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류 정부’에 지친 민심이 정권심판론 키웠다

2024-03-29     김회권 기자
지난 3월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남 창원시 성산구 반송시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전국단위 선거에서 3연승을 거두는 건 쉽지 않다.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연거푸 이기며 3연승을 차지했던 민주당은 매우 강고했다. 당시만 해도 도저히 승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넘고 윤석열 대통령을 후보로 영입하면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달아 이겼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3연승에 도전장을 냈다.

총선을 2주일 남짓 남긴 3월 말이 다가왔고 공식 선거운동일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여야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중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볼 때 3월 초순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격차가 벌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앞섰던 쪽은 민주당이었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 구도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당혹감이 당 내부에 흘렀다.

여론조사를 보면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를 원했던 응답자는 40%,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를 원했던 응답자는 49%였다.(3월 12~1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이하 모든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3월 19~21일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는 같은 질문에 ‘여당 다수 당선’이 36%, ‘야당 다수 당선’이 51%가 됐다. 일주일 새 정권안정론은 4%포인트가 빠졌고 정권심판론은 2%포인트가 올랐다. 두 의견의 차이는 9%포인트에서 15%포인트 차로 벌어졌다. 정권안정론과 정권심판론의 격차는 선거 결과의 향배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다. 그 일주일 새 정부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박해졌다는 신호였다.

지난 3월 초 민주당이 가졌던 불안감은 ‘비명횡사’ 공천 결과가 선거 지형을 객토한 탓이 컸다. 3월 6일 실시한 여론조사(한국일보 의뢰·한국리서치 조사)에서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사안’을 묻는 질문에 66%(매우 영향을 미친다 23%, 대체로 영향을 미친다 43%)가 ‘주요 정당의 공천 문제’라고 답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57%)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재판(55%)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은 게 공천 문제였다. 당내 위기감이 흐른 민주당은 공천 관련 비판을 떨쳐내고 정권심판론을 재점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목발 경품’ 발언에 ‘거짓 사과’ 논란이 터진 정봉주 후보(서울 강북을) 공천을 빠르게 취소했다.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시민사회 몫으로 추천한 비례대표 후보 중 2명의 과거 이력이 문제되자 교체를 단행했다.

“무오류 고집하던 문재인 정부와 닮았다”

그런데 흐름의 변화는 민주당의 노력이 아닌 정부의 실기(失期)가 만들어냈다. 올해 3월 최대 현안은 이종섭 호주대사의 출국이었다. 전임 국방부 장관이었던 그는 출국금지가 풀리자 신임장 수여식을 생략한 채 원본이 아닌 사본을 들고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총선을 앞두고 그의 호주행을 둘러싼 미스터리 극장이 열렸고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인터뷰에서 ‘임명을 철회할 뜻이 전혀 없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종섭 이슈를 사과와 철회가 아닌 해명과 공세로 풀어나가려 했다. 공세의 대상은 공수처와 야당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사가 결국 호주에서 귀국하자 “이제 답은 공수처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지, 정부와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은 이슈를 다루는 정부·여당의 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 대사의 귀국을 “민심에 대한 반응”이라고 강조한 한 위원장의 정리에도 그리 호응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가 돌아왔다고 해서 해병대원의 안타까운 죽음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외압 의혹은 해결된 것이 아직 없다.

불리했던 민주당이 유리해졌고 해볼 만했던 국민의힘은 여러모로 불리해졌다. 정권심판론의 재부상을 두고 한 여론분석 전문가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론가가 아니고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섣불리 이야기하긴 어렵다. 김건희 여사 때문인지, 이종섭 대사 때문인지, 황상무 수석 때문인지 어떤 변수가 심판론을 자극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이슈를 다루는 대통령실의 태도가 잠자고 있던 정권심판론을 다시 끌어올린 것 같다. 과거 문재인 정부 때 무오류의 고집이 이후 선거로 평가받았던 때와 비슷하다.”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지난 3월 2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태도의 문제가 선거에 끼치는 영향

윤석열 정부의 ‘무오류의 태도’는 여론조사에서도 잡힌다.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인 ‘데일리 오피니언’을 보면 윤 대통령의 부정평가 이유에서 매번 상위권에 오르는 항목은 ‘독단적·일방적’, 그리고 ‘소통 미흡’이다. 표현만 다를 뿐 무오류의 리더십이 작동할 때 보이는 부정적 태도다. 이런 무오류의 태도가 문제되지 않을 때도 있다. 정부에 대해 신뢰하거나 정치적 효용을 국민이 느꼈을 때다. 반대로 무오류의 리더십이 부정적 여론과 만났을 경우 표로 응징하는 게 최근 투표의 양상이다.

무오류의 태도로 비판받았던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2019년 조국사태를 거치면서 안팎에서 경고 사인을 받았다. 그래도 이때는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막으며 “국난 극복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달라”는 호소가 먹혔고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호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이후 터진 부동산 이슈에서 무오류의 태도를 견지하며 부정 평가의 요인을 밖에서 찾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은 주택 수요를 억제하고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시장에 풀 수 있도록 하는 ‘선한 의도’들로 포장됐지만 오히려 이 선한 의도를 내세운 탓에 정책 수정은 발목을 잡혔다. 선한 의도가 실수였다는 걸 인정한다는 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높은 도덕성’과 정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여당이 정권 말에 부동산 기조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선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 혹은 사명감도 노선 전환을 어렵게 만들었다. 대표 정책인 부동산 정책의 오류를 인정할 경우 검찰개혁 등 사회적으로 반드시 돌파해야 한다고 믿는 다른 정책들도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동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전직 행정관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만약 여기에서 방향 전환을 조금이라도 할 경우 정부가 좌고우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때다 싶어 들어올 전방위 공격도 예상됐다. 집권세력이 무오류일 수는 없고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만약 정책노선에 변화를 줬을 때 부동산시장을 다시 상승장으로 밀어넣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던 점도 있었다.”

