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인구 증가, 일본 시골마을의 마법 같은 행정

2024-04-15     장영화 조인스타트업 대표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인구 8600여명의 시골마을 히가시카와 전경. 30년째 인구가 늘면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한 사례로 우리나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photo 히가시카와정

0.65명. 2023년 4분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 인구는 2017년 5136만명에서 2117년 1510만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집값과 교육비는 현생이 중요한 청년들에게 결혼도, 아이도 없는 삶을 선택하게 한다.

인구 감소는 수도권 쏠림 현상과 지방소멸로 이어진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시도되고 있지만, 주목할 만한 성공사례는 아직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겪어온 일본의 사례를 살피는 것은 우리만의 해법을 찾는 데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인구 8600여명의 시골마을 히가시카와(東川)는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다. 히가시카와가 갖고 있는 소박하지만 쾌적한 환경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어서다. 히가시카와에서는 내 집 마련도, 먹고사는 일도, 육아와 교육도 행정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해결한다. 이주를 희망한다 하더라도 당장 이주할 수도 없다. 히가시카와 행정청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정 인구를 정해 이주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전에는 히가시카와도 인구 유출로 소멸 위기에 놓인 시골마을이었다. 도대체 어떤 시도들이 오늘날의 히가시카와를 이주자들이 줄서는 마을로 만들었을까?

일본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마을마다 특산품을 개발해 소득증대 사업으로 삼는 일촌일품(一村一品) 운동이 펼쳐졌다. 그 시작을 이끈 것은 매실과 밤을 특산품으로 개발해 소득증대뿐 아니라 인재육성과 마을 환경 개선까지 이뤄낸 오이타현의 오야마(大山)였다. 히가시카와 역시 일촌일품 운동에 동참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히가시카와 전경. photo 히가시카와정

히가시카와의 특산물은? 사진입니다!

히가시카와에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거대한 국립공원인 다이세츠산(大雪山)이 있다. 겨우내 쌓인 눈은 미네랄이 풍부한 지하수가 되어 히가시카와의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물맛이 좋으니 쌀맛도 좋다. 쌀맛이 좋은 히가시카와가 마을의 대표 상품으로 내세운 것은 쌀이나 쌀로 빚은 술이 아닌 사진이었다. 히가시카와는 어떻게 사진을 대표 상품으로 정하게 되었을까?

히가시카와가 ‘사진의 마을’을 선언했던 1985년 무렵은 소니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한 지(1981년)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이 주는 제약을 벗어나 개인들에게 사진촬영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히가시카와 행정청을 돕던 컨설팅 회사는 디지털카메라의 출현과 히가시카와의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연결하면 마을을 알리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을 받은 히가시카와 행정청과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낯선 제안에 “예산낭비일 뿐”이라는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행정청의 리더들은 “어쩌면 가능한 희망”을 품고 새로운 시도를 선택하기로 했다.

히가시카와가 ‘사진의 마을’을 선언한 데에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문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에서 감동을 만든다”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①사진으로 담기 좋은 마을 만들기

②사진으로 담기 좋은 사람 만들기

③사진으로 담기 좋은 물건 만들기

히가시카와 행정청은 ‘사진의 마을’ 선언과 ‘사진 문화 수도’ 선언을 통해 히가시카와초 국제사진페스티벌, 사진고시엔(전국 고등학교 사진 선수권 대회), 히가시카와 유스 사진 페스티벌(HIGASHIKAWA Youth Festival)을 운영하고 있다. 여름철에 한 달 동안 펼쳐지는 국제사진페스티벌은 국내외 사진 관계자를 초대해 시상식, 포럼, 전시회를 운영한다. 사진고시엔은 예선을 통과한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히가시카와에 머물며 히가시카와의 풍경과 생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실력을 겨룬다. 1994년부터 시작된 사진고시엔은 오늘날 히가시카와의 상징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진고시엔을 운영하면서 피사체로 찍힌 마을 모습을 보게 된 마을 주민들은 “우리 마을이 더 아름다운 모습이면 좋겠다”는 데 공감하게 되었다. 히가시카와 행정청은 주택을 지을 때 히가시카와의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건축조례를 제정해 운영하고, 마을 주민들도 행정청의 지도에 맞춰 내가 살아가는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동참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히가시카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마을 주민들 마음속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내 모습과 생활이 사진의 모델이 되니, 나와 우리의 일상도 ‘사진에 찍힐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마을 주민들이 마음껏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적 기반’ 확장 정책으로 이어졌다.

