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업소에 월세 시세를 알리는 안내문이 잔뜩 붙어있다. photo 뉴시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업소에 월세 시세를 알리는 안내문이 잔뜩 붙어있다. photo 뉴시스

전세 시장이 불안하다. 전셋값의 변동성이 커진 탓이다. 전셋값은 2020~2021년 2년간 전국적으로 20% 넘게 올랐고 수도권은 30% 넘게 상승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는 43% 올랐다. 주거유형으로는 아파트, 지역으로는 수도권이 전셋값 상승을 주도한 것이다.

기세등등하던 전세 시장은 2022년 돌변했다. 2022년 미국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은 전셋값 폭락을 불러왔다. 미국발 금리 상승이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끌어올려 전세가를 급락시킨 것이다. 이른바 ‘역전세난’이다. 역전세난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으로 전세가격이 하락한 결과다. 매매가와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과정에서 ‘빌라왕’ 사건이 드러났다. 빌라왕 사기극은 전세가와 매매가의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 무자본 갭투자에서 비롯됐다. 무자본 갭투자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KB경영연구소는 지난해 4월 보고서(‘전세자금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 변화 점검’)에서 “전세자금대출은 전세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쳐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0~2021년 세종시 전세가격이 59.88% 상승해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전세자금대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전세와 관련해 궁금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대출에 크게 영향을 받는 전셋값은 2022년 기준금리 폭등 이전의 가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금리 인상과 전세 사기 때문에 청년세대가 전세를 기피하는 현상은 사라질 수 있을까.’ 지금부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에게는 부채이고 임차인에게는 금융자산이다. 임차인 입장에서 전세보증금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한 것과 같다. 임차인은 대출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거주를 하는 것이다. 전세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제도로 여겨졌지만 사실은 다르다. 기원전 15세기 수메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에 남아 있다. 스페인, 프랑스 등 대륙법(Civil law)계 국가들과 미국 루이지애나주 일부에도 존재한다.(루이지애나주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전셋값을 불안정하게 만든 요인들 

조선총독부의 1910년 ‘관습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월세를 이용한 임대차는 영업용 가옥의 임차방법으로만 사용하였고 주택은 전세제도가 대부분 활용됐다. 단 가옥을 제외한 일반 토지에 대해서는 전세가 인정되지 않았다. 전세는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전세는 공적인 주택금융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주택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는 수단이었다. 전세제도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집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덕분이다. 집값이 상승하는 한 전셋값은 하락하지 않고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전세제도는 제도권 주택금융보다 접근성이 좋아 목돈 마련의 기회로 이용됐다. 생애 첫 주택 마련 예정자들이 전세계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주택 구입 전에 전세주택에서 임차인으로 거주하며 주택구매자금을 모을 수 있어서다.

전셋값의 변동성 확대는 지난 정부가 시행한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됐다. 첫 번째 정책은 임대차3법의 시행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여름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임대차신고제)을 시행한 뒤 전세가가 폭등했고 전세대란이 발생했다. 특히 전세보증금의 인상률을 규제하는 전월세상한제와 임대차기간을 종전 2년에서 4년까지 연장해주는 계약갱신청구권 규제를 시행한 뒤 전세 매물이 품귀현상을 보였다.

두 번째 정책은 지난 정부의 전세자금대출 확대 정책에 있다. 전세자금 대출은 2012년 23조원 규모에 불과했으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해 2021년 말에는 180조원까지 폭증했다. 정부는 전세자금 대출 확대 정책을 시행할 때 저금리 기조가 앞으로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믿었을 것이다. ‘저금리 기조’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까지는 모든 나라가 믿고 있던 진리였으니 전세입자 보호라는 명분이 중요했던 지난 정부는 전세자금 대출 확대를 밀어붙였다. 전세자금 대출 확대가 수요를 증가시켜 전세가 급등을 일으키고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정부의 전세자금대출 확대 정책은 주택공급 없는 수요 억제 정책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전셋값 폭등을 일으켰다. 영국과 미국이 공급정책은 간과한 채 주택 매수자를 지원하려고 주택금융을 활성화한 뒤 발생한 집값 급등의 과오를 되풀이한 셈이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은 정책을 시행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세자금대출 확대 정책의 부작용 