이런 무오류의 태도는 정권심판 여론을 끌어올렸고 민주당은 이후 선거에서 패배한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모두 졌다. 지방선거 패배 후 민주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원인들을 적시했다. 여기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당 운영과 의사결정에 당심과 민심을 조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고립을 자초했다.”

이전 정부의 실책, 그리고 정권심판론에 힘입어 탄생한 윤석열 정부도 무오류의 태도를 지적받고 있다는 건 역설적이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정치에서 ‘태도’가 ‘표심’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유권자를 움직이는 것은 정보의 내용도 있지만 정치인들의 행태도 있다. 정보가 담고 있는 세계관처럼, 가치의 측면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정치를 하는 행태, 이 두 가지를 함께 놓고 유권자들은 판단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언어에 편승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지만 행태적인 부분을 너무 등한시한다. 언어가 화려해지면 순간의 이익을 취할 순 있지만 결국 행동이 말을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지금 정부가 ‘공정’이라는 화두에 거꾸로 발목을 잡히는 것도 그런 측면이 크다.”

구도로 볼 때 조국혁신당은 정권심판론 재점화에 지분이 크다. 신평 변호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조국 대표가 자식들 대입을 위해서 지나친 일을 한 것은 맞는데, 당사자나 부인이 너무 지나친 수사를 받고 형을 받은 것 아니냐. 지금 한국의 경찰·검찰·법원 등 사법제도를 둘러싼 불신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는데 조 대표를 그런 열에 두면서 강한 동정론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조국 대표의 공간이 만들어진 건 ‘이준석 나비효과’의 결과물로 봤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제3지대 실험은 싱글 파티가 아니라 취약한 토대를 상호 보완하는 연합군 형태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제3지대를 축소해 버렸고 그 공간에 조국 신당이 유입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민생 정책 카드’가 심판론 뚫을까

대통령실의 무오류 태도는 검찰 제도가 만들어낸 신념 체계에 머물다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무오류 조직의 신화를 갖는 대표적 조직인 검찰 출신답게 윤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물러서선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직(職)을 내놨을지도 모를 자기 식구들은 여론의 흐름과 상관없이 지켜내고 있다. 이태원 참사의 행정적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윤희근 경찰청장은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조기 철수 사태에 대해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김현숙 전 여성가족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폭염과 위생, 보건 등에 있어서 부실한 준비로 잼버리가 사실상 파행했지만 이 일로 책임을 진 적은 없다.

이런 무오류의 태도를 지적하는 당내 정치인들은 여당 강성 지지층에게 질타를 받는다. 이준석 대표가 그랬고 여당 내 비주류 정치인들이 그랬다. 총선을 앞두고 이런 경향을 완화하고 싶어도 대통령실과 여당이 결별하지 않는 한 출구전략을 짜기 쉽지 않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유연성이 떨어지고 자기 성찰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을 여당에 떠넘기는데 이걸 한동훈 위원장 혼자서 무슨 수로 다 해결할 수 있겠나. 뭐가 잘 안 풀리니 집토끼도 잡아보고 산토끼도 잡아보고 다 하는 것 같은데, 한 위원장이 10점 벌어놓으면 윤 대통령이 100점을 까먹는 구도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무오류의 태도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으로 남는 건 결국 ‘선거’다. 대안으로 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유권자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며 움직인다.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조국혁신당을 경고 메시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이탈이 두드러진 곳이 부산·경남·울산(PK)의 표심이다. 민주당 부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PK 여론은 TK(대구·경북)가 아니라 수도권과 비슷하게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보수가 강세이긴 하지만 스윙보터 성향이 강해졌다. 그리고 TK와 달리 윤 대통령과 정서적 일체감도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부산 민심의 이탈 변화는 몇몇 지역구의 흐름에서 느낄 수 있다. 해운대갑과 수영이 대표적인데 그동안 국민의힘 초강세 지역인 이 두 곳을 민주당은 이번에 경합지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주진우·장예찬 후보가 있는 곳이다.

물리적인 시간만 놓고 보면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이지만, 선거 기간의 하루는 한 달 같다는 게 여의도의 통설이다. 양당 지도부의 제1과제는 위기관리다. 254개 지역에서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를 돌출 위기를 어느 당이 좀 더 빠르게 판단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느냐가 선거 판세를 결정짓는다.

이미 여론조사에서 보듯 민주당보다 한발 뒤에서 출발해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일단 심판론에서 탈피하는 일이 선결 과제다. 여당은 정책을 현실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월 25일 세 자녀 이상 가구에 한해 모든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는 공약을 냈다. 이틀 뒤인 27일에는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을 내놓으며 충청권 표심을 공략 중이다. 민생 정책 카드로 ‘정권심판론’에 맞서겠다는 전략을 확실히 정한 모양새다.

특히 의사 증원 문제는 파괴력 있는 이슈다. 원만히 해결할 수만 있다면 여당의 수권 능력을 뽐내며 호재로 만들 수 있다. 의사 증원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여전히 높다. 하지만 의정(醫政) 갈등이 길어지면서 피로감이 커지고 있고 정부·여당의 갈등 해결 능력이 의심받는 중이다. 양날의 검인 사안이다.

한 위원장 등은 “양측이 의제를 제한하지 말고 대화해야 한다”며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까지 포함한 중재에 나선 상황이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슈 때마다 한 위원장이라는 한 대의 스피커로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으니 합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스피커를 더 풀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누가 적합하냐를 묻자 “유승민 의원 같은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