히가시카와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히가시카와초 복합교류시설과 외관. 히가시카와 곳곳에는 시골마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건축미를 갖춘 공간들이 많다.

‘사진의 마을’이 사람들을 부르다

히가시카와는 일본 3대 가구로 꼽히는 ‘아사히카와 가구’의 30%를 생산하고 있다. 양질의 홋카이도 목자재를 사용할 수 있는 자연적 환경 덕분에 기술력과 디자인 역량을 갖춘 장인들이 모여들다 보니 이루게 된 결과다. 히가시카와는 이러한 지리적·산업적 여건을 발전시키기 위해 디자인 가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태어날 아이들을 맞이하는 기쁨을 지역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너의 의자’는 히가시카와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히가시카와 정장이 아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록한 의자를 배달하는 프로젝트다. ‘의자’는 개인이 일상에서 가장 밀접하게 이용하는 가구이니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행정청과 주민들이 함께 돕겠다는 의지를 담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이다.

의자의 디자인은 매년 지원을 받아 선정하고, 마을 공방에서 제작하는 방식이라 아이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적 저변 확대는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유용하다. 

2006년부터 시작된 ‘너의 의자’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히가시카와 인근 7개 지역으로 확대되어 운영되고 있다. ‘너의 의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 ‘배움의 의자’를 선물받아 이용하고 졸업하면 집으로 가져간다. ‘너의 의자’와 ‘배움의 의자’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대표산업을 마을 주민들의 일상과 연결하는 세련되고 현명한 행정 역량을 확인하게 된다.

히가시카와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정장이 아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록한 ‘너의 의자’가 배달된다.

히가시카와는 세계적인 가구 연구가 오다 노리츠구가 수집한 가구와 일상용품을 소개하는 ‘오다 컬렉션’을 상설 전시장을 두어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와 협업을 통해 기업들이 히가시카와에 머물며 일할 수 있는 거점 오피스를 건축해 운영하고 있다. 히가시카와에서 만든 ‘디자인 가구’로 채워진 거점 오피스를 경험한 기업 구성원들이 히가시카와의 뛰어난 가구와 문화적 환경을 접하면서 관계인구(특정 지역에 완전히 이주·정착하지는 않았으나 정기·비정기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로 연결되는 효과도 얻게 된다.

히가시카와 곳곳에는 시골마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건축미를 갖춘 공간들이 많다.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문화예술센터는 마을 주민은 물론 마을을 찾은 외부인들도 이용이 가능한 공간으로 히가시카와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느낄 수 있는 공공공간이다. 문화예술센터에서는 마을 주민을 위한 클래스뿐 아니라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연수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다. 문화예술센터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수준 높은 의자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히가시카와를 찾은 방문자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재미이자 매력 포인트다.

12헥타르(ha)에 달하는 부지와 4ha에 달하는 건물로 구성된 히가시카와 초등학교는 야구장과 축구장, 과수원 등이 설치되어 있다. 학교 건물은 단층에 벽이 없는 교실을 설치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니고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학교 공간은 특별활동 공간과 교과 학습 공간 그리고 마을 주민을 위한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학교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시골마을에서는 학교가 마을 주민들의 삶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훌륭한 교육시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도심의 복잡하고도 비싼 교육 환경을 벗어나 이주를 결정하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히가시카와의 컴패스 학교. 덴마크 ‘인생학교’를 경험한 일본 수도권 출신 창업자들이 시작한 인생학교 프로젝트 공간이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든 행정 리더십

인구 1만명이 안 되는 시골마을이 어떻게 이토록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갖춘 마을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그 핵심에는 “없는 것을 있게 만든” 기업가적 행정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도쿄가 바쁘고 좁지만, 히가시카와는 여유롭고 넓으니 이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가자.”

