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개막한 ‘2022 덕성 취업페스티벌’은 기업 채용, 이미지컨설팅 등 상담을 받으려는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북적였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개막한 ‘2022 덕성 취업페스티벌’은 기업 채용, 이미지컨설팅 등 상담을 받으려는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북적였다. photo 뉴시스

“정년연장에 찬성하나요, 반대하나요?”

이 하나의 질문을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 후반의 아버지라면 ‘찬성’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생 대열에 합류해야 할 아들이라면 아버지와 정반대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반대’에 한 표를 던질지 모른다. 아버지의 정년연장이 아들의 취업을 가로막을지 모른다는 인식은 ‘정년연장’ 문제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정년연장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반대 논리 중 하나는 청년실업과의 연관성이다. 청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세대 분절의 담론은 진실 여부를 떠나 청년들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계에서는 이를 ‘세대 간 고용대체’ 가설이라고 부른다.

연구 결과는 둘째 치더라도 청년들의 인식, 그 자체를 한번 살펴보자. 2021년 9월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여론조사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거주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체 응답자 중 63.9%는 ‘정년연장이 청년 신규 채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청년들은 정년연장 때 함께 요구되는 제도로 근로 형태 다양화 등 고용시장 유연화(33.6%)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뒤를 이은 건 임금피크제(27.0%)였다.

 

60세 정년 실시 뒤 청년실업률 상승해 

청년 세대는 정년연장과 청년실업을 일종의 인과관계처럼 바라본다. 정년연장이 청년실업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청년뿐 아니라 고용자도 같은 논리를 정년연장의 반대 근거로 댄다. 한 대기업의 인사 담당 임원은 “만약 65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법이 통과됐을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정년을 연장하면 그걸로 그냥 끝이다. 그때까지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비율상 그리 많지 않다”면서 이렇게 전망했다. “정년 논의가 회사 직원들 입장에서 불편하게 와닿는 건 적용받는 대상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는 정년이 늘어나도 정년까지 다니지 못한다. 운 좋게 정년연장을 적용받고 보장받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이윤이 높은 기업이라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곳이라면 이렇게 얘기할 거다. 정년연장? 그거 하면 신규채용 못 한다고. 현장에서는 둘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있다.”

60세 정년도 법으로 강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권고조항이었던 60세 정년은 2013년 4월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법으로 규정됐다. 각 사업체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하며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는 정년을 60세로 간주한다. 사업체 규모에 따라 정년 60세는 단계적으로 적용됐는데 300인 이상 사업장은 2016년부터, 30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17년부터 개정 내용이 시행됐다.

당시에도 정년 60세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청년 고용의 절벽’을 근거로 들었다. 고용 감소 요인이 될지 모른다는 지적에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내세운 건 임금 체계의 개편이었다. 임금 체계를 바꿔 기업이 정년을 늘리더라도 비용을 줄여 신규 채용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골자였다.

안진수 노무사(노무법인 유앤)는 당시 임금 체계 개편안으로 제시된 임금피크제 도입이 꽤 어려웠다고 기억한다. “당시에도 정년연장을 하면서 청년 채용 문제가 떠올랐다. 그때 정부가 강조했던 고용률 70%에 도달하기 위해서 정년연장 법안 안에 임금 체계 개편을 넣었다. 그런데 임금 체계 개편을 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임금피크제’라는 말을 정확하게 넣지 않았다. 법으로 임금피크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도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일단 60세로 늘리긴 했지만 임금 체계를 손대는 작업에서 진통을 겪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법 시행 시기와 맞물려 청년실업률이 올라갔다. 7~8%대에 머물던 청년실업률은 정년 60세 법제화가 실시된 2016년과 2017년 모두 9.8%를 기록하며 상승했다. 실업률 상승을 정년연장 탓으로만 해석하는 건 무리지만 일자리를 물려줘야 할 사람들이 일을 더 할 수 있게 되면서 실업률에 기여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정년연장과 청년실업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는 일관적이지 않다. 먼저 정년연장이 청년실업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60세 정년연장이 법제화되기 전인 2010년대 초중반까지는 고령자와 청년층의 고용률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많았는데 고령층의 고용률이 높아지면 청년층 고용률도 높다는 결과가 주류를 이룬다.

