함께 기초대사량도 감소하면서 똑같이 먹고 움직여도 체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총칼로리는 40대 이후에 연 1만5000~2만㎉가 축적되는데 이는 체중 2㎏에 해당한다.”

- 호르몬 변화가 어떻게 해서 체중 증가를 부르나.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 감소가 비만을 부른다. 성장호르몬 분비량은 20대 이후 꾸준히 줄어 근육이 감소하고 지방도 잘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몸에서 소모하는 에너지양이 줄어든다. 성호르몬은 남성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면서 근육이 줄고 지방이 늘어난다. 여성은 젊은 시절에는 몸에 해롭지 않은 피하지방이 내장지방보다 많지만 40대 후반 폐경기에 접어들면 내장지방이 급격히 증가해 남자처럼 뱃살이 많아지고 다리는 가늘어지는 체형으로 변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감소해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 마른 비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는. “뚱뚱한 비만은 물론 마른 비만도 똑같이 치료를 해야 한다. 비만을 치료할 때 체중뿐만 아니라 대사의 주요 지표인 체지방과 내장지방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뚱뚱하면서 대사가 나쁜 사람이 가장 좋지 않고, 마르고 대사적으로 안 좋은 사람이 그다음으로 나쁘다. 그다음은 뚱뚱하지만 대사는 정상인 사람, 정상 체중이지만 대사가 좋지 않은 사람 순이다.”

비만은 대사질환을 포함해서 각종 질병을 가져온다. 이 교수는 “최근 대사증후군 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비만 급증에 따른 현상”이라며 “특히 이상지질혈증이 젊은층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해 유병률이 40% 이상이어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비만은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저고밀도콜레스테롤혈증, 내당능장애를 유발하며,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특히 복부비만의 정도와 대사증후군의 위험 인자 수는 비례하는데, 지방 조직에서 유리지방산과 사이토카인 등의 물질을 분비해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키고, 염증 반응을 증가시킨다. 지방간, 담낭질환, 협심증, 심근경색증, 뇌졸중, 수면무호흡증, 통풍, 골관절염, 월경이상, 대장암, 유방암도 비만과 관련된 대표적인 질병들이다.

비만은 이처럼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치료가 쉽지 않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치료 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지만 효과가 크지 않고 부작용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출시와 퇴출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국내에서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약은 4종에 불과하다. 식욕을 억제해주는 큐시미아, 콘트라브, 삭센다와 지방 흡수를 억제하는 올리스탯 정도다. 이 교수는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비만 치료는 운동과 식이요법이지만 이 또한 생활습관과 관련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 비만 개선에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운동 방법이 있다면. “속보, 조깅, 수영, 줄넘기 등 유산소운동을 우선적으로 권고한다. 운동의 강도는 중강도로 숨이 가쁜 상태여야 하며 최대 심박수(220- 나이)의 60~80%나 그 이하가 적당하다. 주 5~7회 규칙적으로 실시하며 처음엔 10~20분부터 시작해 서서히 시간을 늘려 30~60분 동안 지속하는 것이 좋다. 근력운동도 1주일에 2~3회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인에게 재미있는 운동이라야 지속할 수 있어 체중 감량 효과가 높다. 중강도 이상의 운동을 하면 좋은 콜레스테롤(HDL)도 많이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 1년간 운동을 했더니 HDL이 10 정도 올라갔다.”

- 일상 활동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일상생활에서 칼로리 소모를 많이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니트(NEAT·Non Exercise Activity Thermogenesis) 다이어트처럼 운동을 따로 하지 않고 일상에서 작은 신체활동만 늘려도 에너지 소비량의 20%를 증가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습관 갖기, 실내 온도를 약간 낮게 유지하기, 앉아 있는 시간 줄이기, 수시로 몸에 힘을 줘서 열을 내기 등이 효과적이다. 긴장감을 가지고 일에 몰입하는 습관을 들이면 뇌 활동량과 근육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기초대사량도 증가해 체중 감량이 한결 수월해진다.”

- 비만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식이는. “현실적으로 감량 가능한 목표 체중을 먼저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주일에 0.5㎏을 감량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후 섭취 열량 500㎉를 줄이는 식이다. 하루 세 끼 식사와 1~2회의 간식을 규칙적으로 먹는다. 식사는 4~5시간 간격으로 한다. 또한 포화지방이나 트랜스지방, 당류를 적게 섭취해야 한다.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토마토케첩 등 단맛을 내는 음식은 단순당을 가지고 있어 체내에서 혈당을 빠르게 올리고 내려, 공복감을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폭식으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는 복합당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우유와 과일 등을 간식으로 먹고 빵,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사탕 등은 먹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음료는 물, 녹차, 블랙커피 등으로 대신한다.”

