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전광판에 비트코인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5월 19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전광판에 비트코인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주변에서 ‘영끌’한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이든 주식투자든 혹은 가상화폐든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 사람은 어디든 있다.

서울 강남구 소재 한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A씨도 영끌족이다. 변호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신용대출을 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투자한 가상화폐 종류만 해도 다섯 가지가 넘는다. 한때는 50% 넘는 수익률을 거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는 영끌 투자를 시작한 이유를 “후회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이미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을 주변에서 봤어요. 다시 상승장이 시작되니 이때 이 기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이게 제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에 대한 믿음이 영끌 투자로 이끌었다는 사람은 많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본사를 둔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B씨는 스스로를 “시골 출신 흙수저”라고 말했다. 그는 2020년 모은 돈 5000만원과 신용대출을 받아 마련한 3000만원을 합해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시작했다가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투자 규모도 커졌다. 마이너스통장에서 조금씩 가져다 쓴 돈이 2000만원이 넘는다. 지금은 그 돈이 모두 “물려 있다”.

“월급쟁이가 월급을 모아봤자 얼마나 잘 살겠습니까. 남들처럼 아파트 살 돈 마련해줄 부모님도 없으니 주식 공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식투자로 얻을 수익만이 제 인생을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간조선이 취재 중 만난 영끌 투자자들은 모두 ‘영끌 투자가 나에게는 계층이동의 기회가 될 것으로 믿었다’는 말에 동의했다. 예를 들어 A씨의 경우는 고소득을 올리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신을 중산층으로 보지 않았다. “중산층이 되려면 서울 시내 ‘상급지’에 아파트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서울 송파구에 자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노후 대비가 되어 있는 중산층이다. A씨는 “30년 뒤에 제가 부모님처럼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A씨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청년세대는 자신은 물론 다음 세대의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낮게 본다.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란 현재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계층이동 가능성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를 테면 2021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서 30대 네 명 중 한 명만이 계층이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30대 미만에서도 27% 정도의 사람만이 계층이동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나머지는 비관적이었다.

지난 6월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 6월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계층이동 가능성이 적어졌다’는 착각

그런데 막상 학계에서는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 실제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는 중이다. 2018년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부모의 학력에 따라 자녀의 학력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살펴봤더니 격차가 예전에 비해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최 교수는 2020년, 정인관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등과 함께 2000년대 이후 발표된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보기도 했다. 그 결과 역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 감소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인관 교수와 박현준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과 교수가 2021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20년 동안 세대 간 이동 가능성이 줄어들었는지를 봤는데 딱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 두 교수의 결론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예전보다 계층이동 가능성이 적어졌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지금의 청년세대에서도 부모세대가 ‘흙수저’에서 ‘개천용’으로 뛰어 올라갈 수 있었던 가능성만큼 기회가 열려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청년들은 계층이동 가능성이 적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계층이동 가능성이 적어졌다’는 생각은 영끌 투자에 뛰어든 중요한 이유로, 이들이 왜 영끌 투자를 했을까 살펴볼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최성수 교수는 직접적 원인으로 “과다대표된 경험”을 들었다. 특정 경험들이 언론 등을 타고 확산하면서 비관적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부모세대보다 더 못살게 된 경험만큼 더 잘살게 된 경험도 많은데, 성공담은 주목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대신 중산층 정도의 계층에게 계층이동이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크게 다가온다. 최 교수는 “중상위 계층에게는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고 설명했다. “불확실한데 경쟁적인 상황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이제 위로의 계층이동이 불가능하구나, 비관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박선경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누가 세대 간 계층이동 가능성을 비관 혹은 낙관하는가’라는 논문을 썼다. 박 교수는 “모든 조건이 같다고 할 때 어렸을 때 유복할수록 현재 자기 상태를 비관하고, 계층이동 가능성도 낮게 본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부모세대와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데 “부모세대가 청년일 때는 취업하기 쉬웠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취업시장을 비관하는 것 같은 심리가 계층상승 이동 가능성을 낮게 보게 한다”는 말이다.

