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6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집주인과 연락이 두절됐다. 강우현(34·가명)씨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가올 5월 2일은 그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는 때다. 3개월 전 계약이 끝나면 나가겠다고 집주인에게 문자를 남겼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읽고 나면 답이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도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통화를 시도했다. 없는 전화번호라는 자동응답이 들렸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정말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오피스텔에 걸려 있는 전세보증금은 3억5000만원이다. 강씨는 2021년 5월 3일 전입신고를 했다. 확정일자도 이날 받았다. 계약기간은 2년. 등기부 등본에서 가압류나 근저당의 흔적은 없었다. 깨끗한 집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그랬던 안도감이 지금은 불안을 넘어 공포로 바뀌었다.

지금 강씨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전세가보다 매매가가 3000만원 낮다. 흔히 말하는 ‘깡통전세’다. 오피스텔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을 나타내는 전세가율이 80~90%에 육박한다. 특히 강씨가 거주하는 서울 강서구는 90% 아래 매물을 보기 힘든 곳이었다. 부동산 하락을 먼저 맞은 탓도 있었다.

강씨는 오픈채팅방으로 운영되는 전세피해 상담방에 글을 남겼다. 1000여명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을 올리고 해법을 모색하는 곳이다. “계약기간 끝나는 대로 임차권 등기를 해라.” 채팅방에서 누군가가 알려줬다.

일단 그는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임차권 등기를 우선 한 뒤 강제 경매도 생각 중이다. 경매까지 갈 경우 낙찰자가 나타나더라도 보증금보다 낮은 금액일 게 뻔해 자신의 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유찰이 될 경우 매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내키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집주인이 보증금만 온전히 돌려주겠다고 나타나면 다 용서될 것 같다. 내 인생 첫 집을 오피스텔로 구매하는 건 싫다.” 그는 최근 원형탈모까지 생겼다.

 

불완전한 안전장치 갖춘 사인 간의 거래

강씨처럼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임차권 등기를 하려는 사람들로 요즘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정신이 없다. 보통 1~2주일 이내로 끝날 등기 과정이 현재 4주에서 길면 8주까지 걸릴 정도로 신청이 폭주한 탓이다. 인천지방법원도 마찬가지다. 거기도 임차권 등기를 끝내는 데 4주 이상 걸린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는 강서구 화곡동이, 인천지방법원에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등이 엮이며 신청 건수가 크게 늘었다. 전세에 대한 공포감은 사람들을 법원으로 이끈다.

전세제도는 독특한 제도다. 유사한 제도(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를 가진 나라가 있긴 해도 우리처럼 강력하진 않다. 질긴 전세의 생명력은 계약자들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집을 빌려주는 대신 주택 가치의 50〜80%에 달하는 큰 규모의 전세보증금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임차인은 목돈을 만들어 월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한 뒤 이를 자가 주택을 매입하는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암암리에 선(善)이라고 여겨온 제도다.

반면 그 위험도 상존한다. 전세는 사인(私人) 간 금전대차거래라는 특성을 갖는다. 최근 전세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에 관해 연구한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거시적 측면에서 전세제도가 경제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세계약이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거래 상대방 위험에 대한 보완 장치가 미비하고, 부채의 특성과 규모가 명확하지 않아 규제 적용이 까다로우며, 거시경제 파급효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거 안정의 사다리’로 여겨졌던 전세는 이제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그 누구도 선뜻 사다리에 쉽게 올라서지 못한다. 사기 사건들이 신고되고 보증금 미반환 사고까지 적지 않다. 피해 보는 임차인이 속출하자 전세 계약이 갖는 경제적 실익보다 이 제도가 내포하는 불완전함이 더 큰 문제가 됐다. 은행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은행은 나의 소득과 신용점수, 직장 등 개인정보를 제출해 평가받아야 돈을 빌려주지만 전세계약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집주인에게 돈을 맡기지만, 그가 안전한 사람인지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안전장치가 부족한 사금융이라는 약점이 곳곳에서 터지는 중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은 갭투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으로 꼽힌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은 갭투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으로 꼽힌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전세보증보험 축소가 부를 나비효과

전세의 불안은 5월 이후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5월부터 생길 작은 변화가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전세를 둘러싼 여러 부작용이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는 전세보증보험의 한도를 변경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두 가지 변화가 생긴다. 일단 전세보증보험 한도가 축소됐다. 전세보증보험은 주택가격에서 선순위채권을 제하고 난 뒤의 한도로 가입할 수 있다. 이때 주택의 가격은 KB시세를 주로 활용하는데 전세사기의 중심에 있던 빌라는 공시가격의 150%를 적용받았다. 정부는 이미 올해 초부터 보증보험 한도를 공시가격의 140%로 낮췄다.

