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18일 ‘자주통일충북동지회’ 한 조직원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해 8월 18일 ‘자주통일충북동지회’ 한 조직원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연합

이른바 청주간첩단사건(자주통일충북동지회) 재판이 장기 휴업(?) 중이다. 작년 8월 국정원과 경찰청은 청주지역에서 암약하던 청주간첩단 일당 4명을 검거했다. 이 중 3명은 구속되었고, 1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구속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1심 판결이 언제 끝날지는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이 와중에 올 3월 조직원 1명은 구속기간이 만료되어 석방되었고, 5월엔 검찰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2명이 추가로 석방되었다. 현재 청주간첩단사건으로 기소된 피고 4명이 모두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게 2022년 대한민국 대공전선의 현주소이다.

 

재판부 보석신청 받아들여 2명 추가 석방

국정원은 2015년경부터 청주간첩단을 추적해 2017년 5월 총책 박모씨가 해외에서 북한공작원을 접선한 사실 등을 포착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했지만 구속영장을 발부받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2018년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려 했으나 당시 남북관계 개선(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등을 빌미로 부정적 기류가 형성되어 보류되었다. 대공수사팀의 끈질긴 노력 끝에 겨우 2021년 5월에서야 사법처리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같은해 5월 초와 중순에 청구한 압수수색영장과 체포영장이 법원에서 두 차례나 통째로 기각되었다. 세 번째 신청 끝에야 겨우 압수수색영장만 발부받아 관련자 4명의 거소에 대해 압수수색을 집행하였다. 8월에 가서야 17여년간 암약하던 간첩혐의자 4명 중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었다.

청주간첩단은 총책 박모씨가 201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아 2017년 8월 13일 결성한 북한의 대남지하당이다. 원래는 ‘조선노동당 자주통일 충북지역당’으로 정하려 했으나, 북한이 ‘조선노동당’이란 표현이 들어가면 안 되며 어떤 경우에도 ‘본사(북한)’와의 연계성을 노출시키면 안 된다는 지침을 받고 ‘자주통일충북동지회’로 정한 것이다. 이들이 북한과 연계를 맺은 기간은 최소 17년이 넘을 것으로 판단된다. 청주간첩단의 대북보고문(2019년 11월 4일)에서 이들이 2004년부터 암약해 왔음을 알 수 있는 표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청주간첩단은 국가보안법 4조(목적수행 간첩), 5조(금품수수), 6조(잠입탈출), 7조(찬양·고무, 이적단체 구성), 8조(회합·통신), 9조(편의제공)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들은 북한 지령에 따라 ‘자주통일충북동지회’를 결성하고 특정 정보를 수집, 보고하였다. 중국 선양에서 2만달러의 공작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했는데 확인된 것만 2017년 5월 베이징, 2018년 캄보디아 프놈펜, 2019년 11월 중국 선양 등 3차례이다. 또한 하위당을 구축하기 위해 충북지역의 간호사, 보육교사, 비정규직 노동자, 변호사, 정당원 등 60여명을 포섭(기도)하였다.

또한 대통령 선거 및 국회의원 총선거 등에 개입하여 선거공작을 전개했는데, 2017년 대선 당시 관련자 4명 모두 문재인 후보의 특보로 위촉되어 충북지역에서 당선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이들은 반(反)보수투쟁, 국가보안법 철폐와 국정원 해체투쟁 및 F35A(스텔스 전투기) 도입반대 등 반미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조직결성 시 충성맹세문을 혈서로 작성해 사진을 찍어 북한에 보고하고, 자체 인터넷 뉴스매체를 발판으로 김정은 위대성 및 북한체제 미화찬양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당시 대공수사당국이 확보한 핵심 증거는 ①압수수색 때 확보한 USB(대북보고 및 지령문 84건 파일) 등 압수물 ②통신제한조치 영장으로 지속적으로 확보한 통신내용 ③해외에서 북한공작원 접선, 회합 채증자료 등이다. 특히 압수 USB에서 확보한 북한과의 간첩교신 84건(2017년 6월~2021년 5월)의 지령문과 보고문을 보면 얼마나 치밀하게 북한과 통신하며 간첩활동을 수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청주간첩단 사건은 우리 사회 일각에 “아직도 간첩이 있느냐”는 질문에 명백한 답을 주었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자랑했던 남북화해 국면에도 아랑곳없이 북한이 지속적인 대남 간첩공작을 전개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청주간첩단 사건 재판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변호인 측의 교묘한 재판지연 전술과 이에 말려든(?) 재판부 탓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6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 이래 올 11월 23일까지 겨우 9번 재판이 열렸다. 재판을 끝내고 다음 재판이 열리기까지 50일이 걸린 경우만 3차례(올해 3·7·11월)다. 첫 공판부터 피고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이른바 재판연기전술을 구사하였다. 법관 기피신청이 연거푸 기각되었는데도 거듭 불복하면서 재항고하여 이 사안은 현재 대법원으로까지 넘어간 상태다. 또한 재판 중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며 결정 시까지 공판 연기를 주장하였다. 또한 변호인들을 수시로 교체한 후 기록열람과 검토를 이유로 공판 재개를 방해하고 있다.

검찰의 조속한 재판진행 요구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변호인 측의 재판지연 전술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재판진행 중 변호인들이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도 제지하지 않고 방관하였다. 통상 간첩사건 등 국가안보 관련 재판의 경우 집중심리 등을 통해 구속기간(최대 6개월) 이내에 1심 재판을 마치나 청주간첩단 재판부는 ‘세월아 네월아’식으로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거리를 활보하는 청주간첩단 피고인들을 보며 일부 국민들은 저래도 되나 하는 걱정을 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요란했던 간첩사건이 결국 이런 것이냐, 조작 아니냐며 조롱거리 대상으로 입에 올리고 있다. 간첩사건 피고인들의 활보는 증거인멸의 기회를 주는 것이며 제2, 제3의 안보위협을 방치하는 것이다.

     

집중심리 없이 질질 끄는 재판

대한민국의 형사법 체계를 교묘히 악용(?)하는 변호인들도 문제지만, 다른 사건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사건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느슨하게 진행하는 재판부의 행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국민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며 법 정의 실현을 위한 재판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7년 넘게 간첩검거와 사법처리를 위해 헌신했던 대공수사팀은 천신만고 끝에 ‘권력의 벽’을 넘었더니 이제는 ‘피고들의 법정투쟁’에 이어 ‘재판의 벽’을 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울분을 참고 있다. 청주간첩단 재판부는 조속히 공판을 진행해야 한다. 차제에 간첩사건 등 안보사건에서 재판지연 전술이 통하지 못하도록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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