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7월 28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회의원 재적 3분의2가 동의할 경우 개헌할 수 있는 연성헌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뜨거운 감자를 끄집어냈다. 개헌론이다. 7월 28일 국회의장 취임 뒤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김 의장은 개헌 절차를 국회 의결만 거쳐도 가능하도록 간소화하자고 했다. 개헌론을 넘어 절차적 간소화까지 언급한, 한발짝 더 나아간 이야기다.

김 의장은 권력구조 개편에 관해서도 의견을 냈다. "4년 대통령 중임제 또는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국회로 옮기는 등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도 먼저 개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성헌법"이라면서 개헌 절차를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헌 절차가 어렵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란 얘기였다. 독일의 사례도 들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69년 동안 헌법을 60번 교체했다"면서 "개헌이 더 이상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국회의장들의 수많은 개헌론

국회의장의 첫 일성으로 개헌을 강조한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국회의장들도 모두 개헌을 원했고 저마다 나름의 생각을 피력했던 전례가 있다. 김원기 전 의장(2004~2006년)은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선 다른 어떤 개혁도 의미가 없다"며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시기에 개헌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임채정 전 의장(2006~2008년)도 '87년 체제'가 "시대의 변화를 담지 못해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강조하며 "민주주의의 삼권분립 원칙이 지켜져야 타협이 가능한데 우리는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가 있다. 국회는 아무런 권한이 없고, 매일 대선 전초전만 벌이는 것"이라며 개헌을 통한 권력분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형오 전 의장(2008~2010년)도 개헌론자였다. 의장이 된 이후 "임기 초반 국민적 지지를 얻었던 대통령들이 후반에는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한다"며 그 이유로 '우리의 권력구조'를 들고 "헌법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의화 전 의장(2014~2016년)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불신과 권력 불균형의 폐단을 막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세균 전 의장(2016~2018)은 2016년 제헌절 축사에서 "여야 지도부가 국가개조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늦어도 70주년 제헌절 이전에는 새로운 헌법이 공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개헌을 요청했다.

문희상 전 의장(2018~2020)도 2019년 제헌절 축사에서 개헌을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의 일기 속에 '오랫동안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해왔지만,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라며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도 제시한 바 있다. 김진표 의장 바로 전 의장직을 역임했던 박병석 전 의장은 “현행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구제는 한 표라도 더 많으면 모두 다 가져가는 구조다. 역대 대통령의 불행도 냉철히 뒤돌아봐야 한다. 권력 집중이 낳은 정치폐해를 청산하자"고 주장했다.

이처럼 출신 정당을 가릴 것 없이 다선의 정치인들은 모두 의장석에 앉게 되면 하나같이 개헌을 주장해왔다. 일단 성공한다면 놀랄만한 정치적 업적이 된다.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은 총 9차례 이루어졌지만 1987년 제9차 개정이 이루어진 뒤부터는 바뀐 적이 없다. '개헌을 제안하고 이루어낸 국회의장'이라는 명예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개헌을 주장한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의장에 올랐다는 건 다선의원으로 권력의 중추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뜻이다. 국무총리를 지내고 대선에도 출마했던 정세균 전 의장은 "개헌은 가볍게 꺼낼 문제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담당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며 현행 헌법을 30년간 변화한 세상에 맞게 어떤 식으로든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을 피력했고 자신이 그런 나팔수가 되기를 자처했다.

다만 국회의장들의 반복되는 개헌 요청에 시민들이 화답할 가능성은 낮다. 권력구조 개편 문제가 언급될수록 더 낮아진다. 분산된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론가 가야하는데 국회로 가는 방안에 대해서 반대 여론이 많다. 국민적 신뢰가 낮은 여의도에 권한을 더 얹어준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편이다. 

국민의힘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내각제는 커녕 이원집정부제로의 변화도 꾀하기 어렵다고 본다. 유권자들은 내 손으로 선출권력을 만드는 권리를 빼앗기는 것에 반감이 엄청나게 크다. 김 의장이 국회 의결로 개헌한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투표의 권리를 나에게서 뺏겠다는데 누가 동의하겠나"고 말했다. 당위보다 더 높은 불신의 벽을 넘는 건 그만큼 쉽지 않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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