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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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 현장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들이 뒤늦게 외부로 알려지고 있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포스코 특유의 권위주의적 문화와 사측의 안일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포스코의 포항제철소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광양제철소에서도 지난해 9월 성폭행 사건이 벌어져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사건 관련 공소장에 따르면, 포스코 광양제철소 소속 직원 김모씨는 지난해 9월 8일 협력업체 여직원에게 ‘설비일을 알려주겠다’고 접근해 자택에서 성폭행했다. 김씨는 피해자가 입사한 첫날인 9월 6일부터 업무를 핑계로 자택에서 만나자고 요구했다. 피해자가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자 김씨는 “내가 (직위가 높은) 파티장이라 보는 눈이 많다”며 집으로 피해자를 유인했다고 한다.

이후 저녁 9시경 김씨는 본인 주거지에서 피해자와 설비 관련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피해자를 등 뒤에서 껴안으며 신체를 만졌고, 강제로 눕힌 다음 성폭행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이날 간신히 가해자의 집을 빠져나왔고 다음날 소속업체 부서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피해자의 문제제기로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자 김씨는 소셜미디어(SNS) 메신저로 “어떻게 해야 마음이 풀리겠느냐”는 등의 메시지를 보냈고, 지난해 11월에는 제철소에 마련된 휴게실에 피해자를 불러놓고 30분간 못 나가게 몸으로 막으며 합의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이에 피해자는 가해자를 유사강간 및 강간미수 등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김씨를 강간 미수 및 감금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주간조선 취재 결과, 포스코는 사건이 벌어지자 협력업체를 통해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포스코는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합의 이야기만 한 적은 없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도록 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는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 도는 등의 사내 2차 피해가 심각했다고 포스코 정도경영실에 보고했지만, 결과적으로 도움된 바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지난해 11월 협력업체에서 사실상 해고당했다. 업체 측은 '계약기간 만료'라고 했지만, 통보 바로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점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피해자는 기자와 만나 "업체 특성상 한 달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일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계약기간 만료라고 해도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이와 관련해 "회사에서는 피해사실 인지 후 즉시 근무지 변경을 시행하고 직책을 해임하는 등 인사조치를 병행했다"며 "회사는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안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광양제철소에서 일어난 사건은 최근 큰 파장이 일었던 포항제철소 여직원 성폭력 사건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 직원이 여성을 성폭행하려 했고,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자 회사에서 안이하게 대처하거나 합의하기를 권유했다는 것이다. 부서 및 현장에 여직원이 극히 적었다는 점,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부서와 회사에 이를 알렸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포항제철의 20대 여직원 A씨는 3년간 회사에서 성희롱성 발언과 성추행에 시달렸는데, 50여명의 부서 직원 중 여직원은 A씨 한 명뿐이었다. 지난해 12월 피해 여직원은 일단 성희롱 발언을 일삼던 B씨를 포스코 정도경영실에 신고했지만, 포스코는 B씨에게 감봉 3개월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또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다른 부서로 이전시켰다. 오랜 기간 성폭력에 시달리고도 회사 측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데다 상사에게 강간 미수까지 당한 A씨는 지난 6월 7일 가해자들을 고소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다음 날부터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등을 통해 고소 사실이 빠르게 퍼졌다. 포스코는 2주가량 지난 6월 21일에야 조사를 마치고 관계자 4명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조사 기간에 포스코는 피해자에게도 조사 요청을 했지만,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고 한다. 사측보다는 경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게 포스코의 주장이다. 피해자가 오히려 2차 피해를 받았다는 점도 유사하다. 포항제철소의 경우 피해자가 3년간 이어진 성추행을 참다못해 부서에 사건을 신고했으나, 오히려 신고 후에 부서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포스코 직원들은 이와 같은 일들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포스코 내부의 수직적이고 경직적인 사내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광양제철소에서 10년 이상 일한 한 직원은 “포스코는 ‘군대 문화’로 유명하지 않나.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에게 집적대거나 성희롱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분위기에서 문제 제기하기는 더 어렵다. 특히 협력업체 직원들은 계속 일하고 싶으니까, 또 (이런 일이 너무 많아) 일일이 신고하기도 어려우니까 말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포항제철 피해 여직원을 지원하는 포항여성회 등은 포스코와 계열사 내 추가적인 피해자가 더 있을 거라 보고 ‘포스코성폭력근절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관련 제보를 받고 있다. 포항제철소나 광양제철소 피해자들은 회사 측의 1차 조치가 미흡했기 때문에 결국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라는 데에 입을 모은다. 피해자를 돕고 있는 김정희 포항여성회장은 “이런 문제가 계속되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이전의 다른 가해까지 다 형사신고를 했다”고 했다.

 

감봉·징계유예·경고가 중징계?

포스코는 지난 6월 28일 포항제철소 관련 가해자 4명과 임원 6명을 ‘중징계’했다고 밝혔다. 가해자 4명 중 강간 미수 및 특수유사강간 혐의를 받는 직원과 지속적인 성추행을 일삼았던 부장급 직원은 징계면직(해고)됐다. 허벅지와 허리 등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 직원 2명은 각각 감봉, 징계유예됐다. 다른 한 명이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어, 추가로 조사한 후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는 게 포스코의 입장이다. 특히 임원 6명에 대해서 포스코는 관리 책임을 물어 김학동 대표이사 부회장과 생산기술본부장, 포항제철소 소장, 부소장 등에게 징계를 내렸는데, 김 부회장에게는 경고, 나머지 임원들에게는 감봉과 보직해임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징계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포스코 홍보실 관계자는 “부회장 등 임원은 계약직이라 감봉 등의 징계가 다음 계약기간 갱신에 타격이 크다. 경고도 임원에게는 중징계”라며 “경고와 감봉 다음 수준의 징계는 바로 해고”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포스코의 오래된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사내문화를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지난 7월 12일 경북 포항에서 만난 포스코의 한 20대 직원은 “사내문화는 그야말로 ‘썩은’ 수준이다. 여성 직원에 대한 성희롱은 빈번한데 그걸로 별로 문제 삼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얼굴이나 몸매 평가는 다반사고, 건배사에 여성 성기를 빗댄 단어를 넣어 다 같이 외치는 것도 여러 번 해봤다”고도 덧붙였다. 성비 불균형이 심한 만큼, 이로 인해 생기는 남성 중심 문화를 개선할 방법도 요구된다. 포스코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포스코 전체 임직원 1만7559명 중 여성직원은 998명으로 약 5% 수준이다. 포항여성회 김정희 회장은 “현장직이 많은 직군은 그렇다 쳐도, 사무직도 여성 직원이 20%가 채 안 된다”며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 등 전반적으로 문제가 산재해 있다 보니 누적되다가 한 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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