또한 5월부터는 전세보증이 가능한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100%에서 90% 이하로 바뀐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경우 나타나는 변화는 꽤 심각하다. 서울시 강서구의 한 빌라가 있다. 강서구는 전세가율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빌라의 공시가격이 2억원이라고 가정하자.(시세는 이보다 비싸다. 2022년 공시가율은 시세의 71.5%였다.)

전세보증금은 전세보증보험 한도 내에서 결정된다. 세입자는 이 한도를 넘는 전세보증금을 낼 의향은 없다. 은행에서 나오는 전세대출 역시 이 한도 내에서 이뤄진다. 과거 공시가격 150%가 한도였을 때(공시가격 150%, 전세가율 100%) 이 빌라의 전세보증보험 한도는 3억원이었다. 그런데 이게 140%로 줄었다. 한도가 2억8000만원으로 감소한다. 게다가 전세가율도 100%에서 90%로 줄어든다. 그렇게 될 경우 한도는 2억5200만원이 된다. 여기에 더해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은 2022년보다 2023년에 더 낮아질 전망이다. 2022년 71.5%였는데 2023년 정부가 잡은 목표가 69%다. 전세보증보험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적용되는데 공시가격이 낮아진다는 건 한도가 더 축소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한도가 낮아졌으니 전세를 갱신할 때 기존 보증금으로는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한도가 축소됐으니 보증보험에 들기 위해서는 보증금을 낮춰야 한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그동안 보증보험 한도에 맞게 전세보증금으로 3억원을 받았다면 계약 갱신을 하면 2억5200만원 이내로 조정해야 한다. 임대인에게 돌려줘야 할 돈 4800만원이 생겼으니 역(逆)전세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10채를 가진 임대사업자라면 4억8000만원, 100채를 가졌다면 48억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역전세를 걱정해야 할 규모는 얼마나 될까. 수도권의 경우 올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빌라 10가구 중 7가구 이상이 기존 전세보증금으로는 보험 가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부동산 중개업체인 ‘집토스’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와 공시가격을 비교 분석해보니 만기 예정 빌라 전세계약 중 기존과 동일한 전세금으로 보증보험 가입을 못하는 주택이 71%나 됐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은 68%, 경기는 74%, 인천은 89%에서 문제가 생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강서구의 가입 불가 비율이 90%로 가장 높았다. 금천구(87%), 영등포구(84%), 관악구(82%)도 상황이 좋지 않은 지역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전·월세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전세보증금을 추산한 자료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이번에 문제가 됐던 빌라 전세보증금 규모는 전국에 걸쳐 88조4000억원에 달한다. 2021년은 이보다 조금 더 많은 89조3000억원이었다. 이렇게 큰돈이 빌라에 조마조마하게 묶여 있다.

빌라의 문제는 전세 레버리지 매입(갭투자)에서 나타난다. 갭투자자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적은 곳을 매입한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적을수록 들어가는 투자금도 적다. 갭투자보다 더 적은 투자금이 들어가는 건 ‘무갭투자’라고 따로 부른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없을 때 생기는 무자본 투자인데, 이것 역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빌라나 오피스텔을 노리며 이루어져 왔다.

갭투자가 노리는 건 시세차익이다. 매입한 뒤 값이 오를 거라고 기대할 때 갭투자가 성행한다. 과거의 갭투자는 지금과 조금 달랐다.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을 보고 갭투자하기 좋을 거라는 판단이 들면 일단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적은 빌라를 사들인 뒤 전세가격을 올려서 갭투자로 들인 투자금을 회수한다. 그리고는 가격 상승을 기다리며 매도 타이밍을 기다렸다. 2019년 12월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규제지역 9억원 초과 주택에 LTV 20% 적용, 15억원 초과 주택에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규제가 이뤄지면서 이런 흐름이 바뀐다. 대출이 어려워지자 임차인의 보증금을 활용해 자기 자본 투자를 최소화하고 정부 규제를 피하는 방식이 대세가 됐다.