요약하자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 그러니까 최소한 중산층 정도가 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낮게 점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영끌도 불가능하다. 영끌을 하기 위해서는 대출이 가능한 신용도, 즉 최소한의 안정적인 지위가 필요하다. 부동산 영끌 투자는 더욱 그렇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자본금이 있어야 영끌 투자도 가능하다.

즉 모든 청년세대가 영끌 투자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것은 오류에 가까울 수 있다. 영끌 투자가 가능한 청년들만 영끌 투자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주간조선이 만난 영끌 투자자는 모두 정규직이거나 자신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부모님에게서 충분한 지원을 받는, 사회적 지위로 보면 중간 이상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영끌 투자는 계층상승 이동 욕구를 반영할 뿐 아니라 지금 지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 전략’이다. 영끌 투자자들이 ‘기회’라고 말하는 것은 더 잘살기 위한 ‘기회’라는 말도 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에게 익숙해진 ‘금융의 일상화’

문제는 이 방어 전략이 대출을 끌어 쓰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이 행동양식에 대해서는 청년의 부채문제를 연구해온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소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저는 ‘금융의 일상화’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는 이제 모든 욕구를 금융으로 해결합니다. 사회복지 지원도 금융으로 해결되는 상황입니다. 학자금 지원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대출이지요. 주거 지원이라고 하는데 역시 대출입니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필요를 조달하는 방식이 대출 같은 금융으로 해결됩니다.”

차를 살 때도, 스마트폰을 구입할 때도 금융은 현대인의 삶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청년세대에게는 금융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빚도 자산’이라는 말이 이를 반영한다.

그러니까 영끌족 청년 입장에서는 부동산·주식·가상화폐로 돈을 벌 수 있는, 즉 계층을 상승시킬 수 있는, 다시 말해 지금보다 잘살 가능성이 엿보이는 기회가 왔을 때 금융의 손을 빌리는 일은 매우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경험적으로 금융의 힘을 빌린 선배들이 확실히 계층이 상승하는 것도 보아 왔다.

가장 최근의 경험은 2017년부터 2018년 초까지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했던 것과 비슷한 시기 폭발적으로 올라간 부동산 가격에 대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주택담보대출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빚 내서 집 사라’ 기조를 견지했다. 청년들은 이때 실제로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2018년 부동산 상승기에 얼마나 큰 이득을 보았는지를 목격했다. 그리고 다시 자산가격이 상승할 조짐이 보이자 너도나도 금융으로 손을 뻗은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나면 청년세대가 단지 생각 없이 빚을 내 위험한 투자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에서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심리적 압박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게 영끌 투자였다. 말하자면 청년들은 자신의 불안감,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전략을 영끌 투자로 선택했다.

자산가격 상승기가 끝나고 고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영끌 투자에 사실상 실패한 청년들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이들이 가졌던 불안감, 상승욕구 같은 것들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파악해보면 앞으로의 사회문제가 짐작이 된다.

더욱이 모든 청년세대가 영끌 투자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영끌 투자를 할 수 있는 청년과 하지 못하는 청년 사이의 괴리감은 위험한 수준에 있다. 한영섭 소장은 “지금은 청년세대 안의 갈등도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청년의 투기심리가 마냥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영끌 하지 않은 청년들은 영끌을 한 청년을 비난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영끌을 한 사람이나 하지 않은 사람 모두 울분이 커져가고 있다. 영끌을 한 청년은 “단지 기회를 차지하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추락해버렸다”는 울분에, 영끌을 하지 못한 청년은 “그마저도 사치”라는 울분에 서로를 비난하는 실정이다.

그러니 영끌 문제를 대할 때에는 단지 금융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청년의 울분을 파악하고 이를 합리적이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영섭 소장은 “청년들의 울분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경제위기 속에서 더 큰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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