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IT대 연구진이 제안한 거품 뗏목 개념도. 거품 박막을 우주에 쏘아보내면 안에 있던 기포가 팽창한 뒤 급속 냉각되면서 서로 촘촘히 연결돼 지구에 쏟아지는 햇빛을 막게 하자는 것이다. photo sciencealert.com
미국 MIT대 연구진이 제안한 거품 뗏목 개념도. 거품 박막을 우주에 쏘아보내면 안에 있던 기포가 팽창한 뒤 급속 냉각되면서 서로 촘촘히 연결돼 지구에 쏟아지는 햇빛을 막게 하자는 것이다. photo sciencealert.com

태양지구공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태양지구공학은 태양복사에너지(햇빛)를 막아 후끈 달아오른 지구의 기온을 낮추려는 기술이다. 지구과학도 아닌 지구공학이 등장한 이유는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만으로는 더워지는 지구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우주에 차양막(햇빛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구름을 만들어 햇빛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지구 구조전(戰)’에 투입될 기발한 지구공학 방식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브라질 크기만 한 차양막을 우주에 띄우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화제다. 이렇게 큰 차양막을 과연 우주로 보낼 수 있을까. 

 

브라질 크기의 ‘기포 뗏목’ 햇빛 2% 줄여

하늘은 기후학자들이 가장 먼저 지구공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다.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을 때 하늘 가득 덮은 황산 입자들이 대기에서 햇빛을 반사해 약 1년 동안 지구의 온도를 낮춘 적이 있다. 이 현상에 착안해 노벨화학상 수상자(1995년)인 파울 크뤼천은 2006년 ‘지상 20㎞ 성층권에 황화수소·아황산가스 형태의 미세입자 뿌리기’를 제안했다. 미세입자로 햇빛을 차단해 지구온난화를 줄이려는 지구공학의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왜 성층권일까. 성층권은 물질의 대류운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상태가 매우 안정하다. 만일 성층권 아래의 대류권에 뿌리면 황산 입자가 비로 변해 사라진다.

크뤼천이 제안한 방식은 지금 하버드대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데이비드 키스 교수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성층권에 탄산칼슘을 뿌려 햇빛을 차단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델링해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절반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발 더 나아가 프랭크 코이치 교수팀은 실제로 이를 검증해보려 했다. 지난해 6월 스웨덴에서 탄산칼슘 입자 600㎏을 실은 실험용 풍선을 성층권에 띄워 적게는 100g부터 많게는 2㎏까지 살포해봤다. 이를 통해 에어로졸의 햇빛 막는 효과를 직접 확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에어로졸이 일으키는 냉각 효과가 균등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스웨덴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 등이 반대해 실험이 취소됐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최근 매사추세츠공대(MIT) 과학자들이 내놨다.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는 반사장치를 아예 우주에 설치하자는 것이다. 용융 실리콘으로 만든 박막(얇은 막)의 거품 한 장을 우주로 보내 그곳에서 직접 브라질 크기의 거품 뗏목(Bubble raft)을 배치하자는 구상이다. 거품 박막이 우주에 도착하면 안에 있던 기포가 순식간에 팽창한 뒤 급속히 냉각돼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고, 거품들이 똑같은 크기로 촘촘히 연결돼 뗏목 형태의 결정을 이룬다. 그럴 경우 지구로 유입되는 햇빛을 2% 줄일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차양막인 거품 뗏목을 설치하는 곳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첫 번째 라그랑주 지점(L1)’이다. 지구에서 약 150만㎞ 떨어진 라그랑주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중력이 없어 거품 뗏목이 고정될 수 있다.

MIT 연구진의 예비 실험에 따르면 우주 환경과 비슷한 영하 50도, 0.0028기압 조건에서 500㎚(나노미터) 두께의 박막 기포를 팽창시킬 수 있음이 확인됐다. 거품 박막의 미세한 두께 변화는 다양한 파장의 햇빛을 반사하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우주 배송을 위해 대형 반사 직물을 복잡하게 접고 펼치는 ‘우산’과 달리, 거품 한 장을 제자리에 날리는 방식이라 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행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 요소가 많다.

 

우주 차양막 30년 전부터 제안

사실 우주 차양막은 MIT 연구진이 처음 낸 아이디어가 아니다. 1989년 미국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LLNL)의 제임스 얼리(James Early) 박사가 처음 제안했다. 그는 1930㎞ 넓이의 유리로 된 얇은 차양막을 라그랑주 지점(L1)에 띄우면 지구로 오는 햇빛을 1.8% 줄일 수 있고, 1.8%는 지구온난화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양이라고 밝혔다. 그의 제안은 국제학술지 ‘브리티시성간협회저널’에 발표됐지만, 어떤 디자인으로 어떻게 우주로 올려야 하는지 등의 구체적 실현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2006년에는 애리조나대 로저 엔젤(Roger Angel) 교수팀이 이를 한 단계 발전시켜 ‘태양 우산’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지름 60㎝, 두께 0.005㎜, 무게 1g의 작은 원반 모양의 유리판 16조(兆)개를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뒤 길이 9만9780㎞에 이르는 ‘고정된 형태의 긴 띠’ 모양의 인공 우산을 만들어 햇빛을 차단하자는 생각이다. 이런 인공 우산은 햇빛을 2%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두 계획의 실행에는 기술적 한계가 따른다. 얼리 박사의 차양막은 구성체가 너무 크고 무거워 우주로 가져가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차양막 전체 무게만도 2000만t에 이른다.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엔젤 교수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 대신 수많은 작은 태양 가리개를 설치하자는 안을 내놓았지만, 수많은 유리판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또 인위적으로 햇빛 양을 줄일 경우 강우량이 줄어들면서 지구의 물 순환 체계가 교란되고, 식물의 생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한편 MIT 연구진의 기포 방식은 다른 방식에 비해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한 번 뿌리게 되면 다시 거둬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라그랑주에 위치한 기포는 문제가 된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터뜨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기포 뗏목 방식에 소요될 비용을 계산하고 태양 반사장치를 띄울 최고의 기술을 찾을 계획이다. 반사장치를 작고 가볍게 만들면 제작과 발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줄겠지만, 빛의 압력을 받아 궤도를 벗어나는 등 수명이 짧아진다. 기포 뗏목을 보다 더 정교하게 설계한 후 저궤도 시험을 마치게 되면 세계와 협력해 실제로 배치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는 태양지구공학 연구에 연방자금 2억달러를 투입할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태양지구공학은 지구의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임시방편일 뿐 기후변화의 근본적 대책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탄소 배출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완화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단 지구가 갑작스러운 기후위기에 빠질 경우 좋은 대응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게 MIT 연구진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햇빛 차단 방법을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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