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승 민주당, ‘이제 이재명의 적은 이재명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전국구 유세와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유세 등 두 개의 전선을 치러냈다. 결과적으로 이 대표는 이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민주당은 175석을 따내며 압승을 거뒀고, 이 대표 역시 재선에 성공했다. 2022년 6월 1일 치러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를 통해 처음 국회 입성을 시도했던 이재명 대표는 당시 2위와 10.57%포인트 차를 보이며 득표율 55.24%로 당선됐다. 이번에는 2위 득표자인 원희룡 국민의힘 후보와의 격차가 8.67%포인트 차로 줄어들긴 했지만 ‘지역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총선 기간 이재명 대표는 사법리스크에도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총선 투표 하루 전날인 지난 4월 9일에도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며 이른바 ‘법정 유세’를 펼쳤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는 “국민을 배신한 정치세력의 과반 의석을 반드시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이태원 참사의 아픔이 묻어 있는 용산을 찾아 윤석열 정부 심판론을 강조하며 마지막 유세를 마쳤다.
8월 전당대회에서 다시 대표 도전할 듯
총선 압승을 이끌어낸 이재명 대표에게는 오는 8월의 전당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가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 대표에 도전할지, 아니면 일선으로 후퇴해 대선 준비에 집중할지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천장을 받은 친명계 인사들이 대거 원내 입성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됐지만 대선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어 이재명 대표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지난 공천 과정에서부터 전권을 거머쥐었던 이재명 대표가 8월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대표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차기 대선 행보를 위한 범야권 연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실권(實權)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재명 대표에게 이번 총선 압승은 더할 나위 없는 훈장이다. ‘3김 시대’ 이후 치러진 최근 다섯 번의 국회의원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한 건 지난 20대 총선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박근혜 정부에서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122석으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123석)에 단 1석 차로 패했다. 반면 이번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격차는 67석으로 ‘사상 최대 격차의 여소야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폴리티컬소셜클럽 셀럽 윤재광 이사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인해 이재명 대표가 정치적으로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총선 초반 공천 논란 등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본인의 의지로 논란들을 돌파하며 결국 승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야권이 180석 이상을 얻어 제21대 국회처럼 패스트트랙의 민주당 단독처리가 가능할 수 있게 됐다”면서 “만약 차기 원내대표에 친명계가 당선된다면 사법리스크가 크게 대두되기 전까지는 이재명 중심 체제가 순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재명 지도부의 입지는 더 확고해질 것이 자명하다. 공천 결과에 반발하며 민주당을 이탈한 친문계 의원들도 있었지만 공천 막바지로 갈수록 민주당 잔류를 결정하며 순응하는 분위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일부 의원들이 “할 말이 많다”며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선거운동 기간 특별히 이재명 지도부에 화살을 겨눈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선대위원장을 맡은 김부겸 전 총리나 선거 유세 지원에 나선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공천에 불만을 품었던 인사들도 유세 과정에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을 뛰쳐나가 제3지대에 자리 잡은 세력이 선거에서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이재명 체제를 위협할 당밖 세력도 사실상 사라졌다. 민주당 탈당 인사들 중에서는 새로운미래에 합류해 세종갑에 출마한 김종민 의원만 살아남았다. 친문 핵심으로 분류됐던 홍영표 의원을 비롯해 설훈 의원이나 개혁신당으로 갔던 이원욱·조응천 의원,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김영주·이상민 의원 등은 국민의 엄격한 심판을 받고 낙선했다. 어찌됐든 이들이 주장했던 민주당 공천의 부당함이 선거 결과로는 증명되지 못한 셈이다.
앞으로 이재명 대표가 넘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무엇보다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경기도지사 시절 위증교사, 20대 대선 후보 시절 허위 발언 등 총 3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위증교사 사건은 월 1회, 대장동 사건의 경우 주1회 등 거의 격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법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그의 행보에 여전히 족쇄가 채워져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 여론을 지속적으로 이끌면서 원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조국혁신당과의 원만한 연대가 불가피하다. 단 1석이지만 의석을 확보한 새로운미래와의 연대나 합당도 고려 대상이다. 민주당이 확보한 175석만으로는 21대 국회에서 보여줬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진보진영에서부터 한 석이라도 더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호남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탄생한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세력으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이 전라와 광주 등 호남 28석을 모두 차지했지만 호남의 바닥 민심을 되찾아오기 위해선 조국혁신당과의 연합이 과제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격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조국혁신당과의 연합은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많다. 조국혁신당에 마냥 끌려가서는 제1야당이자 수권정당으로서 입지 설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과의 연합은 ‘양날의 칼’
당내외 친문계 세력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이재명 체제가 순항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사안이다. 공천 과정에 반발하고 이탈한 대부분 의원들은 낙선을 했고 일부는 당에 남아 끝까지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들이 이재명 체제를 인정하는 건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 막판 문재인 전 대통령도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며 친문들의 입지를 나름 유지시켜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 당장은 이재명 대표의 대권 행보에 맞설 이렇다 할 세력은 없어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조국 대표가 잠룡으로 급부상하긴 했지만 2심 징역형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앞둔 조 대표의 앞날은 어떤 전망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상 실형을 받을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견해가 많다. 친문 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특별사면됐지만 아직 복권이 되지 않아 지금으로선 차기 대선 출마가 어렵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이재명 외 새로운 대권주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19대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가 혜성처럼 등장했고, 21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급부상해 대통령까지 됐다”면서 “새로운 대권주자는 언제, 어디서 등장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이 높기 때문에 기존 정치권 인사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급부상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고 전망했다.
이재명 대표가 차기주자로서 순항하려면 수권 능력을 갖춘 제1야당의 지도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정책에 대한 대안 없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모습으로는 진정한 차기주자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낡은’ 이재명을 벗고 ‘새로운’ 이재명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이제 ‘이재명의 적은 이재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