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이전에 ‘후추로드’가 있었다

2024-04-08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매시장인 뉴델리 찬드니초크. photo 유민호

20여년 전 미쉐린 레스토랑 순례에 빠졌었다. 식욕도 왕성하고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 믿던 때였다. 여행지에 가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현지 미쉐린 레스토랑이었다. 큰마음 먹고 스리스타 미쉐린에 들른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빕구르망(Bib Gourmand)이거나 원스타에 그쳤다. 5년 전 원스타 서울 미쉐린에 들렀다가 가격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은 가격이 훨씬 더 올랐겠지만, 유럽 미쉐린의 경우 조금 무리를 하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대중적 공간이다. 레스토랑이 처음 생긴 것은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다. 왕이나 귀족이 아닌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가 레스토랑이란 단어의 어원이다.

미쉐린의 원조는 프랑스 나아가 유럽이다. 당연하지만, 미국이나 아시아 미쉐린 스타의 조건도 유럽에 맞춰진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들어 본격화된 맛의 세계화(Globalization)와 다양성(Diversity)에 기초해 유럽 밖의 메뉴도 미쉐린의 새로운 기준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음식 그 자체만이 아닌, 레스토랑 전체에 흐르는 문화와 공기는 프랑스와 유럽 스타일을 정석으로 한다. 필자는 음식은 로컬이지만, 레스토랑 문화와 공기는 정통 프랑스 스타일을 선호한다. 정치적으로 표현하자면 ‘폴리티컬 커렉트니스(PC)’ 시대 이전의 미쉐린이 필자의 취향이다.

나름대로 기준이지만, 식기는 PC 시대 미쉐린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해 식탁 위 식기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PC 이전, 즉 20세기풍 미쉐린이다. 반대로 식기 수가 적을수록, 하나의 식기에 여러 음식을 담을수록 21세기 PC 시대 미쉐린이다. 식기는 그릇만이 아니라 포크, 나이프, 와인잔, 물잔, 심지어 버터 보관함에 이르는 식탁 위 모든 종류의 음식도구를 지칭한다. 음식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그릇이 등장하고 포크와 와인잔도 달라진다. 필자에게 스리스타 미쉐린의 진짜 가치는 최고급 식기들에서 찾을 수 있다. 21세기 트렌드인 퓨전이나 미니멀리즘과 무관한 클래식한 분위기 속의 식탁이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칼의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할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포크와 나이프의 크기, 무게, 나아가 무게중심에 따라 맛을 즐기는 질적 양적 만족감도 달라진다.

 

유럽 식기 발전을 몰고온 후추

당연하지만 식기의 양적 질적 수준과, 식사 도구의 발달은 음식 문화와 문명의 발달로 직결된다. 식탁에 오르는 식기 수가 많을수록, 식사 도구가 다양할수록 음식 문화의 차원도 높아질 수 있다. 그릇 하나에 숟가락 하나면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군대 짬밥’의 눈으로 본다면 다른 시각을 가질 듯하다. 그러나 미쉐린 기준에 따른다면, 비빔밥 하나 먹는 데 필요한 식기가 열 개는 넘을 듯하다. 채소 종류별로 나눠진 식기, 고추장·참기름·간장을 담는 그릇, 재료들을 큰 그릇으로 옮기는 젓가락이나 숟가락 같은 도구들이 식탁 위에 잔뜩 펼쳐질 것이다. 한국인이 본다면 불필요한 낭비 정도로 비칠 듯하다. 그러나 프랑스 나아가 유럽 기준으로 본다면 비빔밥 한 그릇 먹는 데도 10개 이상의 갖가지 식사 도구가 따라붙는다.

후추가 유럽 식기 발전에 지대한 공헌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30여년 전이다. 프랑스 리옹 시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 셰프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었다. 

찬드니초크 일대는 초대형 미로 같은 카오스의 현장이다. photo indotoursadventures.com

벌꿀에 버무린 후추가 만병통치약

유럽 음식의 출발점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중해는 물론 멀리 중국과도 교역을 하면서 새로운 음식재료들이 로마로 몰려들었다. 인도발 후추는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음식 재료였다. 설탕이나 카카오처럼 유럽에 수입된 음식 재료 대부분이 그러하듯, 원래 후추도 만병통치약 가운데 하나로 통했다. 고대 그리스는 후추를 벌꿀과 함께 섞어 와인에 넣어 마셨다. 당시에 와인 맛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보관 기술이 열악했기 때문에 빨리 산화되면서 거의 식초로 변하기 직전에 마셨다. 후추와 벌꿀로 버무려진 와인은 신맛을 없애면서 달콤하고도 혀를 자극하는 만병통치 음료로 통했다. 당시 와인도 고가였지만, 벌꿀에 버무려진 후추는 최고 부자들에게만 허용된 고급 약재였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는 곧바로 그리스 문화에 빠져든다. 인도발 후추는 만병통치약으로서만이 아니라 로마 시민을 위한 일상 음식재료로 본격 개발된다. 곧바로 로마가 글로벌 후추 최대 소비국으로 부상한다. 후추·벌꿀·허브를 버무린 소스가 개발되면서 음식의 맛을 돋우는 만능 조미료로 진화한다. 지중해에 흩어진 수많은 허브들이 후추와 뒤섞이면서 로마인의 입맛을 자극한다. 후추는 육류 부패를 방지하고 맛도 산뜻하게 만들어준다. 소시지는 한국 김치에 해당하는 로마의 음식이다. 후추는 소시지의 비릿하고도 역한 맛을 없애주는 필수 재료다. 더불어 팍스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자 증거이기도 했다. 서기 1세기 실존했던 로마 미식가 아피키우스(Apicius)가 남긴 요리책에 따르면, 468개 메뉴 가운데 75% 정도가 후추 레시피로 이뤄져 있다.