“우리에게 없는 것을 불평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더 키워가자”고 강조하던 히가시카와의 전 정장 마츠오카의 리더십은 히가시카와의 곳곳을 바꾸어갔다. 그는 “상수도가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에도 “우리에게는 멋진 원수공원이 있다”로 없는 것 대신 있는 것을 보도록 강조했다. 상수도가 없는 히가시카와는 집집마다 자동펌프를 설치해 지하수를 끌어올려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마츠오카 정장이 행정을 이끌어간 과정에서 현명함이 돋보이는 부분은 중앙정부의 지원을 끌어들여 마을의 시설을 설치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기업가적 역량을 발휘해 행정을 실현해 낸 부분이었다.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히가시카와초등학교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이러한 자금을 시골마을이 자체적으로 마련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히가시카와 행정청은 마츠오카의 리더십 아래 중앙정부가 원하는 정책적 목표를 살펴 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히가시카와 행정청의 사업을 설계했다. 중앙정부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원을 끌어오니 당연히 “예산낭비”라고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잠재울 수 있었다.

‘히가시카와 일본어학교’ 설치와 운영도 중앙정부의 지원을 끌어온 사례에 해당한다. ‘히가시카와 일본어학교’에는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인 학생들이 찾아온다. 외국인 학생들이 히가시카와에 머물며 일본어 공부를 하면 히가시카와는 정주 인구 증가로 인한 교부금을 중앙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 외국인 학생들은 일본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저렴한 학비로 공부할 수 있고, 히가시카와는 정주인구를 늘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중앙정부는 지방 소멸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으니 모두가 윈윈하는 정책 실현인 셈이다.

이러한 히가시카와의 기업가적 행정과 청년의 도전이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는 사례가 ‘School forLife Compath(이하 컴패스)’다. 컴패스는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인생학교)를 경험한 일본 수도권 출신의 창업자들이 일본에 맞는 폴케호이스콜레를 만들어 보자는 도전으로 시작된 인생학교 프로젝트다. 도쿄를 떠나 자리 잡을 곳을 살피던 그들이 히가시카와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히가시카와 행정청의 지원 덕분이었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접한 마츠오카 전 정장은 흔쾌히 그들이 히가시카와를 거점으로 새로운 교육실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마츠오카 전 정장이 컴패스의 가능성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일본어학교 운영을 통해 정주인구와 관계인구 증가의 효과를 경험한 덕분이었다.

컴패스의 창업자들은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지방 활성화 인재 지원 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 연간 인건비 200만엔(약 2000만원)과 활동비 400만엔(약 4000만원)을 3년 동안 지원받아 지방 정착을 준비했다. 그들은 3년 동안 인생학교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면서 마을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마을 주민들과의 유대 관계를 구축해갔다. 그렇게 신뢰를 얻고 경험을 쌓는 과정을 통해 마을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을 빌려 학교로 리모델링했다.

 

1980년대부터 히가시카와에서 매년 열리는 사진전. ‘사진의 마을’ 프로젝트는 히가시카와를 전국적으로 주목받게 만든 계기가 됐다.

