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현지 시간) 아시아 순방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싱가포르에서 할리마 야콥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8월 1일(현지 시간) 아시아 순방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싱가포르에서 할리마 야콥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환구시보(环球时报)'는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기관지다.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지난 7월 29일 트위터를 통해 엄청난 말을 끄집어냈다.

"만일 펠로시 의장을 호위한 미국 전투기가 대만에 진입한다면 이건 중국 영공을 침입한 행위다. 인민해방군은 펠로시가 탄 항공기와 미군 전투기를 쫓을 권리가 있다. 효과가 없다면 격추할 수도 있다."

지금 중국은 미국 정치인의 대만 방문 예정으로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찼다. 아시아 국가를 순방 중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8월 3일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중국은 국방부가 직접 나서서 "미국이 독자 노선을 고집한다면 인민해방군은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이런 엄포를 듣고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7월 28일(미 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에 2시간 17분 간 전화 통화가 이뤄진 것도 펠로시 의장 건이 배경이 됐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이 화두가 됐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시 주석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에 대해 불장난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타이밍 상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도화선이 된 건 분명해 보인다.

중국이 불처럼 화가 난 이유

중국 공산당은 대만을 통치한 적이 없지만 그곳을 여전히 '회복해야 할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수십년 간 중국이 대만에 취한 전략은 국제무대에서 '고립'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때문에 대만에 국제적 합법성을 부여하는 시도에 대해서 중국은 극렬하게 반발한다. 실제로 1995년 리덩후이(李登輝) 당시 대만 총통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전례가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전ㆍ현직 미 하원의원들은 대만을 방문해 왔다. 하지만 이번 펠로시 의장 건에 유독 중국의 분노가 높은 건 그가 가진 정치적 위상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은 '미 대통령-부통령'에 이어 권력 서열 3번째에 자리한 인물이다.

게다가 중국을 상대로 전투력이 높은 대표적 정치인이다. 1991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2년 전 있었던 천안문 사태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걸고 성명을 낭독했다가 중국에서 구금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눈엣가시인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나기도 했고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반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주도한 인물이다. 

미국은 1979년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와 수교한 이후 대만과는 비공식적인 관계만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미묘한 '중도' 노선을 밟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예를 들어 비공식적인 사이지만 미국은 1979년 제정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 Act)에 따라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판매한다. 게다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뜻을 최근 바이든 대통령도 밝힌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대만관계법을 근거로 한다.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은 권위주의적 속성이 강해졌고 미국과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런 흐름 속에 대만은 미국의 품으로 좀 더 파고들고 있다. 중국 때문에 생긴 이런 대만의 움직임은 또 다시 중국의 분노를 불러오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대만 카드를 쓰고 있다"는 게 중국 정부가 격분하는 이유다.

왜 지금 대만을 찾을까

펠로시 의장의 방문 예정 시기는 중국이 정치적으로 예민할 때 이루어진다. 원래 그는 미국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4월에 대만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펠로시 의장 자신이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일정을 연기해야 했다. 그래서 8월 방문이 계획됐다.

8월은 중국에 중요한 달이다. 일단 8월에는 중국 정가의 최대 행사로 꼽히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는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약 280㎞ 떨어진 허베이성의 여름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중국 전·현직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현안을 놓고 방향을 전하는 모임이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가 특히 주목받는 건 시 주석의 3연임 때문이다. 가을에 열릴 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시 주석의 세 번째 당 총서기 취임 등 민감한 정치적 문제가 이번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수잔 셔크 '21세기 중국센터' 대표는 CNN에 "중국 국내 정치는 지금 매우 긴장된 시기이다. 시 주석 등 중국의 엘리트들은 펠로시의 방문이 시 주석의 지도력을 굴욕적으로 만든다고 볼 것이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강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돌 경고는 현실로 이뤄질까

중국이 어떤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고 있다. 다만 군사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대만해협 위기 이후 가장 큰 위기를 중국과 대만, 그리고 미국 사이에 가져올 수 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정부의 적대적인 행동 가능성을 낮게 본다. CNN은 "국방부 관계자들은 (적대적 행동이) 매우 희박한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 입장에서도 지금은 군사 충돌보다 내치에 신경써야 할 시점이다. 3연임을 앞둔 20차 당대회까지 해결해야 할 국내 문제가 많아서다. 당장 중국의 경기 둔화, 부동산 위기 심화, 실업률 상승, 코로나19 확산 등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미국 측이 갖는 우려는 미국과 중국이 대만해협 인근에서 항공 및 해상 작전을 자주 할수록 우발적인 사건이 생길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런 예기치 못한 충돌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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