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향방을 가를 변수 셋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테러로 시작된 전쟁이 1월 25일로 111일을 맞았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고강도 보복 작전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23일 가자지구 키수핌에서 하마스의 로켓추진유탄(RPG) 발사로 이스라엘 군인 24명이 한꺼번에 사망하는 등 하마스의 반격도 거세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란을 축으로 하여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3H(하마스·헤즈볼라·후티)를 통해 확전 위험성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저강도 전쟁을 부탁하면서 ‘두 국가 해법’(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각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을 받아들이고 종전(終戰)을 위한 협상에 나와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화음이 잘 맞지 않는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입장에서는 올가을 미국 대선(大選)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기를 내심 기다리는 모양새다.
흔히 전쟁연구는 발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종결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일단 시작된 전쟁은 합리적 모델(rational model) 이론에서 주장하는 손익분기점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요인에 의해 장기화되기도 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스라엘, 하마스, 이란 등 당사자 모두 전쟁의 장기화를 내심 바라고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3H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피해자 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코스프레’ 미디어 전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전쟁 초반 참혹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해자 이미지로 몰리는 형국이다. 아무래도 미디어 선전선동술은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앞선다는 평가다. 발발 111일이 지난 하마스 전쟁에서 향후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1.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 본토를 공격할 것인가?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장군멍군을 주고받았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지난 1월 15일 밤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에르빌에 있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첩보본부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이란이 갖고 있는 장거리 미사일의 성능을 과시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1월 20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마제흐 지역에 있는 한 주택을 미사일로 폭파시켰다. 이슬람혁명수비대 소속 장교와 대원 등 5명이 숨졌는데, 당시 시리아 내 정보책임자들과 만나는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구두(口頭) 싸움만 계속하던 양국이 첫 직접 공격을 한 셈이다. 간접 충돌이야 이미 많았다. 전쟁 시작 후 최근까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친(親)이란 무장세력이 미군 등을 향해 드론과 로켓을 발사한 횟수는 최소 143번이라고 CNN은 집계했다. 이라크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슬라믹 레지스턴스(Islamic Resistance)가 미군들에게 간헐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금은 이란 관광부 장관이 된 에자톨라 자르가미 전(前) 이슬람혁명수비대 장군은 지난해 11월 이란 국영 TV와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에게 이란제 미사일을 공급하고, 가자지구 내 터널 진입에 관여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본토를 공격하는 진짜 전쟁을 치르기에는 많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선(線)을 넘을 듯 말 듯 눈치 곡예를 벌이고 있다. 이란으로선 이번 전쟁을 통해 숙적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저지하는 ‘빅픽처(big picture)’를 달성했으니 별로 급할 것이 없다. 대신 중동에서 시아파 초승달 벨트를 견고하게 구축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란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공격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미국이 반기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이다. 다만 이란의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필요하다 싶으면 종전처럼 국소적 타격을 가한 뒤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를 취하는 스탠스는 유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게 어디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가. 어떤 촉발 요인이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 최근 세대주의 신학자들 사이에는 구약성경 에스겔서 38장과 39장 등을 근거로 이란이 몇몇 국가들과 손잡고 이스라엘을 침공하리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특히 6년 전에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수니파 IS(이슬람국가)도 의외의 변수다. 지난 1월 3일 가셈 솔레이마니 이슬람혁명수비대 사령관의 4주기 추모식에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90여명이 사망했는데, IS가 자신의 짓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보복 폭격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라크의 정보보고서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최근 이라크 정보보고서에는 미국이 IS에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IS는 6년 전 이라크에 3만5000명 정도 남았다가 대부분 죽고 1만명이 시리아 쪽으로 갔다. 그런데 다시 집결하고 있다.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에서 사우디 쪽으로 300㎞ 떨어진 곳에 와디 하우라는 계곡이 있는데 거기를 본거지로 삼았다. 그런데 그쪽을 소탕하려고 하자 미군이 막는다는 것이 이라크 정보당국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만일 그 말이 맞다면 미국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IS를 배후 지원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2.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재등장을 기다릴까?
현재 미국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마스 전쟁을 빨리 끝내고 중동평화를 만들기 위해 ‘두 국가 해법’을 수용하는 동시에 종전 협상에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하마스가 효율적으로 제거될 경우, 현재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가자지구도 통치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이론적으로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2007년까지 PA가 가자지구도 통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PA는 아라파트 이후 이스라엘에 적당히 타협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조직으로 낙인찍혀 있다. 이스라엘도 그런 아이디어에는 부정적이다. 이스라엘의 속내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하마스를 몰아낸 뒤 가자지구를 당분간 재점령하려는 생각이 많아 보인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최근 미국의 조언을 거절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무시에 가까운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 일부에서는 “이스라엘 지원을 중단하라”든가 “지원하려면 조건을 붙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회한 네타냐후 입장에서는 하마스의 뿌리를 완전히 뽑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한다면 하마스가 전열을 재정비하여 더 강력한 테러를 저지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마스가 사라져도 제2, 제3의 하마스가 등장할 것으로 본다. 네타냐후 총리는 1월 18일 기자회견에서 “하마스 완전 궤멸과 남아있는 인질 귀환을 이룰 때까지 가자지구 공세를 계속 이어 나간다”며 “앞으로 수개월은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네타냐후와 바이든이 친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가 새로 집권하면 곧바로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관례를 깼다. 2022년 12월 3번째로 집권한 네타냐후 총리를 2023년 9월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했을 때야 겨우 만났다.
바이든은 대통령선거를 10개월 가량 앞둔 시점에 연일 최하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탓’을 하기도 한다. 바이든은 지난 1월 12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이스라엘은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그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원하지 않는다. 네타냐후 총리가 변해야 장기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포문을 날렸다. 네타냐후의 안색이 편할 리가 없다.