인생학교 ‘컴패스’의 성공 비결

학교 공간을 리노베이션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사업자가 전체 비용의 일부(20%, 10%는 사업 시작 시 지출, 10%는 10년 동안 분할상환)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중앙정부의 지원(고향납세 지정 기부제 포함)으로 마련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히가시카와 행정청이 리노베이션에 필요한 비용을 직접 출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정부가 재원을 지원하는 대신 지방 행정청이 지방에 정착한 사업자가 오래도록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도록 정책이 설계된 것이다. 정책 설계가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지방 행정청은 건물의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설계변경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규정을 따지기보다는 ‘일이 되게’ 사업자를 돕게 된다. 그러한 노력을 아는 사업자는 지방 행정청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행정기관과 사업자 간의 협업이 쉽지 않은 우리 현실을 비추어보면 영민한 정책설계가 만들어내는 윈윈효과가 놀랍고, 부럽다.

인생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은 마을 주민들의 지지와 참여 속에 운영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마을 주민인 텍스타일 선생님을 초대해 수업을 운영했다. 컴패스는 향후 마을의 인적 자원과 설비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도심과 해외에서 찾아오는 교육생들에게 재충전과 성장의 기회를 확대해갈 계획이다. 인생학교라는 콘텐츠가 히가시카와라는 마을과 만나 지역 주민의 일자리뿐 아니라 지방 경제의 활성화까지 만들어내는 것이다.

히가시카와 행정청은 마츠오카 전 정장의 리더십 이래 행정 업무 추진에 있어서 “세 가지 ‘없다’가 없는” 행정 지침을 두고 있다. 통상적으로 지방 행정기관이 행정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장벽으로 작용한다.

1. 예산이 없다.

2. 전례가 없다.

3. 다른 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히가시카와 행정청에서는 위 3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마을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일이라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히가시카와 행정청은 체인지(Change), 챌린지(Challenge), 찬스(Chance)의 3C를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문화가 실무 담당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3C가 변화를 만들어냈음을 확인했기에 문화로 정착될 수 있었다.

이런 3C를 통해 만들어진 제도가 ‘히가시카와 주주제도’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고향사랑기부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거주지 외의 지방에 기부하면 기부자는 세금공제혜택과 지방의 특산물을 선물로 받게 된다. 하지만 히가시카와는 ‘기부자’라는 개념을 넘어서 ‘주주’라는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히가시카와에 기부하면 특별주민증과 주주증이 주어지고, 주주의 자격으로 마을만들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주주증을 갖고 있는 이들은 매년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고, 마을 내 시설을 할인된 가격(연간 2박 무료)으로 이용할 수 있다. 주주에게 제공되는 숙박시설과 여러 혜택들은 히가시카와 이주를 원하는 주주들에게 히가시카와를 사전에 경험해 보는 기회로 작용한다. 관계 인구를 늘려 정주인구가 늘어나는 여정이 매끄럽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기업가 마인드셋과 30년의 세월

지면상의 한계로 미처 소개하지 못했지만 히가시카와에는 위에서 소개한 내용 외에도 수많은 정책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부러운 마음을 가득 품고 히가시카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히가시카와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알려지면서 히가시카와를 찾는 우리나라의 행정·연구 관계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물론 히가시카와가 만들어낸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에 두 발 딛고 히가시카와 사례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소개했듯이 히가시카와의 오늘을 만들어낸 동력은 기업가 마인드셋을 장착한 행정리더십이었다. 외국인인 필자마저도 카드로 기부금을 결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편리함, 내가 원하는 단체인 컴패스를 꼭 찍어 기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섬세함, 무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해 히가시카와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치밀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품고 떠날 수 있도록 만든 현명함.

히가시카와의 오늘을 만들어낸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꿈’을 세우고, 그 꿈을 ‘함께의 힘’으로 이뤄낸 행정리더십이었고, 그것이 ‘30년의 세월’을 거쳐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히가시카와는 현재 원주민과 이주민의 비율이 4 대 6의 비율이 되면서 기존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겪고 있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지방 소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살펴 긴 안목으로 목적을 정하고, 함께의 힘으로 실행하고, 세월이라는 접착제로 ‘우리만의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도 널리 자랑하고 싶은 지방 소멸 극복사례가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