2020~2021년 사이 보증금 승계 매입 급증

갭투자는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국토연구원이 지난 2월에 발표한 ‘전세 레버리지(갭투자) 리스크 추정과 정책 대응 방안’ 보고서 속에 힌트가 있다. 2017년 9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국토교통부에 제출된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 계획서’를 분석해 이를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와 비교해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여력을 파악한 자료다. 이 보고서에는 보증금 승계 매입 월별 신고 추이 자료가 있다. 모든 보증금 승계 매입이 갭투자는 아니겠지만, 갭투자로 추정되는 거래로 가정해 볼 수는 있다.

보증금 승계 매입 건수가 증가하는 시점은 2020년 상반기부터다. 월 1만건을 넘기 시작하더니 2021년 들어서는 월 3만건이 넘는 매입이 이루어지고 2022년 상반기까지 그 추세는 꺾이지 않았다. 특히 2020년 상반기~2021년 하반기, 이 1년여 사이에 보증금 승계 매입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시기는 임대차 3법이 도입되면서 전세가격이 급등해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좁혀진 때였다.

보고서는 세입자 보증금을 승계 방식으로 매입한 주택이 73만3000가구로 집계했다. 현금성 금융자산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고려한 추가 대출, 그리고 보유한 임대주택까지 처분해야 보증금 반환이 가능한 경우가 20만9000가구로 추정됐다. 이른바 ‘갭투자’로 추정되는 주택 중 약 28%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주택 매매가격이 하락할 시 전세보증금 미반환 주택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질 시기가 2023〜2024년으로 분석한다. 특히 “월 기준으로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 주택 비율이 가장 높은 시기는 2024년 상반기로 추정된다”고 봤다. 이 연구에 참여한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세 레버리지 매입(갭투자)은 집값이 오를 땐 이득을 임대인이 독차지하는 반면에 집값이 내리면 손해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함께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갭투자’ 많았던 곳은 어디…

국토교통부로부터 2020년 1월~2022년 8월까지 신고된 161만1204건의 주택자금조달계획서를 받아 전수분석한 심상정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개인 주택구매자 150만6085명 중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매수자는 43만3446명으로 전체 구매자의 28.7%였다. 이 중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보증금 승계 방식 중 주택가격 대비 세입자 임대보증금 비중이 80%가 넘는 ‘갭투자 고위험군’의 매수가 12만1553명에 달했다.

갭투자가 많았던 기초자치단체는 △서울 강서구(5910명) △충북 청주시(5390명) △경기 부천시(4644명) 순으로 집계됐다. 강서구의 경우 조사 기간인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대부분의 기간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읍면동 기준으로 세분화하면 △서울 강서구 화곡동(4373명) △인천 부평구 부평동(1659명)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1646명) 순이었다. 화곡동에서는 지난해, 주안동에서는 현재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벌어졌다.

“여기에는 100채 이상 가진 임대업자들도 적지 않은데 조마조마한 곳들이 있긴 하다. 우리 업자끼리도 저긴 좀 아닌 거 같다고 생각되는 곳들이 있다. 만기가 돌아오면 또 터질 곳들이 남았다.” 지난 4월 25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사기꾼이 아니라 그동안 정직하게 전세 줬던 임대업자들도 지금 죽겠다고 한다. ‘형님, 나 파산할지도 몰라요’라는 소리도 들었다. 보증보험 한도 축소에다 전세사기 이후 문의마저 사라졌으니 당장 현금 없는 주인들은 보증금 문제가 시급해졌다”고 걱정했다.

사정 기관들이 전세사기 사건에 힘을 쏟는 이 와중에도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무갭투자용’ 명의를 구한다는 글이 넘친다. 수십 채, 수백 채의 집을 사들여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명의를 빌리기 위한 무갭투자 알바를 찾거나,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전세 작업을 했던 사람”을 찾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세라는 제도를 금지시키지 않는 한, 지금의 대혼돈이 금방 사그라들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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