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만들 디지털자산거래소는 문현금융단지에 위치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자리 잡을 계획이다. photo 김동환 조선일보 기자
부산시가 만들 디지털자산거래소는 문현금융단지에 위치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자리 잡을 계획이다. photo 김동환 조선일보 기자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의 명함을 받아보면 대부분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원래 이 자리를 차지하던 IT 대기업들이 판교 오피스로 둥지를 옮기면서 빈자리를 메운 곳들 중 하나가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다. 테헤란로가 블록체인 업체의 거점이 되면서 가상자산거래소들도 자연스레 이곳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업비트, 빗썸, 코빗 등 국내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들은 테헤란로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서울 중심의 블록체인 산업이 조성된 상황에서 최근 주목받는 건 부산의 도전이다. 부산시는 2019년 블록체인특구로 지정되었다. 특구 선정을 두고 제주도와 치열하게 경쟁해 승리했다. 현재 부산광역시 문현·센텀·동삼혁신 지구 등 17개 구역, 124.8㎢는 블록체인특구로 지정돼 있다. 이 지역은 블록체인 기술의 응용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실증서비스를 확산하는 실험이 시행되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가상자산 통합해 거래하는 거래소

‘비브릭(BBRIC)’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실험 중 하나다. 비브릭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부동산 집합투자 및 수익배분 서비스다. 누구나 소액으로 '브릭'이라는 토큰을 구입해 부동산에 쪼개기 투자를 할 수 있다.

현재 비브릭에서 취급하고 있는 빌딩은 부산 구도심인 초량에 위치한 14층짜리 빌딩 ‘부산 초량MDM타워’다. 만약 이곳에 투자하고 싶다면 ‘비브릭’ 앱을 다운받고 부산은행 계좌와 연동해 돈을 송금한 뒤 그곳에서 ‘브릭’을 구입하면 끝난다. 내가 구입한 브릭의 액수만큼 이 빌딩에 투자하는 개념이다. 지난 7월 6일 정오 기준 1브릭의 가격은 875원이다. 코인을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라면 비브릭은 이런 중개를 할 수 없다.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의 운영주체가 증권을 판매하고 유통하려면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고 거래소 허가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특구에서 시행되는 비브릭의 실험은 규제샌드박스를 적용받았기에 현실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블록체인에 진심인 부산이 최근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디지털자산거래소’를 설립하는 일이다.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는 기존 가상자산거래소와 차이를 두고 있다. 일단 취급할 가상자산의 종류가 훨씬 다양하다. 기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취급하는 암호화폐에 더해 STO(실물 기반으로 발행하는 증권형 토큰)와 NFT(대체불가능토큰) 등 현존하는 다양한 디지털자산을 통합해 모두 거래하려고 한다. 기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한발 진화한 모양새다. ICO(신규 암호화폐 공개)와 ‘디지털자산 커스터디(고객의 코인을 대신 맡아주면서 암호화폐 예치 이자를 지급)’와 같은 서비스도 업무 내용에 포함됐다.

부산시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거래소는 민간 주도로 운영된다. 하지만 시는 일부 지분을 가지며 공공성을 담보한다. 출자 대신 거래소의 입지나 행정 등을 지원하는 형태로 참여할 계획이다. 사업에 참가하는 컨소시엄에는 금융사, 가상자산거래소 등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다른 업종이 여기에 자율적으로 결합할 수 있지만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사업주 숫자에 제한은 두지 않았다. 수익은 컨소시엄 참여자의 지분에 따라 나누게 된다.

이미 부산시는 지난 5월 말 컨소시엄들로부터 사전정보요청서(RFI)를 접수했고 곧 제안요청서(RFP)를 받을 계획이다. 광역자치단체 주도의 거래소 설립은 그동안 전례가 없던 일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가 나서는 사실만으로도 기존 거래소들이 가지지 못했던 신뢰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부산에 들어설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와 공공성 강화라는 점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발전과 상생이라는 부분도 거래소가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다. 컨소시엄들도 그런 점을 고려해 파트너를 구성 중이다. 이번에 부산시에 RFI를 접수한 한 컨소시엄의 관계자는 “우리 컨소시엄에는 소상공인협회 등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상생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거래소는 그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지난해 국내 4대 가상자산거래소의 주요 실적은 엄청났다. 작년 한 해가 호황기였던 점을 감안해도 그랬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경우 2조2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뒀다. 4대 거래소 중 실적이 가장 저조한 코빗도 순이익이 198억원에 달했다. 대부분 거래 수수료로 얻은 수익이다.

다만 수익만큼이나 논란도 많았다. 기존 거래소들은 신뢰의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스캠(사기)’ 논란이나 불공정 거래 등이 대표적인데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는 상장 평가 기구를 만들고 거래도 꼼꼼하게 모니터링해 부실징후를 감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금융당국 규제 흐름 부산에 긍정적

부산의 도전은 획기적이지만 이런 시도가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일단 기존 거래소들의 틈바구니를 뚫어야 한다. 거래소들은 부산시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모양새다. 한 4대 거래소의 임원은 “일단 원화 거래가 이뤄져야 하는데 부산시와 부산은행이 함께하기 때문에 실명계좌 확보는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계획대로 퍼포먼스가 잘 난다면 일본의 ‘비트플라이어’처럼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부산시) 믿고 여기서 거래하라’는 방식이 통하면 소수의 코인만으로도 큰 볼륨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국내 거래소가 성장한 건 다양한 알트코인이 만들어낸 유동성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상장의 문턱이 높을 수 있다는 점은 한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비트플라이어는 일본 최대 거래소로 현재 유통되고 있는 코인이 15종에 불과하다. 국내 1등 거래소인 업비트에서는 100종이 넘는 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

반면 최근 금융당국의 흐름이 부산시의 도전에 긍정적이라는 전망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가상자산을 증권형 토큰(STO)과 비증권형 토큰으로 나누어 규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현존하는 가상자산 대다수는 증권형 토큰(STO)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큰데 이럴 경우 자본시장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기존 코인거래소는 더 이상 중개할 수 없게 된다. 이들 거래소는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했을 뿐, 증권거래소 또는 투자중개업 허가를 받은 게 아니다.

반면 증권형 토큰 거래를 들고나온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는 비브릭처럼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최근 증권형 토큰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증권사들이 이번 부산시의 사업에 관심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코인을 매개로 소액 실물자산 투자가 가능하다는 건 주식과 유사하다. 이 때문에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증권형 토큰 중개를 위해 필요한 역량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며 스터디가 한창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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