2010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나온 ‘세대 간 고용 대체 가능성 연구’ 보고서는 1982년 7월~2010년 10월 사이 월별 경제활동인구조사 분석을 바탕으로 이렇게 결론 내린다. “고령층 고용률은 청년층 실업률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과를 가지지 않으며 청년층 고용과 고령층 고용 사이에 부정적인 상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청년층과 고령층 간에는 직종 분리(청년층과 고령층이 하는 일이 다르다)가 상당해 둘 사이가 대체관계라기보다 보완관계라고 본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0년 내놓은 ‘연령세대별 일자리 변화와 고용정책 과제’ 보고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상용근로자 수인 202만3000명은 전체 베이비붐 세대의 생산가능인구 798만9000명 중 25.3%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대다수 베이비붐 세대 취업자들은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비정규직이거나 자영업 등 불안정 고용에 처해 있어서 이들의 정년연장으로 인한 청년층 일자리의 악화는 지나치게 과대평가됐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2월 8일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부위원장(왼쪽 셋째)이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삼성연대의 요구 사항 중에는 임금피크제 폐지 및 정년 65세 연장이 포함됐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2월 8일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부위원장(왼쪽 셋째)이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삼성연대의 요구 사항 중에는 임금피크제 폐지 및 정년 65세 연장이 포함됐다. photo 뉴시스

고령 고용 1명 늘면 청년 고용 0.2명 감소 

2013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정년연장, 임금피크제와 같은 고령자 고용정책의 영향을 연구하는 흐름이 주를 이뤘다. 정년연장으로 고령자 고용이 증가했지만 청년 고용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에서는 2013년부터 2019년 3월까지 고용보험에 가입된 모든 사업체와 근로자의 정보를 수록한 ‘고용보험DB’를 분석한다. 2013년은 ‘60세 정년’이 입법화된 때이고 이 제도는 2016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법제화 뒤 청년(15~29세) 고용에 미친 영향을 추측해볼 수 있는 연구였다.

보고서는 “민간기업의 정년 연장으로 1명의 고령 고용이 증가할 때 청년 고용은 평균적으로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특히 사업체의 규모가 클수록 청년 고용에 미치는 감소세는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10~99인 규모의 사업체는 정년 연장으로 고령 고용이 1명 증가할 때 청년 고용의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100~499명 사업체에서는 약 0.19명, 500~999명 사업체에서는 약 0.26명의 청년 고용 감소가 생기는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한 안효섭 KDI 연구위원은 “이러한 효과는 사업체 규모가 크거나 고용 보호가 강한 산업분야에서 강하게 나타났다”며 “정년연장의 폭이 컸던 사업체에서 청년 고용 감소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논문 ‘정년연장의 고용 효과’를 통해 김대일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도 청년 취업의 잠식을 우려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연장된 이후인 2016~2019년 사이 55~59세 남성의 고용 변화를 추정했다. 그는 “매년 1만~1만2000개의 청년층 일자리가 잠식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최근의 연구들은 청년세대의 반발을 불러오는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면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는 ‘질 높은 일자리’에서의 청년의 몫이 줄어들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주로 세대 쟁탈전의 전장이 되는 곳도 바로 여기다. 대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있는 곳, 규모가 큰 곳, 정규직이 많은 곳 등이 해당한다. 이런 일자리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과거의 연구지만 ‘베이비붐 세대와 정년연장 혜택의 귀착’(석재은·이기주, 2014)이라는 논문은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 정년연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을 11.4%로 추정했다. 대략 10곳 중 1곳 정도만이 정년제도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이 10곳 중 1곳은 소득과 고용안정성에서 나머지 9곳과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격차가 크다. 안진수 노무사는 “노조가 잘 갖춰진 대기업 같은 내부 노동시장은 정년이 작동하고 동시에 고용의 진입 장벽도 높은 곳이다. 상대적으로 귀한 자리다 보니 차지하기 위한 싸움도 치열하다. 일자리 시장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정년연장과 청년 고용의 관계를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한정된 파이만을 놓고 볼 때 세대 간 경쟁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년연장 청원에 등장한 ‘연장 반대’ 맞청원 

지난 2021년의 풍경이 그랬다. 그해 6월 14일 완성차 3사 노조(현대자동차지부·기아지부·한국GM지부)는 “현재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시기에 맞춰 최대 65세로 연장해 달라”며 국회에 국민동의청원안을 올려 입법청원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인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년연장을 반대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자신을 완성차 3사 중 한 곳에서 일하는 MZ세대 현장직이라고 밝힌 이 청원인은 “젊은 세대를 생각하지 않고 산업의 장기적 관점보다는 단기적 관점으로 추진하는 정년연장 입법 청원에 반대한다”고 청원의 이유를 썼다. 안정적 고용 기회가 고령인구에 집중될지도 모른다는 청년 세대의 박탈감이 작동한 사건이었다.

질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고도성장기 때의 공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갑작스러운 정년 연장을 경험한 기업은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 등을 통해 고령 고용을 감소시키거나 신규 채용 중단을 통해 청년 고용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각 기업 내에서 정년연장에 따라 인사 노무 관리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의 속도가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안효섭 KDI 연구원)는 지적은 지금 막 삽을 뜨기 시작한 ‘65세 정년’ 논의를 앞두고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정년연장은 시급하게 다뤄야 할 문제지만 그 해결 과정에는 오히려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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