 

‘검은 황금’ 후추 한 주먹이 노예 한 명 가격

식기·도구의 발전과 후추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너무도 당연하지만 귀하고 귀한 후추 관련 음식을 보관, 장식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그릇이 필요하게 된다. 당시 후추 한 주먹 정도의 가치는 20대 노예 한 명 가격에 준했다고 한다. 후추의 별명이 ‘검은 황금’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벌꿀로 채워진 후추 한 병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급 재료에 맞는 보관, 장식용 식기와 도구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쉐린 식탁 위에 오르는 수많은 식기와 도구는 로마 음식문화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그릇 하나로 해결하는 비빔밥 스타일이 아니라 각각 다른 재료와 음식에 맞춰진 수많은 도구와 식기가 기본이다. 노예 한 명 가치의 비싼 후추를 처음부터 다른 음식과 함께 섞어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수많은 식기와 도구로 채워진 미쉐린 레스토랑은 고대 로마 당시 후추 역사의 흔적이라 볼 수 있다.

버터는 필자 유년기 미식 역사의 핵심에 해당한다. 미군부대에서 구입한 노란색 버터를 밥에 넣어 간장과 계란에 비벼 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상상컨대 1970년대 한국인이 경험했던 버터 맛의 몇십 배, 몇백 배에 상당할 후추의 맛이 2000년 전 로마인들에게 밀려들었을 것이다. 인도 뉴델리는 그 같은 문화·문명 충돌의 진원지다. 고대 로마 당시 후추는 오직 인도에서만 생산됐다. 인도 남부에서 수확된 후추는 바다와 육지를 통해 서방으로 수출됐다. 흔히 오해하지만, 실크로드가 아니라 후추로드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된 무역루트였다. 

실크로드는 이미 개척된 후추로드를 통해 확산됐을 뿐, 질적 양적으로 볼 때 후추로드가 인류 무역로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육로도 있었지만, 도둑도 없고 화물량도 많은 바다를 통한 후추로드가 대세였다. 당시 후추무역은, 생산은 인도인이 하고 이동과 판매는 아랍인이 맡았다. 21세기에서 통하는 얘기지만 생산자보다 유통업자가 갖는 이익이 한층 더 많았다.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번성했던 인도 후추 시장의 흔적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남아 있다. 인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매시장인 찬드니초크(Chandni Chowk)가 주무대다. 뉴델리 한복판 구(旧) 델리 철도역 남쪽에 들어선 시장으로, 초대형 미로 같은 인도 카오스의 현장이 찬드니초크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후추시장은 찬드니초크 서쪽의 가도디아마켓(Gadodia Market) 주변이다.

찬드니초크의 향신료 거리. photo 유민호

후추 앞세운 무굴제국 첨단 수출기지

찬드니초크는 무굴제국이 본격화된 17세기에 탄생했다. 인도 남부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향신료 시장을 하나로 모은 곳이 찬드니초크다. 인도는 후추를 포함한 향신료를 기원전 2000년경부터 수출해온 나라다. 후추가 그러하듯, 마른 향신료는 가볍고 이동이 쉬우며 보관 기간도 길다. 향신료의 대명사인 후추는 16세기 대항해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인도에서만 재배됐다. 무게를 기준으로 할 때, 후추 가격은 금값에 준했다. 찬드니초크 가도디아마켓은 대항해시대 이후 만들어진 공간으로 유럽의 폭증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한 무굴제국의 첨단 수출기지였다고 볼 수 있다.

찬드니초크는 아침 일찍 들르는 것이 좋다. 뉴델리 어디를 가도 복잡하지만 특히 찬드니초크 주변은 카오스 중에서도 카오스의 무대다. 우버 택시를 불러 시장으로 향했다. 인도에는 운전사의 승차 거부가 거의 없다. 목적지가 거의 마비상태라도 달려간다. 뉴델리에서는 교통소통이 원활한 곳이 비정상일 뿐, 도로 위 주차장이 일상이다. 운전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시장에 도착하기 10분 전에 미리 내렸다. 인력거, 오토바이, 툭툭, 택시, 버스가 뒤섞인 상태에서 걸어서 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 인도 도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사람들로도 붐빈다. 구걸에 나선 가족 단위 홈리스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씩 민주주의 체제에 익숙한 인도만의 ‘특별한 모습’과 만날 때도 있다. 인도의 신비이자 재미라고나 할까? 도로 주변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1인 피켓시위가 대표적인 본보기다. 인도는 시위가 많은 나라다. 한국처럼 집단 시위도 많지만, 1인 시위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국회 앞을 무대로 한 1인 시위가 많다. 그러나 인도는 정치권에 호소하거나 남에게 보여주는 식이 1인 시위가 아니다. 요가나 명상에서 보듯, 남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고 확신하기 위한 수도, 수련으로서의 단독 시위라고나 할까?

