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안갯속 해법... 유령같은 PA간호사들

2023-02-28     박한슬 약사·‘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저자
지난해 12월 2일 부산 동의대학교 간호학과 4학년 학생 129명이 촛불을 들고 간호사 정신과 사명을 다짐하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삼성서울병원이 진료지원인력(PA) 간호사 채용 공고를 냈다. 이 때문에 병원장이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간 대형병원들이 암암리에 의사 업무 일부를 분담하는 간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오래된 관례였다. 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터놓고 채용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강성 의사단체에서는 이에 대응해 고발장을 냈고, 병원장이 입건되는 일이 발생했다.

PA간호사라는 의료계 음지에 있던 해묵은 문제가 갑작스레 불거지게 된 건 최근 논란 중인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에 직접 회부된 탓이 크다. 본격적인 직역 갈등이 벌어지기 전의 정지(整地)작업이란 의견이 많아서다. 대체 PA간호사는 무엇이고 이것이 왜 이런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일까.

 

법적으로 모호한 간호사의 업무

PA는 보통 의사 업무의 일부를 분담해서 맡는 간호사를 말한다. 다만 법적으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의료법에 정의된 간호사의 업무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는 식으로 포괄적이고 모호하게 규정되어서다. 모호한 규정을 파고드는 데 밝은 사람들이 의사 고유의 업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간호사에게 차츰 위임하기 시작했고, 실질적으로 의사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들이 탄생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PA간호사의 실체다.

이렇게만 들으면 일부 악랄한 병원에서만 이루어지는 나쁜 관행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PA간호사 인력은 무척 많다. 2011년 이미 1500여명 정도가 PA간호사 업무를 맡고 있었고, 2019년에는 그 인원이 4000여명 정도로 늘었다. 병원 밖에서는 잘 모르지만, 병원 내에서는 당연한 관례로 아주 오랫동안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니 서울대병원 같은 곳에서는 2021년 7월부터 임상전담간호사(CPN)라는 명칭으로 이들을 별도 직군으로 분리했다

이처럼 PA간호사가 대폭 늘어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피과’ 문제와도 연관이 깊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절반가량은 전문의를 취득한 사람이 아닌 전문의 취득을 위해 수련 과정을 거치는 전공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약 1400명 정도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고 그중 500명 정도가 전공의다. 이들 전공의는 박봉을 받으며 초과 노동을 하는 식으로 병원의 의료 서비스 원가를 낮추고 있는데, 새로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는 기피과에는 이런 역할을 수행할 전공의가 적다. 인력에 구멍이 난 진료과에서 임의로 간호사들에게 전공의 역할 일부를 맡기기 시작한 게 PA간호사의 기원이다.

이마저도 전공의들이 주 100시간 이상 노동하던 상황에 이루어진 일이고, 2015년 전공의 특별법이 통과돼 전공의 근무시간을 최대 주 88시간으로 제한한 뒤부터는 인력 부족이 심화되어 PA간호사가 더 증가했다. 이미 PA 인력 없이는 현재와 같은 병원 운영이 불가능하니 PA간호사를 공개 채용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PA간호사 양성화에 대한 주요 의료단체의 입장이 제각각이라는 점이 문제다.

PA간호사에 대한 입장은 의료계 주요 참여자마다 다르다. 대한병원협회는 PA간호사의 양성화를 적극적으로 반기는 쪽이다. 병원장들이 모여서 만든 이 협회는 사용자 단체에 가깝다.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볼 때 PA간호사가 양성화되면 인건비가 높은 의사가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업무를 간호사도 할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 열린다. 그러니 의사들은 의사만 할 수 있는 업무에 투입하고 기존에 마지못해 의사에게 맡기던 영역은 간호사 고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일종의 고용 대체를 통한 경영 수지 개선이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의사협회는 PA간호사 양성화를 의사 직역침해로 인식해서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이다. 자기 의원을 연 개원 의사나 다른 의료기관에 고용되어 일하는 봉직의가 주류인 의사협회는 병원협회와 반대 성격을 띠고 있다. 의사면허가 포괄하는 직무 일부를 헐어내어 PA간호사에게 덜어주면 그만큼 의사를 고용해야 하는 일자리는 줄고 임금 수준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직역 단체로선 필사적으로 막아야만 하는 일인 셈이다. 물론 대형 종합병원의 원장도 의사인데 이들은 왜 찬성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곳의 실질적 오너는 사학재단이나 대기업 출연 재단이다. 흔히 의사라는 직업으로 한데 묶이긴 하지만 별개의 논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간호사협회는 의외로 PA간호사 문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유지한다. PA간호사로 일하는 이들의 처우 개선이나 법적인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변칙적인 방식으로 의사 업무를 떼어오는 형태로는 간호사라는 직역의 고유성이 발전된 것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전문간호사 제도의 전격적 도입을 통해 간호사 중 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들이 합법적으로 추가 수당을 받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의사 대신 간호사를 활용해 비용을 줄이려는 병원과도 싸워야 하고, 직역침해라고 맞서는 의사들과도 싸우는 양면 전쟁이다.

최근 본회의에 직접 회부된 ‘간호법’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 제출된 법률안에 직접적인 내용은 없지만 입법 후의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개정 절차를 통해 전문간호사 형태가 되었건 PA 합법화가 되었건 간에 간호사 직무와 의사 직무의 현상 변경이 발생할 개연성이 매우 높아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회색지대 방치 대신 업무 범위 정해야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좋은 건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선 PA간호사를 고용하지 않고, 실제 의사 업무를 의사에게 맡길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뜩이나 쪼들리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더하는 건 실현 가능성이 낮다. 아무리 강경하게 대정부 투쟁을 벌이더라도 실제로 건보료를 내는 국민들이 거부한다면 이를 강제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PA간호사를 인정하되 업무 범위를 적정선으로 조율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현재와 같이 아무런 규정이 없는 상태라면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없는 일을 위임하더라도 ‘어차피 똑같이 불법’이라는 논리 앞에 힘을 잃는다. 입법 공백 상태가 오래 유지되는 상황이 되레 직무 침해를 더 심화할 수 있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협상을 통해 지킬 것을 지켜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