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인 흰긴수염고래. photo 게티이미지
멸종위기인 흰긴수염고래. photo 게티이미지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고래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특히 수염고랫과의 거대 고래들 중 흰긴수염고래(대왕고래)는 하루에 1000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무게로 환산하면 43.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지구촌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먹는 것으로 보고된 동물은 총 1500종인데 고래가 가장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먹는 대식가인 셈이다.

 

주식인 크릴새우 통해 미세플라스틱 쌓여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는 땅에 매립되기도 하지만 일부는 강이나 배수구 등을 타고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최근 수십 년간 바다에 축적되는 플라스틱 농도는 높아지고 있다. 2025년이면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현재의 2배까지 폭증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800만t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렇게 바다로 버려지는 것 중 15~31%가 1㎛(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1m)〜5㎜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거친 해류와 태양 자외선(UV)을 만나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건 해양생물이다. 뱃속에 들어간 썩지 않는 플라스틱 때문에 생존에 위협을 당하고 있다. 특히 대왕고래·긴수염고래·혹등고래 등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 대형 고래들의 미세플라스틱 섭취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스탠퍼드대 홉킨스해양연구소의 매슈 사보카 연구팀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샤이럴 카헤인 라포트 연구팀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고래의 몸길이는 대개 수~수십 미터에 달한다.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는 남방큰돌고래의 몸길이는 평균 2.6m이고, 몸집이 가장 큰 종인 대왕고래는 30m가 넘는다. 현존하는 육상동물 중 가장 몸집이 큰 코끼리(5~7m)와 비교해 봐도 어마어마한 크기다. 고래가 이렇게 거대한 몸집을 가진 비결은 육지에서보다 바다에서 중력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만 주변에 서식하는 대왕고래·긴수염고래·혹등고래 등 191마리의 대형 고래를 관찰했다. 이들의 등에 위성 송신기가 달린 전자장치를 부착한 후 먹이 활동을 추적한 것이다. 고래들이 어느 정도의 수심에서 얼마나 자주 먹이를 잡아먹는지, 해당 수심에 부유하는 평균 미세플라스틱의 양은 얼마인지 등을 조사하고, 이들 자료를 기반으로 고래들이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을 분석했다.

그 결과 191마리의 고래들은 주로 수심 50〜250m에서 먹이 활동을 했다. 이곳은 바다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높은 수역이다. 대왕고래는 이 수역에서 하루 최대 1000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을 삼켰고, 먹이 활동이 왕성한 3~4월에는 하루 평균 10억개를 섭취했다. 또 크기가 대왕고래에 버금가는 긴수염고래는 하루 600만개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이끈 사보카 박사후연구원에 따르면 크릴새우를 주요 먹이로 삼는 고래일수록 체내 미세플라스틱 비율이 높았다. 몸속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의 98~99%가 물과 함께 먹은 게 아니라 먹이인 크릴새우를 섭취하는 과정에서 흡수된 것임을 발견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러한 사실은 혹등고래를 통해 더욱 확실해졌다. 같은 혹등고래속에 속할지라도 크릴새우를 먹는 개체는 하루 평균 100만개를 섭취하지만 정어리와 멸치를 먹는 개체는 하루 20만개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 섭취량을 알면 고래의 생명 위험을 평가하는 데 유리하다.

고래는 크게 수염고래아목과 이빨고래아목으로 나뉜다.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 고래는 위턱에 긴 수염이 달려 있어서 물을 빨아들이고 난 후 수염으로 거른 크릴새우를 주로 섭취한다. 덩치가 큰 고래들은 이빨이 잘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빨고래아목에 속하는 범고래와 향유고래, 돌고래 등은 종류에 따라 작은 어류부터 큰 포유동물까지 사냥해서 잡아먹는다. 덩치가 작은 대신 이빨이 잘 발달되어서 해저로 들어가 커다란 먹이를 잡아먹는다. 그렇더라도 작은 크릴새우나 플랑크톤을 잡아먹는 덩치 큰 고래들의 하루 먹이 섭취량에 비하면 훨씬 적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렸다.

논문의 주 저자인 샤이럴 카헤인 라포트는 이번 연구 지역보다 플라스틱 오염이 더 심한 바다에서는 대왕고래의 하루 미세플라스틱 섭취량이 약 1억5000만개는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북해, 지중해, 동남아시아 등지의 바다가 캘리포니아 해안보다 미세플라스틱으로 훨씬 더 많이 오염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랍에미리트의 한 소년이 해변에 밀려온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아랍에미리트의 한 소년이 해변에 밀려온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먹이사슬 연결된 인간도 악영향 우려

미세플라스틱은 고래와 해양생물은 물론 결국엔 사람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크릴새우는 멸치나 정어리의 먹이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어리를 사람이 먹게 된다면 사람의 뱃속으로도 미세플라스틱이 옮겨지기 때문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은 2019년 사람 한 명이 미세플라스틱을 매주 5g(약 2000개 조각) 정도 먹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신용카드 한 장 분량과 맞먹는 양이다. 이를 한 달로 계산하면 21g, 연간 250g을 약간 넘는 양이다. 평생 동안은 20㎏의 미세플라스틱을 먹는다고 한다.

미세플라스틱의 진짜 문제는 독성이다. 플라스틱 제품에 코팅된 화학첨가물이 물에 녹아 나오면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플라스틱 자체에 비스페놀·프탈레이트 등 내분비계 교란 물질(환경호르몬)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인체의 호르몬과 구조가 비슷해 생물체 몸속으로 들어가면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켜 생물체의 성장과 생식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멸종을 불러올 수도 있다. 현재 대왕고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하는 ‘멸종위기종’으로 관리되고 있다.

다행히 몸속에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은 대부분 배출된다. 하지만 간혹 일부가 장기 등에 남아 있기도 한다. 2018년 미국 찰스턴대 연구팀은 야생 돌고래에서 프탈레이트를 발견했는데, 이 물질이 3~6개월 지나도 배설되지 않아 돌고래의 내분비계를 교란시켰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입자 크기가 작을수록 독성 영향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세포막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수염고래아목 연구는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세플라스틱이 고래의 건강에 어떠한 잠재적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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