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흰색 벽인 갤러리 전시장에 꿈틀거리며 뻗어 올라가는 소나무가 우뚝 서 있습니다. 한쪽 벽면엔 천장을 뚫고 내려온 듯 근육질의 소나무 등걸이 용틀임하며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가지 끝에는 푸른 잎들이 생생합니다. 흙 한 줌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시멘트 전시장 안에까지 뿌리를 내린 것일까요.

흰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실제인 듯 늠름한 소나무는 조각가 이길래(51)의 작품입니다. 이길래는 쩍쩍 갈라진 소나무 껍질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동파이프를 사용했습니다. 동파이프를 얇게 잘라 타원형을 만들고 용접을 통해 하나하나 이어 붙입니다. 작가가 동파이프의 단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세포의 형태와 닮았더랍니다. 그는 마치 세포들을 응집시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 듯 노동과 시간으로 생명을 불어넣고 자신을 닮은 소나무를 키워냅니다. 소나무는 사람 키를 훌쩍 넘어 5~6m에 달하는 것도 있고 전시장 벽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부조작품도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작품 하나에 한두 달은 보통이라고 합니다.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소나무를 만들고 이 땅에 식수해 나가고 싶다.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이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면서 “자연은 영원한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충북 괴산, 세상의 소란이 닿지 않는 곳에 마련한 작업실 마당엔 그가 창조해낸 생명들이 자연과 더불어 숨을 쉬고 있습니다.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에 최근 세운 6m 크기의 소나무를 비롯해 도심 곳곳에도 그의 생명이 가지를 치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비케이에서는 8월 25일부터 9월 28일까지 2년 만의 개인전을 갖습니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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