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하던 지난 8월경 만난 한 야권 정치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보수층 유권자들에 대한 존경심도 든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보수층에서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 아닌가. 이들이 ‘우리는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는 경고를 윤 대통령에게 보내고 있는 거다. ‘닥치고 지지’하는 진보층 팬덤과는 다른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다시 끌어모을지가 관건인데, 다만 그 방식이 ‘협치’나 ‘통합’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 인사의 예상대로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세는 보수층과 일부 중도보수의 집결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보수층이 집결한 이유는 일단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에 호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는 안전운임제(화물차주의 최저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를 지속하고 대상 품목을 확대하는 논의를 하겠다며 타협한 바 있다. 그러자 보수층으로부터 “취임 초기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여러 악재들과 겹치면서 보수층 지지율도 빠져나갔다. 특히 윤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던 60대 이상과 보수층에서조차 지지율이 떨어졌다. 7월 1주 차 50%였던 60대 지지율은 7월 2주 차에는 39%로 떨어졌고, 자신을 ‘보수층’이라고 밝힌 응답자 지지율도 62%에서 53%로 하락했다.(한국갤럽 조사) 그런데 화물연대가 5개월 만에 다시 파업에 돌입하자 이번엔 윤 대통령의 태도가 달라졌고 보수층이 재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권교체 이후 여권에선 문재인 정권 당시 일어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등을 파헤쳤다. 그 결과 전 정권에서 은폐되거나 조작된 정황이 발견됐고, 이로 인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재인 정권 당시 고위 인사들이 연이어 구속됐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신(新)적폐청산’이 이뤄진 시기에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상 새 정권이 들어서고 전 정권의 부패와 비위 등이 밝혀지면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해왔다. 그런데 이 시기 인사 문제와 김건희 여사 논란 등으로 인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까지 떨어졌다.

윤 대통령은 이른바 심판자 역할로 정치권에 등장해 대통령에까지 당선됐다. 그런 그에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심판자 성격에만 머물지 않고 전 정권과 분명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윤 대통령 지지율이 노조문제에 대해 강경 대응하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윤석열만의 무엇’이 구체화됐다

민노총 등 강성노조에 대한 원칙적 대응,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전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과는 결이 다르다. 이는 노조의 불법파업 등에 대해 ‘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분명한 메시지를 준 것으로 비쳤다. 윤석열 정부만의 ‘차별화’인 셈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지난해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 대통령선거,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3연패했다. 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으로 바뀌고 또 심판하겠다고 하니 호응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만의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는데,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니즈’가 약간은 충족된 것 같다.”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영구 시행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이자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2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勞) 측의 불법행위든, 사(社) 측 불법행위든 법과 원칙을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11월 29일 국무회의에서도 윤 대통령은 “내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우고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법행위 책임은 끝까지 엄정하게 물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선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며 “불법행위와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를 비롯한 민노총 주도 파업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데는 여론의 뒷받침이 있다. 일단 이번 파업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많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는 응답이 58%였다. ‘노조의 정당한 단체행위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은 34%에 그쳤다. 이 중 보수층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81%로 우세했다. 파업의 방식이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진 것이 여론이 파업에 부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여론이 많다. 정당한 과정을 통해 요구한다기보다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MZ세대도 노조투쟁 방식에 피로감

윤 대통령은 공정과 법치를 핵심 가치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20대 대통령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12월 1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정권교체’(27%) 다음이 ‘공정·정의’(11%)였다. 지난 6월 화물연대와 정부가 합의했을 당시 보수층에선 “떼법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집회, 파업 등으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방식을 ‘떼법’이라고 보는 관점은 보수층에 주로 퍼져 있다. 2013년 12월 철도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 대응을 강조했었다. 당시 철도노조의 파업은 22일 만인 12월 30일 종료됐고, 파업 직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랐다. 당시 여론조사에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층은 10명 중 9명꼴로 파업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리얼미터의 2014년 1월 첫째 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4.5%로 전주 대비 6%포인트 상승했다.

근래에는 젊은 세대들도 ‘총파업’ ‘궐기’ ‘투쟁’ 등의 방식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지난 12월 1일 총파업 하루 만에 파업을 철회한 것도 젊은 직원들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교통공사에는 제1노조인 민노총 산하 서울교통공사노조, 제2노조인 한국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 제3노조인 서울교통공사올바른노조가 있다. 이 중 젊은 직원이 상당수인 올바른노조는 “민노총 소속 공사노조가 주도하는 불합리한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낀다”며 파업에 아예 불참했다.

민노총으로 상징되는 ‘강성노조’에 동참하기 꺼려진다는 여론도 젊은 세대 사이에선 늘어나고 있다.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는 남모(30)씨는 “노조 덕분에 직원들의 임금이나 복지 향상이 이뤄지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런데 왜 항상 화난 모습으로 싸우려 드는지 모르겠다. 젊은 직원들 중에 조끼 입고 빨간 머리띠 두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구정우 교수는 “민노총 등 강성노조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불편을 초래해야 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서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과거 민주화 투쟁 당시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성주 정의당 전 정책위의장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초강경책으로 일관하는 대응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화물연대 등이 파업을 하기에 앞서 국민들의 지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작업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의 이유 중 하나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 중단’을 꼽는 이들도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11월 21일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8일 도어스테핑 직후 MBC 기자와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이의 언쟁이 벌어져 논란이 된 탓이다. 당시 MBC 기자는 도어스테핑을 마치고 들어가는 윤 대통령을 향해 질문을 던졌고, 비서관이 이를 지적하면서 서로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도어스테핑 중단도 긍정적 작용

사실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열면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도어스테핑은 오히려 지지율 악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성이 줄어들자 윤 대통령한테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여론도 늘었다. 이런 배경에는 여전히 ‘입 무거운 대통령’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국민 정서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층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광웅 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은 “한국에는 과거 왕의 모습을 대통령에 투영시키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면서 “특히 지지층의 경우 대통령이 말실수하는 모습을 보기 원치 않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당대표 선출되느냐가 향후 지지율 관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를 넘어 대선 득표율(48.56%)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선 내년 초로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당대표가 선출되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취임 이후 참모들이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면서 “전당대회를 통해 당이 정비가 되고 대통령을 좀 더 안정적으로 서포트하는 상황이 되면 국정 지지도도 자연스럽게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광웅 원장은 “필요할 때는 대통령을 견제도 할 줄 아는 당대표여야 대통령 지지율도 오른다”면서 “일방적으로 순종하기보다 대통령과 수평적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당대표가 되어야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도 보수층의 결집세를 유지시킬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대표는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고 허위 발언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재판의 1심 결과는 내년 초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때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5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된다. 민주당은 대선 비용 약 434억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반환해야 한다. 이러한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면 민주당 내에서 큰 파장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보수층의 결집세는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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