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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 관련한 통계는 검찰과 경찰 같은 수사기관에 의해 사후 단속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정확한 추정이 어렵다. 그래서 단속사범 수를 통해서만 추정할 뿐, 실제로 마약이 얼마나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마약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마약 상습자 숫자를 50만명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런 통계는 검거 사범에 ‘암수율(暗數率)’을 곱해서 유추한다. 암수율이란 드러나지 않은 범죄비율을 말한다.

“10대 암수율은 성인보다 높을 것”

대검찰청의 ‘2021 마약류 범죄백서’와 ‘마약류 월간동향’을 보면 2017년 1만4123명이던 전체 마약류 사범 수는 2022년 1만8395명으로 약 30% 늘어났다. 2023년 1월부터 2월까지 집계된 마약류 사범은 2600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32.8% 증가했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은 28.57배다. 박 교수의 계산법을 적용하면 2022년 우리나라에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52만5545명 정도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10대 마약 암수율이 20대 이상 성인보다 훨씬 높다고 본다. 최진묵 인천다르크(민간 마약류 중독재활센터) 센터장은 “아들이나 딸이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학교나 경찰서에 바로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마약을 하는 10대의 암수율은 성인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0대 마약류 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2022년 481명으로 6년 새 4배 넘게 뛰었다. 전체 마약류 사범 중 10대의 비중도 2017년 0.8%에서 2022년 2.6%로 높아졌다. 2022년 집계된 15세 미만 마약류 사범도 41명이나 됐다. 2021년 6명에 비해 7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2022년 10대 마약류 사범 숫자 481명에 박 교수가 제시한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을 적용하면 마약을 하는 10대 청소년 숫자는 1만3742명 정도까지 늘어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최근 10대를 대상으로 한 마약 관련 범죄를 사회적 문제로 환기시킨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은 결코 우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 10대 청소년에게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공급책이 이런 사건을 벌였다는 데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전문가들 지적처럼 10대 암수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확한 10대 마약 상습자 숫자를 유추하기 어렵지만,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실제 지난 4월 7일 수원지검이 구속기소한 마약 판매책 29명 중 4명은 10대였다. 2021년 경남에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판매·투약해 잡힌 42명도 모두 고교생이었다.

10대 마약류 사범의 증가는 국가의 마약 관리 시스템 전반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단 인터넷에 익숙한 10대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쉽게 마약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불법으로 마약을 유통하거나 구입한 사범은 2018년 1516명에서 2022년 3092명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실제로 트위터, 텔레그램 등 우리나라에 서버를 두지 않고 있는 소셜미디어나 메신저에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검색하면 다수의 마약 판매 글이 나타난다. 종류별 가격도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이 마약 구매에 다가가기가 쉬워진 것이다. 박진실 마약 전문 변호사는 “예전에는 (미성년자가) 마약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도 구할 데가 없었다면 지금은 인터넷 검색으로 마약 구매 방법을 확인하고 실제로 구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은밀하면서도 다양해진 마약 구매 루트의 증가는 자극에 약한 청소년들이 쉽게 마약에 손을 댈 수 있게 만들었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위험을 예측하고 자극을 조절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20세가 돼서야 성숙하게 된다”며 “청소년기의 미성숙한 뇌는 새롭고 재밌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마약 중독에 더 취약하다”고 전했다. 최 센터장은 “마약은 전두엽에 문제를 일으키는데 특히 전두엽이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청소년기에는 더 많이 망가질 수 있다”고도 했다. 미성년자의 마약이 더 큰 문제가 되는 이유다.

자극에 약한 청소년들이 마약에 쉽게 손을 대면서 생겨난 악순환은 마약에 대한 청소년들의 경각심이 덩달아 낮아졌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마약에 대한 (청소년의) 심리적 거부감이 상당히 줄었다”며 “일탈 행동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마약이 선택지 중 하나가 된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청소년들에게 마약은 또래와 어울리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며 “마약을 처음 한두 번 할 때는 (자신이) 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친구들과 놀면서 계속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중독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센터장도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마약이 선진국화됐다”며 “젊은 마약 사용자들 사이에선 어떤 마약은 하면 안 된다거나 어떤 마약은 효과가 금방 오고 금단 증상이 별로 없어 좋다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말했다.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관련 마약 음료 제조 및 전달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를 받는 길모씨가 지난 4월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관련 마약 음료 제조 및 전달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를 받는 길모씨가 지난 4월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마약 중독은 뇌 질환… 재활·치료 우선해야

마약 확산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정부는 지난 4월 10일 마약 수사 컨트롤타워인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출범했다. 신봉수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김갑식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형사국장이 공동본부장을 맡았고, 검찰·경찰·관세청 수사 인력 840명이 참여했다. △청소년 대상 마약공급 △인터넷 마약유통 △마약 밀수출입 △의료용 마약류 제조·유통 등을 집중 수사할 예정이다.