“골목을 전부 정원으로 만들어 이산화탄소 감소에 적극 나서자. 관련 법규를 제정해줄 것을 촉구한다.” 찬드니초크 시장으로 가던 중 만난, 1인 시위의 피켓 내용이다.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자마자 도로로 달려와 피켓을 들고 있다. 정치 시위라기보다, 스스로가 원하는 세상을 모두에게 알리는 차원인 듯하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개인 민주주의 성숙도로 본다면 인도가 한국보다 우위에 서 있다고 느껴진다. 집단 차원에서 이뤄지는 ‘떼거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자주적 ‘개인 민주주의’라는 각도에서 보면 인도가 한 수 위다. 증거는 서방 민주주의권에서 펼쳐지는 인도인의 대활약이다. 인도인은 서방 지배층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다. 정치, 경제, 심지어 문화 영역에도 인도인의 활약이 남다르다. 모두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1인 민주주의 사고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응이다. 상대적이지만 한국인은 1인 민주주의 사고가 아닌 집단 이데올로기에 집착한다. 좋게 말하면 ‘우리 의식’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본인 스스로가 아닌 분위기에 떠밀려가는 식이라 볼 수도 있다. 예컨대 ‘골목 정원 법제화’는 개인 이익과 전혀 무관한 공공 복리에 맞춰진 생각이다. 집단 분위기나 격한 감정이 아닌, 분석과 이성에 기초한 1인 민주주의 사고가 서방에서 활약하는 인도 파워의 근간이다.

가도디아마켓 주변 전체가 향신료 거리다. 걸어가는 도중 숨을 쉬기가 곤란할 정도다. 매운 향신료들이 공중에 표류하면서 재채기가 이어진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미동도 안 한다. ‘뉴델리에서 가장 오래된 후추 가게’ ‘인도에서 가장 큰 향신료 전문점’ ‘세계 최고 품질의 후추’ 같은 문구들이 가게 간판 위에 새겨져 있다. 

 

정작 인도인들은 후추를 적게 사용

거의 4000년에 걸친 인도 후추 역사라고 하지만, 뉴델리 시장 일상풍경만 본다면 실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상상속의 화려한 향신료 가게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규모가 작다. 아무리 큰 가게라도 16㎡(약 5평) 정도에 불과하다. 진열된 향신료들을 봐도, 뭔가 왜소하고 어지럽게 느껴진다. 쌀, 콩, 차에서부터 마른 음식과 씨앗, 심지어 염색약도 향신료 주변에 함께 진열돼 있다. 대략 후추 상품 1㎏에 10달러 선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형형색색 무지갯빛 색상으로 진열된 초대형 향신료 가게는 이란이나 튀르키예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후추의 원조 인도에는 그 같은 컬러판 대규모 향신료 가게가 드물다. 프랑스 샤넬 향수의 원료인 튀르키예 이스파르타 장미 오일은 1L당 1만 달러에 팔린다. 그러나 샤넬은 이슬람 국가의 장미 오일을 이용해 수백 배 아니 수천 배 이익을 올린다. 

같은 후추라도, 뉴델리 시장과 이스탄불에서 접한 것과의 가격 차는 수십 배 아니 수백 배에 달할 듯하다. 인도인이 서방보다 후추를 덜 사용한다는 점은 시장을 훑던 중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다. 인도는 카레에 중독된 나라다. 카레나 고춧가루, 나아가 생강의 사촌 격인 터메릭(Turmeric)은 즐기지만, 정작 후추는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인도인은 수박이나 토마토조차도 카레나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그러나 후추는 뿌리지 않는다. 가도디아마켓 내 인도인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후추가 워낙 귀하게 유럽에 팔려나가는 과정에서 정작 인도인의 일상 요리에서는 멀어졌다.”

후추는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성장한 뒤 포도 같은 열매를 단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리하면서 수확해야만 한다. 원래 초록색 작은 열매지만, 물에 한 번 끓이는 과정에서 검게 변한다.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후추는 인도가 가진 경쟁력 최상의 수출상품이었다. 2024년 인도는 모디 총리 주도하에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운동을 펼치고 있다. 다른 나무에 얹혀 자라는 덩굴식 인도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하늘로 향해 쭉쭉 뻗어가려는 21세기 인도의 결의이자 함성이 뉴델리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시대정신은 중국발 실크로드가 아니라, 4000년 전 이미 시작된 인도발 후추로드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