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기소된 ‘이재명’이 촉발한 여야의 ‘사법’ 속도전

2024-06-21     김회권 기자
지난 6월 1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4차 공판에 출석하며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뉴스들을 복기해보자. 먼저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대북 송금과 뇌물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9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17일 제3자뇌물 등 혐의로 이 대표를 기소했다. 이 대표는 이제 4개의 사건을 두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마지막 기소가 가장 큰 사법리스크라는 게 중론이다.

여의도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원 구성에서 다수의 힘을 발휘했다. 법사위와 운영위를 포함해 11개 상임위를 가져갔다. 국민의힘은 다수당이 국회의장을 가져가면 법사위원장은 양보하는 게 그동안의 관례였다고 주장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법사위를 확보한 민주당은 이제 ‘법안’을 융단 폭격하려고 한다. 엄청난 속도전을 예고했다. 이 법안들 중에는 이른바 ‘이화영 특검’으로 불리는 ‘김성태 대북송금 사건 관련 검찰의 허위진술 강요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도 들어갈 수 있다. 이 법은 검찰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2특검(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대기 중이다.

검찰 출신이자 ‘대장동 변호사’로 알려진 이건태 민주당 의원은 표적수사 금지법을 발의했다. 특정인을 제거하거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검찰의 표적수사행위를 근절하겠다며 내놓은 법안이다. 판사가 표적수사 의심이 들 경우 영장을 기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원은 “검찰이 이 대표를 상위표적으로,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를 하위표적으로 삼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수사기관 무고죄 처벌법’은 수사기관이 증거를 위조하거나 진술압박 시 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법기관 향한 총공세가 득이 될까 

이런 민주당의 움직임을 둘러싼 뉴스들은 이번 속도전을 검찰과 법원 등 사법기관을 향한 공세와 연결한다. 등장한 법안들의 면면이 그렇다. 다만 이 대표에게 득(得)이 될지는 미지수다. 민생 등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한 관심도가 이전보다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그동안 ‘민생’을 강조해왔던 이 대표는 요즘 여당이나 검찰을 언급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민주당이 먼저 꺼냈던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 추진은 중도확장 전략으로 해석됐지만 대통령실에서 “종부세 전면 폐지, 상속세율 30%로 인하” 등을 말하자 반대로 돌아섰다. 우클릭보다 도로 좌클릭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릴수록 국민 거부감이라는 역풍이 도사린다. 한 비명계 관계자는 “전략보다는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에 이 대표가 여유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고 종부세나 상속세, 연금개혁 등에서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지금은 총선 이전으로 돌아간 분위기다. 의회 권력을 압도적으로 받은 지금 대통령까지 달라고 요구하려면 이전처럼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사법리스크가 더해졌는데 공세적인 모습까지 보인다면 우려하는 중도층이 있지 않겠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더 세밀하게 전략을 짜고 점검했으면 좋겠는데 당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법원에 이재명 판결 속도전 주문하는 여당 

민주당의 속도전이 여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국민의힘의 속도전은 서초동에서 이루어진다. 지난 6월 19일 국민의힘 의원들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법원행정처장을 만나 이 대표의 각종 혐의에 대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촉구했다. 야당이 사법부를 방문해 정치적 요구를 하는 일은 있어도 여당이 이러는 건 드문 일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이번 추가 기소를 기회라고 본다. “무조건 대선 전에 대법원에서 선고가 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번 대법원 방문에서 ‘속도’를 요구하는 건 그런 조급함의 발로로 해석된다.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대선을 함께 묶어 언급하는 경우가 늘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헌법 84조’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 전 위원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의혹’ 실형 선고가 나온 다음 날부터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사흘 연속 헌법 84조를 거론했다. “자신의 범죄로 재판받던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그 형사재판이 중단되는 것인가”를 묻는 내용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돼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이 대표의 경우에도 해당하는지를 한 전 위원장은 물었다. 대통령이 된 뒤가 아닌, 되기 전 형사 사건이 불소추 특권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서다.

한 전 위원장은 “헌법은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을 따로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도 형사소추와 형사소송을 용어상 구분해서 쓰고 있으므로 헌법 제84조에서 말하는 소추란 소송의 제기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실형도 아니고 집행유예만 확정돼도 대통령직이 상실되기 때문에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 위원장의 주장은 다분히 전략적 포석을 깔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도 드러내고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동시에 그의 사법리스크를 강조해 국민들에게 이 대표의 흠집을 다시 한번 각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의원은 “한 전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이재명=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이 생겨 오히려 여당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너무 많이 나간 이야기라고 본다. 오히려 필요한 시기에 적확한 메시지를 내면서 메신저로서 능력을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의 속도전은 이 대표를 둘러싼 문제가 그리 단기간에 결론을 보기 어렵다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헌법 84조 해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지적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이 탄핵 재판도 아니고 대법원에서 당선 전에 있었던 재판 결과를 가지고 끌려 내려온다는 건 대법원이 감당 못한다”는 말도 타당한 지적이다. 이 때문에 “법원이 대선 전에 이 대표의 유·무죄를 가려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 진영에서 제기돼 왔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법적 혼란이 커질 것이고 이 때문에라도 신속 재판에 나서야 한다는 게 여당 의원들이 대법원을 찾은 배경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속도전은 ‘차기 대권주자 이재명’의 경쟁력이 전제다. 민주당은 3년 가까이 남은 대선 전까지 이 대표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쉽게 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 전체가 ‘이재명 방탄’에 빠져든다는 비판 속에서도 마이웨이를 갈 수 있는 이유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경쟁자를 탈락시킬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보고 신속 재판을 대법원에 요구한다. 결국 이 모든 건 이 대표가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있어서 생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