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경국
일러스트 이경국

김현성(가명·41)·김지은(가명·36) 부부를 만난 건 지난 2월 11일, 부인 김씨가 부원장으로 있는 서울 강남구의 한 피부과 병원에서였다. 은행에 재직 중인 남편과 함께 기자를 맞은 김씨 부부는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부부다. 그러나 요즘 김씨 부부는 석 달째 부부 상담을 받고 있다. 결혼 6년차인 두 사람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인 김씨는 아는 정신과 의사에게 연락하면서까지 부부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부부의 성생활입니다. 한 달에 두세 번 관계를 가지는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함께해요.”

남편 김씨가 인터넷 음란 사이트인 S사이트를 통해 성관계를 할 때마다 누군가를 ‘초대’한다. 이른바 ‘초대남’을 부르는 것이다. 실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초대남’이 부인 김씨와 성관계를 가지면, 남편 김씨가 보고 있다가 함께 관계를 맺기도 한다. 가끔은 성관계 전후로 부인 김씨의 알몸을 사진 찍는 날도 있다. “남자들을 ‘초대’하는 글을 쓰면서 제 알몸 사진을 올릴 때도 있어요. 처음에는 좀 거부감이 들었는데, 얼굴을 다 가리고 나니 누군지 알 수 없어 괜찮더라고요.”

김씨 부부만이 아니다. 회원 수가 100만명은 족히 넘는다는 대형 음란 사이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초대’ 글이 올라온다. 초대 후기도 올라온다. “형님(원래 남편), 부인 분이랑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초대남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캡처해서 올린 글에는 ‘부럽다’ ‘나도 초대해달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남편 김씨는 기자에게 ‘초대남’을 통한 성관계가 아니면 “흥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초대하는 글을 쓸 때, 후기를 쓸 때가 제일 흥분되는 것 같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변태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행동에 부인 김씨는 “처음에는 울면서 저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성적 일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대남들이 모두 매너 있는 데다가 스릴도 느껴져 점점 좋아졌어요.”

그러다가 부부 상담을 받기로 결심한 이유는 딸 때문이었다. “유치원에서 ‘결혼’에 대해서 배웠나 봐요. 딸이 유치원에 다녀와서 ‘두 사람이 평생 함께하는 게 결혼이래’라고 설명하는데 우리가 무척 비정상적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음란물에 대해 연구해 온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소장은 김씨 부부의 상태를 ‘음란물 중독’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음란물 중독은 영상, 사진 등에 중독되는 것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매체가 발달하면서 음란물 중독의 형태도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대표적 유형으로 음란 사이트에 중독되는 경우가 있다. 김씨 부부가 자주 접속하는 S사이트의 경우에는 10년 넘게 축적된 음란 동영상과 사진이 200만건에 달할 정도로 많다. 이곳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초대글을 읽다가 남편 김씨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두 사람을 지금 상황으로 이끌었다.

음란물 중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된다. 첫째는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일이다. 어기준 소장은 “인터넷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을 때만 하더라도 동영상 하나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으니 음란물 중독 수준도 지금보다는 가벼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음란물 시장 규모도 매우 커졌다. 어 소장은 “시공간의 벽도 없어져 원하는 자극은 무엇이든 찾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요즘 음란물 중독의 무서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성교육전문가인 양동옥 박사는 “음란물 중독 연구를 하다 보면 실험 대상자들이 ‘시시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전했다. “워낙 다양하고 노골적인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실험에 제시되는 음란물은 음란물 중독자에게는 평범한 수준”이라는 게 양 박사의 설명이다. 이렇게 자주 음란물에 노출되다 보면 중독 증상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판매되는 음란물은 ‘연기자가 연기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잖아요. 그런데 더 심한 자극을 찾다 보면 ‘리얼함’을 원하게 돼요.” 초대남에 빠진 김씨 부부의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애초에 김씨 부부가 초대남을 초대하기 전에는 두세 달에 한 번 성관계를 맺는 일도 드물 정도로 ‘섹스리스’에 가까운 부부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거기다 김씨 부부는 파트너의 알몸 사진을 올리면서 자신이 직접 음란물을 제작하는 일도 시작했다.