그래서 네타냐후 입장에서는 말이 잘 통하는 트럼프의 복귀를 바라고 있다는 관측이다. 흔히 고립주의(孤立主義)를 외치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중동 곳곳에서 분쟁이 고착화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다만 트럼프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늘 예외주의(例外主義)였다. 트럼프는 집권 당시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고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과감하게 이전하면서 이스라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의 3각 수교도 트럼프가 중재했다. 안팎으로 온갖 공격과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는 네타냐후 입장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다. 네타냐후와 트럼프 사이에는 남성 간의 뜨거운 우정과 유대를 뜻하는 ‘브로맨스(bromance)’ 사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세계는 지금 트럼프의 재등장 가능성에 바짝 숨을 죽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김정은은 반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과 이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이스라엘도 좋아할 듯하다. 트럼프의 좌충우돌 스타일이 낳은 결과다.
3. 후티반군이 호르무즈해협과 수에즈운하까지 봉쇄할까?
하마스 전쟁이 지속되면서 예멘 후티반군은 홍해를 운항하는 상선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선박, 다음에는 이스라엘로 가는 선박, 세 번째는 무차별 공격을 하면서 ‘홍해의 깡패’가 되었다. 여기에 맞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가 연합은 후티반군과 예멘에 폭격을 가하고 있지만, 후티반군은 별로 겁내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새롭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자기들끼리는 ‘안사르 알라(알라의 지지자)’라고 부르는 후티반군은 최근 ‘알아크사 삼각지대(Al-Aqsa triangle)’ 작전을 거론했다. 알아크사는 ‘아득히 먼’이란 뜻의 아랍어로, 예루살렘에 알아크사 사원이 있다. 알아크사 삼각지대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운하, 예멘과 에티오피아 사이에 있는 바브엘만데브해협, 북쪽으론 이란과 남쪽으론 아랍에미리트(UAE)를 접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 등 3곳을 가리킨다. 모두 세계의 핵심 해상무역로이며, 우리나라도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수입량의 80%가 통과한다. 후티반군은 바로 이 3곳을 모두 봉쇄하여 전 세계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석유와 가스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3곳을 후티반군이 단독으로 봉쇄하겠다고 한다면 웃을 일이지만, 배후에 이란이 있기에 상당히 우려스럽다. 브래드 쿠퍼 미 해군 5함대 사령관은 지난 1월 22일 “이란은 예멘 후티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에 매우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첨단 및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스라엘과 연계된 민간 선박을 식별하는 노하우와 데이터도 주었다고 한다. 실제 이란은 2011년과 2012년,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시위 차원에서 군함 2척이 알아크사 삼각지대를 따라 항해하여 시리아 타르우스항에 도착한 적이 있다.
3H 중에도 후티반군은 하마스나 헤즈볼라와는 달리, 예멘 내전을 치르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굵직한 전투를 치러본 경험이 많다. 단순 테러집단 이상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후티반군 측은 “만일 미국이 예멘에 대규모 공격을 가하면 알아크사 삼각지대 작전을 시작한다”고 밝혔는데, 현재 대함(對艦)미사일과 무인기 재고를 적극 늘리고 있다. 또 미국의 예멘 침공을 지원하지 말라고 걸프만 국가들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후티반군이 알아크사 삼각지대를 모두 봉쇄하기는 힘들고 경제적 피해를 입을 주변 국가들이 가만 있지는 않겠지만, 일정 기간 깡패짓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4. 14㎞의 필라델피루트를 놓고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갈등을 빚을까?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집트와 가자지구 국경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필라델피루트(Philadelpi route)를 폐쇄하기 전까지 종전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는 하마스를 파괴하고 가자지구를 비무장화해야 하는데, 군사장비와 치명적 무기들이 남쪽 필라델피루트를 통해 계속 들어올 것이므로 당연히 폐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라델피루트는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에 따라,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하되 이집트와의 경계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의 국경으로 정하면서 만들어졌다. 총 길이 14㎞ 구간의 필라델피루트는 북쪽 끝이 지중해 연안인데, 라파 국경검문소를 가로질러 남쪽 끝이 케렘 샬롬 국경검문소다.
여기에서는 이집트, 이스라엘, 가자지구가 모두 만난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가자지구로 무기나 다른 밀수품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DMZ(비무장지대)처럼 완충지대로 만들기로 했다. 이집트는 경찰 병력이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치하기 시작한 이래 필라델피루트를 밀수 통로로 이용해왔다고 의심해왔다. 2022년 9월에는 이스라엘 당국이 케렘 샬롬 국경검문소에서 폭발물 밀수 시도를 저지했다고 발표했다. 폭발물은 차량에 적재됐던 의류 사이에 숨겨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다 최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중국제와 북한제 무기들을 찾았는데 이게 들어오는 방법은 필라델피루트뿐이라고 판단, 이집트 쪽에 통제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네타냐후의 발언에 대해 이집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이집트 외무부 대변인은 “라파 국경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이집트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서 “이를 이스라엘이 방해하는 셈”이라고 비난했다. CNN은 “이스라엘의 폐쇄 조치가 현실화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외부 세계 접근을 이스라엘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현지 뉴스매체인 KRM의 명형주 대표는 “이스라엘은 필라델피루트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라고 하지만, 이집트는 반대하고 있다. 무장단체가 들어오는 건 이집트도 원하지 않으나 많은 물건들이 밀수될 때 뇌물이 오가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집트 입장에서는 강력한 국경선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선 그 밑으로 연결된 땅굴 등에 대해 이집트를 100%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마스의 무장을 완전 해제하더라도 필라델피루트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후환(後患)이 될 거라고 이스라엘 내각에서는 우려하고 있어, 이집트하고도 약간의 충돌이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