현재 정부의 정책은 마약 단속 조직 강화와 양형 기준을 높이는 쪽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마약중독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절반의 해결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치료 현장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마약을 뿌리 뽑으려면 마약 유통 근절과 마약 중독자 치료가 함께 가야 하는데, 현 정부의 대책은 전자에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최 센터장은 “마약 중독은 뇌 질환”이라며 “법적 처벌을 받으면 마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중독자에게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도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 이영권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팀장은 “마약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양날의 검”이라며 “무조건 엄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마약류 사범이 준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투약 사범과 판매·밀반입 사범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며 “경찰과 검찰은 판매·밀반입 사범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투약 사범의 경우엔 실질적으로 교정·교화가 적절하게 병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마약 중독 치료 전문가들은 치료가 곧 예방책이라고 주장한다. 임상현 경기도다르크 센터장은 “마약 중독자가 치료되지 않으면 대부분 다시 마약상이 된다”며 “이들을 치료하는 것은 결국 가장 강력한 예방책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마약 중독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속보다 더 어려운 것이 한 사람의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마약에 중독되면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1년 전체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36.6%다. 3명 중 1명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는 의미다. 2021년 마약류 사용자 실태조사 결과는 더 심각하다. 응답자 중 91.9%가 ‘마약류를 끊은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1년 이상 마약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은 36.9%뿐이었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저도 중학생 때부터 25년간 마약을 했는데 끊는 데 5년이나 걸렸다”며 “중독자에게 재발은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 중독자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교수는 “중독자는 뇌의 동기 부여, 행동 조절, 가치 판단 등의 기능이 완전히 무너져 우울증 등 정신질환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마약을 하는 행동 자체만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마약 사용자, 즉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약 중독은 연속적인 치료가 들어가야 한다”며 “급성 중독에 대한 집중 치료가 이뤄지고 나면 재발을 예방하고 갈망에 대처하는 법을 도우며,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치료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는 “퇴원 이후에는 외래 치료와 함께 지역 사회의 상담·재활 기능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에는 치료약이 따로 없다. 최 센터장은 “마약 중독 상담은 중독자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과정”이라며 “치료는 결국 지역사회 내에서 (마약을 끊으려는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받아주고, 재활을 응원해주느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마약 중독자의 수는 여전히 적다. 마약류 사범을 치료하는 국가 차원의 제도로는 ‘치료보호’와 ‘치료감호’가 있다. 치료보호는 중독자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시설’에서 무료로 마약중독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중독자가 자발적으로 신청하거나 검찰이 전문 기관에 의뢰할 수 있다. 2021년 집계된 치료보호 인원은 총 280명이다. 치료감호는 마약 중독자를 치료감호소에 수용해 치료받게 하는 처분으로, 검사가 법원에 청구해야 진행된다. 2021년도 치료감호 인원은 18명뿐이었다. 2021년 전체 마약류 사범 1만6153명 중 치료를 받은 인원은 298명으로 1.8%에 그쳤다. 중독 치료 전문가들의 논리에 따르면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마약 사범의 숫자는 계속 증가한다는 것인데, 98.2%는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악순환의 굴레에 던져지는 셈이다.

지난 4월 7일 수원지검에서 검찰 관계자가 마약 유통사범에게서 압수한 마약류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7일 수원지검에서 검찰 관계자가 마약 유통사범에게서 압수한 마약류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마약 사범 중 98%는 치료받지 못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초범에게 ‘교육이수조건부 기소 유예’라는 단계를 통해 일종의 갱생 기회를 준다.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란 4일간 총 28시간의 교육을 전제로 기소를 미루는 처분을 말한다. 2021년 이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받은 인원은 1187명으로, 치료 인원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이 교수는 “마약 중독자에 대한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은 치료와 연계되지 않는다”며 “끊고 싶은 동기가 있는 사람들을 계속 마약 범죄자로 방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소 유예나 집행 유예를 받는 중독자들을 치료로 이끌 수 있는 의무치료 총괄센터가 필요하다”며 “미국처럼 약물 법원을 별도로 운영해서 치료를 의무적으로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초범을 줄이려면 예방이 필요하고, 재범률을 줄이려면 치료·재활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투트랙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0대에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 강남 마약 음료 사건을 통해 드러난 만큼 일선 교육 현장에서 본격적인 마약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 변호사는 “마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어떤 게 마약인지, 그걸 했을 때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며 “청소년들이 온라인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접하기 전에 학교에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마약 관련 교육이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청소년들의) 마약 접근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마약 하면 망한다는 등 공포를 활용한 교육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마약에 대한 지식을 다각도로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 교사가 수업 한 번 할 게 아니라 과학 시간에는 약물이 뇌에 들어와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고, 윤리 시간에는 자기 존중하는 법과 거절하는 법 등을 가르치는 등 여러 과목에 마약 관련 내용을 녹여야 한다”며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박 센터장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마약 떡볶이나 마약 김밥 하면 다른 곳보다 맛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나라에서 마약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박 센터장은 “어릴 때부터 금연 교육은 이뤄지는데 담배보다 위험한 마약 교육은 부재하다”며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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