S사이트뿐 아니라 회원 수가 30만명에 달한다는 F사이트에는 부인이나 여자친구의 알몸, 성관계 동영상 등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이 따로 마련돼 있다. 전문 포르노 배우가 아니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올리는 사진이나 동영상의 조회 수만 수천, 수만 회에 달하기도 한다. 어기준 소장은 이런 게시물들이 “어차피 음란물이 성적 흥분을 얻기 위해서 접하는 것인데, 상품화된 것을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현실감 있는 것을 보거나 직접 만들면서 흥분을 배가시키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극단적 형태로는 ‘야노’(야외 노출의 줄임말)라는 것이 있다. 속옷 하나 입지 않은 채로 겉옷만 걸쳤던 여자가 지하철이나 광장 등 공개된 장소에서 겉옷을 벗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다. 어 소장은 “야노를 즐기는 사람 중에는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으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12일, S사이트에 ‘야노’ 사진을 세 번 올려봤다는 20대 여성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정씨라고 성만 밝힌 여성은 “처음에는 남자친구가 제안해서 찍었다”고 말했다. “외모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남자친구가 평소에도 ‘혼자 보기 아까운 몸매’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주로 식당과 같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야노를 찍었다. 한 번은 태풍이 오는 날, 영화에서 본 것처럼 레인코트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길거리에 서서 야노를 찍었다고 한다. “많아 봤자 5~6장 찍으니까 한 번 찍는 데 5분도 안 걸려요. 그래도 쳐다보는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지나가요. 남자들과 여자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요.” 정씨의 야노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된 채로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씨는 “공개되는 것이 무섭지는 않다”고 말했다. “‘네 야노 사진을 봤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면서 “오히려 댓글 등에서 ‘골반 라인이 최고’라는 등의 말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양동옥 박사는 정씨와 같은 사례는 자기 노출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때 유행했던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빠진 사람 중에는 자기 노출을 즐기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양 박사는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정씨 같은 사람은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있고, 그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양 박사는 스스로 유포하는 노출 사진들 대부분이 훌륭한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 찍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음란물을 쉽게 접하고 올리는 것만큼 반응도 즉각적이기 때문에 이런 중독 증상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바로바로 전달되는 반응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기준 소장 역시 음란물 중독 증상이 공개적으로 변하는 이유를 자존감과 인정, 존경의 차원에서 설명했다. “부인이나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리면 ‘몸매가 좋다’ ‘부럽다’라는 댓글들이 달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거죠. 실제 초대남 후기를 올리면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직접 하다니 부럽다’거나 ‘대인배’라는 등 찬양하는 댓글이 주를 이룹니다. 이런 댓글들을 통해 작성자는 일종의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경험을 해요.”

요즘 10대들에게서 유행하는 ‘섹스팅’은 이런 과정을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섹스팅이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음란물을 유통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카카오톡 등의 SNS에서 음란물 동영상이나 사진, 인터넷 주소 등을 주고받는다. 작년 4월 10일, 민주당 김상희 의원실(경기 부천 소사) 주관으로 열린 국회 성평등정책연구포럼에서 이창훈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소년 16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섹스팅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전체의 20%(323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청소년들이 직접 꼽은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을 얻을 수 있기 때문’(17.6%)이었다. 어 소장은 “어릴 적에 야한 잡지를 들고 있는 친구가 대장 노릇을 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훨씬 심각하고 즉각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 정보를 많이 가진 것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데 음란물 유통은 주목도를 급격하게 높이는 일”이라면서 “그러나 더 자극적이고 ‘양질’의 정보를 유통하기 위해 자신의 동영상이나 사진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인 만큼 피해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요즘은 음란물 중독 피해가 단순히 통제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기준 소장은 한 사례를 소개했다. “얼마 전에 연구소에 상담을 요청했던 한 10대 여학생은, 전교 1등인데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몸사’(알몸 사진)를 전송했다가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 몰카 같은 범죄적 행위에 대한 피해가 아니라 자발적인 음란물 중독에 의한 피해 상담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음란 사이트에 야노 사진을 올리는 정씨 같은 경우도, 자신이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 사진 유포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어기준 소장은 최근과 같이 누구나 만들 수 있고, 공개적이며 더 자극적인 음란물 중독 증상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경고했다. “부부 성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둘이서 해결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초대남’을 통해서 흥분을 더하려고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동이지요. 그런데 음란 사이트에 중독돼 있으면 워낙 많은 사람이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비정상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몰라요.”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음란 사이트의 규모는 줄어들 줄 모르고, 음란물 중독 증상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발전하는 추세다. 어 소장은 “대부분 대형 음란 사이트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뿌리 뽑기가 쉽지 않다”며 “근본적으로는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제대로 된 음란물 중독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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