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 투자자들의 대리인을 맡은 공형진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가 지난 5월 9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 등에 대한 고소장 제출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사스
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 투자자들의 대리인을 맡은 공형진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가 지난 5월 9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 등에 대한 고소장 제출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photo 뉴사스

지난 4월 24일 외국계 증권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 창구에서 매물이 쏟아졌다. 특별한 뉴스가 없는 종목들이었다. 쏟아진 매물로 주가는 폭락했고 대규모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은 작전세력이 ‘통정거래’ 수법을 통해 장기간 시세를 조종해 왔다는 의혹이다.

‘통정거래’란 주식을 파는 쪽과 사는 쪽이 미리 짜고 특정 종목을 일정한 가격에 사고파는 방법으로 주가를 띄우는 것이다. 대상 종목은 8개였는데 모두 그동안 건실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고 대형주가 아닌 데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아 유통 주식 수도 적었다. 

말하자면 금융당국이 특별히 주시할 이유가 없는 종목들이었다. 주가 폭락으로 사라진 8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8조원 이상이라고 한다. 시세조종에 동원된 자금은 1조원 이상이었다는 추정이다. 연예인이나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수준으로 주가가 오르면 수익을 돌려주고 다시 재투자를 권유하거나 신규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작전세력이 주가조작을 하는 데 이용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품은 차액결제거래(CFD)다. CFD는 영어로 ‘contract for difference’의 약자다.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차이 또는 다름(difference)에 계약한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처음 도입했다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CFD로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총수익 교환약정(TRS·Total Return Swap)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2015년 교보증권이 처음으로 도입한 이후 지금은 13개 증권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자가 실제로 주식을 사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식의 가격 변동에 따른 차액만을 결제하는 것이다. 일정한 증거금만 내면 증권사가 대신해서 주식을 사들이고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는 차액을 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증거금은 주식가격의 40%를 내면 된다. 증거금을 제외한 나머지 주식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은 증권사가 부담한다. 1억원이 있다면 증권사에서 1억5000만원을 빌려 2억5000만원까지 투자하는 식이다. 증권사는 빌려준 돈에 수수료를 받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투자상품 잔고 5000만원 이상, 직전연도 소득액 1억원, 순자산 5억원 이상인 전문직종 종사자나 금융 관련 전문자격증 소지자 중 해당 분야에서 1년 이상 종사한 사람만 자격이 있다. 일종의 신용융자인 만큼 주가의 하락으로 인한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증권사들은 외국계 증권사에 계약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가 국내 증권사에 주문하면 국내 증권사는 다시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주문을 실행하는 식이다. 국내 증권사는 이때 정해진 수수료를 받는다.

CFD는 결과적으로 투자자 대신 증권사가 주식을 사는 만큼 실제 투자 주체는 외부로 노출되지 않는다. 외국계 증권사가 창구라면 외국인 투자로 잡힌다. 당연히 대주주 양도세 과세 대상도 아니다. 물량 폭탄으로 발생한 주가의 폭락은 CFD로 거래하는 투자자들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발생했다고 한다. CFD 거래를 위해 돈을 빌려주는 증권사는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를 대비해 유지증거금을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운영한다.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식 평가금액이 증거금의 40% 이상을 유지하지 못하면 증거금의 추가 납부를 요구하게 된다. 투자자가 추가증거금을 내지 못하면 다음 날 증권사는 반대매매를 통해 주식을 일괄 처분한다. 이렇게 매물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면 당연히 주가는 급락한다.

 

금감원이 이미 리스크 경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아니다. 금감원이 발간한 ‘2021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는 CFD 잔고의 대부분이 매수 포지션인 점을 고려할 때 주가가 하락하면 반대매매에 따른 과도한 물량이 쏟아져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연한 얘기다. 주가가 하락하면 투자자는 원금에서 주가가 하락한 만큼 손해를 본다. 그러나 빚까지 얻어 투자한 경우는 계산이 달라진다.

