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발사돼 비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발사돼 비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3년 나로호 발사 이후 지지부진하던 우주 개발 사업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6월 21일에는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힘차게 우주로 날아올랐다. 이제 2027년까지 4번의 추가 발사를 통해 고도화 작업을 완료하면 우리도 미국·러시아·유럽연합·인도·일본·중국에 이어 7번째로 1.5t급 이상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기술을 갖게 된다. 8월에는 우리가 제작한 달 탐사선 ‘다누리호’도 미국 플로리다에서 달을 향한 4달 반의 긴 장정을 시작한다. 유인 달 탐사를 목표로 하는 미국 NASA(항공우주국)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2031년에는 우리도 달에 착륙선을 보낸다. ‘우주 강국’을 향한 우리의 야심찬 계획이다.

 

힘겨웠던 발사체 개발 사업

우리가 우주 개발을 목표로 처음 발사한 발사체는 1993년 ‘한국형 과학로켓’이었다. 고작 39㎞까지만 올라갔던 장난감 수준의 초라한 고체형 로켓이었다. 700㎞까지 올라간 누리호의 성공까지 무려 30년이 걸린 셈이다. 1996년 수립한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 계획’의 야심찬 계획보다 7년이나 늦어진 것이다.

발사체의 개발은 인공위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만 하는 대표적인 ‘거대과학’이다. 실제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한국형 우주 발사체 개발 사업에는 지금까지 무려 1조9572억원이 투입되었다. 아직도 누리호의 고도화 사업에 6874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야만 한다.

예산만 투입한다고 당장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우주로 진출한 우주 강국들의 노골적인 견제도 극복해야 한다. 우주 발사체가 곧바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 핑계다. 실제로 미사일 기술의 확산을 경계하는 35개 선진국들이 ‘미사일 통제체제(MTCR)’를 운영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는다는 핑계로 1987년 G7 국가들이 주도해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 것이다. 0.5t 이상의 탑재물을 싣고 300㎞ 이상 비행할 수 있는 발사체의 개발을 제한한다. 국제사회에서 ‘정의(正義)’는 언제나 강자(强者)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定義)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우주 발사체에는 거의 모든 첨단기술이 융합되어야만 한다. 21세기에 발사체를 온전하게 자력 개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선진국의 로켓 기술이 너무 멀리 가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주 강국으로 우뚝 선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9년부터 미국으로부터 델타 액체로켓의 설계·생산·발사에 관한 기술을 전수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미국이 오히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인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분단의 상황에 놓인 우리가 1970년대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는 불신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1979년에는 비교적 개발이 쉬운 고체 연료를 사용한 고성능 발사체의 개발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미사일 지침’을 강요했다. 지금도 미국은 국내법인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의 개정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가 발사체를 개발하더라도 미국의 기술이나 부품을 사용한 인공위성은 쏘아 올릴 수가 없다. 우주 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협력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주 개발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1994년 구소련의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러시아의 발사체 기술을 주목했다. 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 정몽구 당시 현대정공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러시아의 기술자들을 데려와서 액체로켓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치적 이유로 현대는 우주 산업을 통째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와의 협력도 중단되었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훗날 나로호 개발의 주역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성과였다. 과학기술에도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나로호의 개발도 그런 경험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1단 액체로켓을 사용한 나로호 사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냉혹했다. 심지어 우리의 예산으로 러시아의 액체로켓 개발을 도와주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MTCR 때문에 러시아의 액체로켓 기술을 직접 이전받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과학자들과 300여개 우주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자력으로 이룩한 누리호 발사의 성공은 빛나는 금자탑(金字塔)이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지속적이고 집요한 견제를 극복하고 이룩한 성과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저 남이 우주로 가니 우리도 가야겠다는 식의 우주 개발은 의미가 없다. 우리보다 앞선 우주 강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간기업들에 의한 ‘파괴적 혁신’도 함부로 흉내낼 일은 아니다. 스페이스X나 블루오리진처럼 무한정의 자본을 가진 모험적인 기업은 말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실용성보다 과학성이 더 감동적

우리의 지리적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우주 발사체를 쏘아 보낼 수 있는 궤도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일본·중국·대만 영공을 향해서 발사체를 발사할 수는 없다. 현재의 나로우주센터에서는 적도 상공의 정지궤도로 인공위성을 쏘아 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제주도에 우주센터를 추가로 건설하면 사정이 조금 나아질 수 있다.

경제성에 대한 고민도 무시할 수 없다. 누리호의 탑재체 발사 비용은 2018년 기준으로 ㎏당 3만2595달러라고 한다. ㎏당 2000달러에 불과한 스페이스X의 팰컨9과의 경쟁은 절대 쉬울 수가 없다. 우리가 고성능의 대형 액체로켓을 개발하고, 추력 조절을 비롯한 로켓 재활용 노하우를 갖춘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리적 한계와 규모의 경제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프랑스·러시아처럼 다른 나라의 인공위성 발사를 대행해주고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우주 산업’ 육성은 우리에게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주 개발의 목표 설정에서부터 진정한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경제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실용위성의 발사로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언제 가능할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는 달의 자원 탐사를 위한 달 궤도선·착륙선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우주 관광에 열을 올리는 미국의 우주 기업들과 경쟁에 나설 수도 없다.

경제성·상업성보다 과학적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과학 탐사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축구장 크기에 지나지 않는 소행성에 우주선을 착륙시키겠다는 일본,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달의 뒷면을 직접 살펴보겠다는 중국, 아예 처음부터 달이 아니라 화성을 목표로 선택한 UAE의 선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우주 개발의 여명기였던 1977년 태양계 전체를 탐사하는 보이저호를 쏘아 보냈던 창의적이고 과감한 도전 정신과 용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과학적 우주 탐사 분야의 국제 협력에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