그렇다면 전세는 소멸할 것인가. 전세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집값 상승이 둔화되어 양도차익 가능성이 낮고 저금리로 인해 보증금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없으면 전세를 월세로 바꾸거나 매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덕훈 박사 등 다수의 학자들은 전세가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월세로 전환할 것으로 본다. 순수전세에서 반전세 등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전세는 보증금 비중에 따라 전세, 반전세, 보증부월세, 순수월세 등으로 구분된다. 반전세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예치하는 보증금의 비중이 보증부월세보다 많은데 전셋값이 하락하면 전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노영훈 박사는 전세는 여전히 집주인과 세입자 쌍방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특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임차인이 저소득 임차가구로 월세체납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되면 임대인은 전세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단독주택, 주상복합아파트처럼 임차주택 주거서비스 품질유지를 위해서 집주인의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할 경우 집주인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면 임차인은 월세를 선호한다고 주장한다.(‘전세제도와 전세가구의 주거유형 변화’·2017) 필자는 또 다른 이유로 전세제도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단 전세제도가 지속가능하려면 전셋값이 하락하지 않아야 한다. 전셋값은 매매가를 후행하므로 전셋값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매매가가 하락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매매가의 현상 유지가 가능한지가 관건이다.

“1~2년 뒤부터 자산가격의 상승은 가능할 것 같다.” 올리비아 블랜처드 국제통화기금(IMF) 전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월 27일 방영된 블룸버그TV의 ‘월스트리트 위크’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현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시니어 펠로로 활동 중인 블랜처드 박사는 “나의 분석모델이 옳다면 자산가격은 빠르면 1년 뒤, 늦어도 2년 뒤부터는 상승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 근거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인구 감소를 지목했다. 선진국들은 지난 30년간 민간 수요의 감소가 고착화됐는데 그 원인은 인구감소와 중립금리(neutral rate·잠재총생산 산출을 유지하는 데 드는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미국과 일본의 재정 적자는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에도 위험 수준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블랜처드 박사의 자산가격 회복에 대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독자들은 그의 신간 ‘저금리하에서의 재정 정책(Fiscal Policy under Low Interest Rates)’의 일독을 권한다.) 요약하면 전 세계 부자나라의 인구감소와 높은 국가부채율 때문에 저금리 기조로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저금리 기조로 돌아선다면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다시 하락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럴 경우 금리의 하락은 매매가와 전셋값을 다시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가격 회복되려면… 

실수요자들은 전세가격 시세에 따른 전세·매매비율과 가격상승 기대 등을 근거로 주택 구매에 나선다. 실수요자들은 전세가격이 높으면 구입할 가능성이 크지만 가격이 하락해 집값의 상승 가능성이 작아지면 구입을 미룬다. 황성주 교수는 “주택시장은 가격상승 기대와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데 매매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 발생 가능성이 거래의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수도권 전세매물 줄었다’ ‘1월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량 월세거래량 추월했다’ 등의 기사가 잇따라 올라왔다. 이것이 집값이 바닥을 찍었다는 신호일까. 전세가 다시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지난 연말 일단 멈췄고 1월 30일 출시한 주택금융공사의 ‘특례보금자리론’ 상품이 흥행한 결과로 풀이된다. 출시 9일 만에 신청금액이 10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특례보금자리론 예산은 30조원으로 알려졌는데 이 예산이 소진될 때까지 주택 거래는 살아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연준이 다시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어 정부가 30조원의 예산을 다 쓰고 나면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또다시 세금으로 주택 거래를 활성화시키기도 힘든 노릇이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가 창궐한 뒤 화폐를 증발하는 통화 팽창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로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의 가격은 급등했고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었다. 통화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실수요자들은 기대수익이 확실하지 않은 중장기적 관점의 매수는 지양한다. 축적한 자본이 작은 탓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고금리 시절에 실수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투자수요는 축적된 자본이 크므로 투자 관점은 장기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수요는 1가구 2주택 보유자들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시장 침체기가 있을 때마다 시장의 공급 과잉을 흡수해 민간 임대주택의 공급원이 됐다. 진보 세력은 이를 두고 정부가 부자들을 더 배불려주는 처사라고 비판하지만 어쩌겠는가. 공급과잉을 세금으로 인수할 수 없다면 민간의 잉여 자금을 시장 침체를 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강남 3구와 용산구에서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다. 수요가 집중된 지역의 거래가 활성화되어야 그 온기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금리 시대에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투자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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