- 살을 찌게 하는 시간대가 따로 있나. “2000여명을 대상으로 아침에 많이 먹는 그룹과 저녁에 많이 먹는 그룹을 비교한 결과 똑같은 칼로리를 섭취해도 저녁에 많이 먹는 그룹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훨씬 높았다. 같은 사람이 아침에 많이 먹는 경우는 혈당이 좋아지고, 인슐린과 콜레스테롤 수치도 개선됐다. 반면에 저녁에 많이 먹는 그룹은 일시적으로 살이 빠져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두 체중이 증가했다.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이라는 격언은 맞는 말이지만 현대인이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아침은 굶지 말고 점심을 제대로 먹고 저녁은 가장 조금 드시는 것이 좋다.”

- 비만 치료를 하면 내장지방이 먼저 빠지는 이유는. “우리 몸은 신비해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면 피하보다 중요한 내장에서 지방이 먼저 줄어든다. 내장의 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제대로 한 분은 뱃살이 먼저 빠진다. 굶고 약만 드신 분은 체중이 줄어도 근육만 빠지기 때문에 뱃살은 줄지 않는다.”

- 요요가 반복되면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100㎏이라도 10년간 빠졌다 쪘다를 반복한 사람보다 처음 살빼기를 시작한 사람이 체중을 감량하기가 더 수월하다. 요요가 반복될 때마다 체지방이 늘고 근육은 감소하며 신체대사도 안 좋아진다. 그래서 환자에게 비만 치료를 제대로 안 할 거면 아예 시작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비만뿐만 아니라 비만과 관련된 만성질환, 대사증후군, 이상지질혈증을 주로 치료한다. 또한 약물뿐 아니라 근본적인 생활습관 교정을 통한 비만 예방과 재발 방지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일반인의 비만 관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흔 더 이상 살찌지 않는 식단’ ‘대사증후군 식사 가이드’ 등의 책도 펴냈다.

이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한국형 지중해 식단’ 개발이다. 이 교수가 주도해 개발한 한국형 지중해 식단은 일반 식단에 비해 약 300㎉가 적고, 탄수화물을 줄인 대신 지방과 단백질의 비중을 늘린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내의 일반 식단 구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2015년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은 탄수화물 55~65%, 지방 15~30%, 단백질 7~20% 비율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해, 탄수화물 50%, 지방 30~40%, 단백질 20~30% 비율로 섭취할 때 사망률이 가장 크게 낮아진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를 토대로 한국형 지중해 식단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5:3:2로 구성해 발표했다.

- ‘한국형’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람이 매일 올리브유가 잔뜩 들어간 샐러드를 먹는다면 지속하기가 힘들 것이다. 한국형 지중해 식단은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한식의 강점과 틀을 유지하면서 지중해식 식사의 장점을 더하고, 한국 사람의 특성과 입맛에 맞춘 식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주식인 밥이나 국수, 감자 등의 비율을 줄이고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가 풍부한 들기름, 올리브유, 등푸른생선, 해산물, 견과류의 섭취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단순당이나 첨가당이 과다하면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고 백미나 밀가루보다는 통곡류나 잡곡을 먹는 것이 좋다.”

- 한국형 지중해 식단이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되나. “10주 동안의 임상 연구를 한 결과 한국형 지중해 식단이 일반 식단보다 체중은 1.76㎏, 허리둘레는 1.73㎝를 더 감소시켰다. 또한 총콜레스테롤과 저밀도지단백(LDL) 콜레스테롤, 지방간 지수 등 이상지질혈증에 영향을 끼치는 지표들도 모두 의미 있게 감소했으며, 체내 염증 정도를 나타내는 백혈구 수치를 비롯해 공복 혈당, 공복 인슐린, 인슐린 저항성 지수도 줄었다.”

이 교수는 비만과 관련한 유전자 연구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비만세포의 생성과 사멸을 조절하는 칼슘 결합 단백질 운반체에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이 총칼로리의 30% 이상을 지방으로 섭취했을 때 복부비만 위험도가 3.73배 커졌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임상 영양저널’에 발표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비만 관련 유전자 연구는 아직 동물연구나 세포연구 단계이지만 미래에는 사람의 비만 치료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주목할 만한 비만 치료 신약이 있다면. “세마글루타이드(약품명 위고비)와 티제파티드(약품명 마운자로)가 출시를 앞두고 있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GLP-1(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는 호르몬) 작용제의 일종이다. 비만 치료 주사제인 삭센다를 개선해 일주일에 한 번 맞는 주사제(2.4mg)로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티제파티드는 GLP-1에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를 결합한 주사제로 역시 주 1회 맞는다. 5㎎, 10㎎, 15㎎ 세 가지 용량으로 개발됐다.”

- 체중 감소 효과는 어떤가.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세마글루타이드는 2.4㎎ 용량으로 68주간 치료한 결과 체중을 14.9% 줄였고, 티제파티드는 15㎎ 용량으로 72주간 치료한 결과 체중을 20.09% 감소시켰다. 그러나 각기 다른 조건에서 연구한 논문에서 제시된 수치만으로 두 약품의 우월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비만과 관련해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말은. “평생을 비만하지 않을 수 있는 생활습관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꾸준함이 중요한데, 체중 감량 초기에는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운동 없이는 목표치까지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음식은 약이고 운동은 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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