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저지선은 확보했지만… 벼랑 끝에 선 尹의 선택

2024-04-12     이동훈 기자
지난 4월 5일 부산 강서구 명지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 photo 뉴시스

4·10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대통령 탄핵저지선과 개헌저지선인 101석 이상을 확보했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는 분위기다. 이번에 국민의힘과 그 비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얻은 의석은 도합 108석.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도합 175석을 얻었고, 12석을 확보해 원내 3당 지위를 굳힌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 범야권 의석을 모두 합하면 192석에 달한다.

악화된 민심으로 총선 참패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에서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막바지 “대통령 탄핵저지선과 개헌저지선만은 지켜달라”고 읍소하는 전략을 펼쳤다. 지난 4월 10일 본투표 직후 발표한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는 국민의힘 의석수가 100석 아래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나 개헌저지선이 붕괴될 것이란 긴장감도 감돌았다. 하지만 최종 집계 결과 대통령 탄핵저지선과 개헌저지선을 간신히 넘기면서 한동훈 위원장의 읍소전략이 최악의 사태를 막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개헌·탄핵저지선 확보에 의미 부여 

이번 총선 과정에서 개헌 여부는 물밑에 잠복한 주요 쟁점이었다. 현행 헌법 제128조는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헌법 제130조1 항은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제130조 2항은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선 결과로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폭넓은 민심 이반이 확인된 만큼,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2 찬성으로 개헌안을 의결해 국민투표에 부쳤을 때 통과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심지어 이번 총선에서 12석을 확보해 원내 제3당이 된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선거 직전인 지난 4월 4일 “22대 국회에서 ‘제7공화국’ 건설에 온 힘을 쏟겠다”며 “헌법 개정이 필요하면 개헌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통령 탄핵저지선을 확보한 것도 국민의힘으로서는 나름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 사실 개헌은 헌법 전문 변경 등에는 각 당이 어느 정도 의견일치를 본 상황이지만 개헌의 핵심이 될 권력구조 개편은 각 정파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복잡한 이슈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행 9차 개정헌법에서 규정한 ‘대통령 5년 단임제’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지만 과거 수차례 개헌 논의 때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중 어떤 권력구조 개편을 택하느냐는 문제였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22년 대선 때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들고 나왔고, 2023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띄운 바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대표가 밝힌 ‘4년 중임제’ 개헌과 관련해 “(현행 대통령 임기) 5년을 8년으로 가자는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여기에 내각제 개헌까지 추진되면 개헌 논의는 단시일 내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반해 대통령 탄핵은 이미 두 차례 발의돼 한 차례 성공한 바 있어 개헌에 비해 훨씬 ‘수월한’ 문제로 꼽혔다. 현행 헌법 제65조 2항은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범야권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인 200석 이상을 장악하고 대통령 탄핵에 착수할 경우 이를 막을 최후의 보루는 헌법재판소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환 중진들과의 관계 설정에 주목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4년 전인 21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탄핵저지선이 가까스로 확보된 만큼, 여당 내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않는 이상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최악의 국정공백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역시 이번 총선에 압승했다고는 하나, 대통령 탄핵까지 나서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 4월 4일 부산 유세 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내쫓자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선거를 앞두고 불어닥칠 역풍을 우려해 ‘탄핵’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총선 참패로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임기 3년 동안 ‘레임덕’ 조기돌입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영향력을 크게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총선 과정에서도 ‘대통령 탈당’ 주장이 나온 바 있는 만큼,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대통령 탈당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

21대 국회에서처럼 대통령이 야당 독주 입법에 대해 거부권으로 계속 맞설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그간 야당 독주를 견제하는 데 활용했던 거부권도 여당 의원 일부가 이탈할 경우 행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야당이 밀어붙이는 쟁점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9번이나 행사하며 저지해왔지만 이번 총선에서 ‘국정운영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는 민심이 확인된 만큼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여권의 과제는 한동훈 비대위 해산 후 치러질 차기 전당대회에서 누가 여당의 당권을 장악하느냐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경기 성남분당갑)을 비롯해 나경원 전 의원(서울 동작을), 권영세 의원(서울 용산), 윤상현 의원(인천 동·미추홀을) 등 수도권 중진들은 대부분 수도권 출마자들이 전사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권영세·윤상현 의원은 각각 5선, 안철수 의원은 4선 고지에 올랐다. 

몸값이 높아진 수도권 중진들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의 향배에도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선거과정에서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시사했지만, 총선 참패로 차기 전당대회 때 당장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총선 패배 다음날인 4월 11일 사의를 표명했다.

결국 벼랑 끝에 내몰린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운명은 이들 수도권 중진들과의 관계 설정과 오는 2026년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총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4월 11일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 수석비서관 전원은 사의를 표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