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북한이 지난 10월 윤석열 정부에 막후 접촉을 제안해와 남북 당국 관계자가 제3국에서 최소 두 차례 이상 만남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주간조선이 복수의 대북 고위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주(駐)홍콩 북한 총영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취지의 제안을 했고, 이후 남북 간 두 차례 물밑 접촉이 이뤄졌다. 우리 측에서는 1차 접촉 때는 국가정보원 국장급이, 2차 접촉에는 해외·대북 담당인 권춘택 1차장(차관급)이 직접 대화에 나섰다. 

윤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밝힌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할 경우 식량·인프라 지원 등 경제협력과 함께 미·북 관계 정상화와 재래식 무력 감축 논의를 비롯한 정치·군사적 상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제안한 비핵화 로드맵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접촉을 제안해 온 시기가 도발이 잇따르던 지난 10월이라는 점에서 회담을 제안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지난 9월 25일 동해상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10월 28일까지 총 18차례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의 홍콩 총영사관이 우리 대북 전략기관에 접촉 제의를 해온 정확한 날짜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미 확장억제 연합훈련에 맞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연쇄 발사를 감행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미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핵공유 지지 여론이 고조되던 9월 말 혹은 10월 초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초 북측의 접촉 제의를 받은 윤 정부는 국가정보원 국장급 인사를 파견해 ‘담대한 구상’에 관한 설명을 하도록 조치했다. 

당시 국정원 국장급 인사가 접촉한 북측 인사가 홍콩 총영사뿐이었는지, 평양에서 파견된 대남 전략 분야의 같은 레벨 카운터파트도 동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의 홍콩 총영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일가로 알려져 있다. ‘상당히 젊은 나이임에도 비교적 고위직인 총영사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주(駐)홍콩 북한총영사 통해 제안

10월 남북 막후 접촉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장급 인사 간 접촉이 끝나자마자 윤 정부는 권 차장을 파견해 동남아 지역에서 북측과 2차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접촉이나 대화도 국제 외교 관례를 따른다고 본다면 2차 접촉에 국장급이 아닌 차관급 인사가 파견됐다는 것은 북한과의 첫 번째 만남이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에서도 당·정·군 한 곳에서 대남 전략을 맡고 있는 비슷한 레벨의 인사가 2차 접촉의 카운터파트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남북 차관급 막후 접촉은 지난 10월 말까지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고 그 후인 11월 초순까지도 접촉이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북한 측 당국자와 만났던 차관급 인사가 10월 말에 예정되어 있던 소속 기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 다시 출국했다는 데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남북 막후 접촉 이후 우리 정부 일각에서 북한과의 본격적인 협상에 대비해 ‘담대한 구상’을 구체화시키는 후속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남북 간의 긴장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도 비밀스러운 물밑 접촉이 있었던 과거 사례에 비춰 보면 이번의 남북 막후 접촉도 ‘통상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 위협을 통해 한반도 긴장 수위를 극도로 끌어올린 상황에서 돌연 남북 접촉을 제의해온 배경과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지난 11월 18일 한·미·일 3국의 확장억제 공조 강화에 반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만 25번이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고, 윤 정부를 향해 거친 언사를 이어왔다.  

정부 관계자들은 남북 막후 접촉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제안 자체가 없었다”며 “완전히 잘못된 소문”이라고 반박했다. 국정원 관계자 역시 “확인한 결과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이에 만남의 당사자를 권춘택 1차장으로 특정한 것에 대한 확인인지, 남북 간 대화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확인인지 묻자 “남북 간 대화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답”이었다고 말했다.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실장은 주간조선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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