금융당국은 관련 제도를 손질할 예정이라고 한다. 차액결제거래는 돈을 빌려서 투자한다는 점에서는 신용융자와 비슷하지만, 증권사 명의로 주문이 나오고 종목별 매수 잔량도 공시되지 않는다. 그만큼 투명하지 않고 정보가 부족하다. 외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문호를 개방한 측면도 있다.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의 개편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CFD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주가조작의 영향을 줄일 수 있을 뿐, 주가조작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그런 대책이란 없다. 주가조작 범죄에 대한 감시와 처벌은 강화해야 한다. 신고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미국의 나스닥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의심스러운 거래를 포착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우리도 감시 시스템의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거래소의 이상 매매 패턴을 적발하는 심리는 이상 징후가 분명히, 그것도 반복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주가조작의 가장 흔한 방법은 그럴듯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투자자들이 뛰어들어 주가가 뛰면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이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하는 내부자 거래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주식의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려는 통정매매와 가장매매, 주가를 상승시키려는 고가주문과 하락시키려는 저가주문, 그리고 실제 매매 의사 없이 거래를 위장하려는 허수주문 등을 동원한다. 어떤 방법이든 불공정거래 행위고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중대범죄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자유롭고 공개된 시장의 원칙(free-and-open-public market doctrine)이 지켜져야 한다.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는 인위적으로 시장을 왜곡해 투자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주가조작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주가를 특정세력이 인위적으로 올리거나 떨어뜨리는 행위다. 시장을 교란하고 선의의 투자자를 기만한다. 그러나 주가조작의 역사는 증권 시장의 역사와 같다. 인간의 약점이 주가조작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CFD라는 파생상품이 동원됐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번 주가조작 사건은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코스닥 상장사 루보 주가조작 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징은 대부분 일임매매 방식을 썼다는 점이다. 추적을 피하려고 휴대전화를 개설해 비밀번호를 맡기는 방식을 활용했다. 당시 루보 작전세력은 800여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이용했다. 투자자금을 만든 방법도 회원모집 형태로 일종의 다단계 방식이었다.

주가조작에 관한 양형이나 몰수 자산이 적어서 유사한 범죄가 반복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21년 12월부터 시행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주가조작의 혐의가 확정되면 부당이득만 아니라 종잣돈까지 몰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더 강화해서 종잣돈의 몇 배를 압수할 수 있다고 해도 주가조작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하는 미국에서도 주가조작 사건은 계속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주가조작 역사도 꽤 길다. 심지어 권력이 주가조작에 나섰던 경우도 있다. 1963년의 증권 파동이 그랬다. 증권 파동은 중앙정보부와 증권사 경영진이 협력해 일으킨 주가조작 사건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전문적인 시세조종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에는 증권회사의 직원들이 작전세력에 끼는 경우가 잦았다. 수많은 차명 통장으로 매수나 매도 주문을 하면서 주식값을 띄우는 게 기본이었다. 

지금도 투자조합을 활용한 주가조작은 적지 않다. 일부 투자자들은 투자조합이 들어온 것을 본 뒤 작전을 기대하면서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여전히 주가조작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과거에는 주가조작의 범죄자를 영웅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었다. 특히 세상에 많이 알려진 몇 명은 그가 특정한 주식에 손을 댔다는 소문만 돌면 굳이 주가를 조작할 필요도 없이 매집세력이 따라붙어 주가가 뛰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주가조작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더 오래, 더 조금씩 주가를 올리면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조작된 주가가 오래 갈 수는 없다. 시장은 결국 균형을 잡아 준다. 하지만 주가조작을 하고 뛰어오른 주가로 일찍 수익을 챙긴 뒤 시장을 떠나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뒤늦게 조작된 주가를 따라간 투자자만 손해를 볼 뿐이다.

금융감독원은 불공정거래로 의심되는 종목은 투자주의 종목으로 공표하고 일반 투자자들의 뇌동매매를 방지하면서 동시에 숨어있는 불공정거래 행위자에게 경고한다. 그러나 경고가 나오는데도 작전세력의 성공을 기대하며 위험한 종목에 투자를 감행하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있다. 작전세력에 호응하는 투자자들은 결과적으로 주가조작의 성공을 돕는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는 투자자가 의사를 결정할 때 공정하고 자유로운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 투자 이익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들은 ‘피해자’이자 ‘공범’ 

이번 주가조작 사건에서 투자자들은 손실을 봤다고 해도 피해자인 동시에 주가조작을 도운 사람들이다. 휴대전화를 개통해 넘기고 신용카드로 수수료를 내는 과정에서 불법 가능성을 알 수밖에 없다. 

절대로 당국에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은 적발되면 문제가 되는 일이라는 말과 같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다면 그렇게 떳떳한 일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세상에 쉽게 돈을 버는 방법 같은 건 없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누구도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주가조작 사건이라고 하지만 아직 범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주가조작을 입증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조작 의혹의 주인공인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는 통정매매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대상 종목들이 대부분 시장에선 가치와 비교해 오랫동안 저평가됐던 주식으로 꼽혀왔고 투자 기간도 길었다.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매입한 것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법리적용이 간단하지 않아 판결이 나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책임을 입증해야 처벌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미리 가격을 정해 놓고 일정 시간에 걸쳐 주식을 매매했다는 증거가 나와야 한다. 다만 시장 교란이나 불법 유사 수신과 투자자문 행위는 명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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