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현대차 취업사기 사건 전말
취업을 미끼로 지인들에게 돈을 뜯어낸 현대자동차 전직 노조 간부가 경찰에 구속됐다.
최근 울산지방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현대차 노조 간부를 지낸 60대 A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 사기가 아닌 현대차 노조원들 간 취업 청탁 과정에서 파생했으며, A로부터 돈을 뜯겨 받지 못한 피해자들 역시 현대차 직원들이었던 것으로 주간조선 취재 결과 드러났다. 피해자들 또한 자신들의 자녀를 취업시키려는 의도로 A씨에게 금품을 건넨 것이어서, 이번 사건은 대기업 노조들의 오랜 관행으로 알려진 ‘고용세습’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인사팀 번호로 문자 위장… 돌려막기 수법도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는 노조 대의원 출신 60대 A씨와 수사 중 사망한 50대 B씨다. 두 사람은 노조 활동을 하며 가까워진 이른바 ‘의형제’ 사이로, A씨는 자신에게 취업을 청탁하는 지인들을 B씨에게 소개해줬다. 이번 사건 수사는 B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B씨는 노조 사업부 대표를 맡거나 집행부에서 활동하는 등 노조 내에서 핵심적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다. 범죄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은 B씨가 2017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A씨가 소개한 피해자들을 포함해 약 30명에게서 23억원가량을 받아 챙긴 것으로 봤다.
취재 결과 B씨는 취업 대상자들을 회사로 불러 견학 교육을 진행했다. 또 회사 인사팀 번호로 발신번호를 조작해 문자를 보내거나, 인사팀의 안내 문자를 전달하는 것처럼 가장해 입사가 확정된 척 피해자들을 속였다. B씨가 피해자들에게 보낸 문자를 보면, 통상 입사 전 진행되는 신입사원 교육과 관련해 불과 열흘 사이에 세 차례나 연기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B씨는 “OOO군 입사가 조금 전 실무자·해당 사업부 협의 결과 확정되었다”며 “그간 정말 고생 많았고 부친도 몇 달 동안 수고 많았다”는 식으로 확정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OOO군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채용은 계속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채용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알고 피해자들이 항의하자, 이들은 돌려막기 식으로 피해금 일부를 돌려주며 장기간 범행을 이어갔다. 또 일부 금액은 골프나 유흥을 즐기는 데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B씨는 지난해 말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됐다. 이후 B씨가 지난 3월 사망하면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A씨의 범행은 B씨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A씨는 2020년 1월부터 12월까지 직장 동료를 포함해 지인 3명을 상대로 자녀를 정규직으로 취업시켜주겠다고 속인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8차례에 걸쳐 총 5억여원을 편취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A씨는 B씨를 앞세워 피해자 3명으로부터 3억9000여만원을 받아 B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딸 병원비, 생활비 등 명목으로 피해자 2명으로부터 1억1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도 있다.
A씨 역시 현대차에 지난 30여년간 재직하며 B씨처럼 노조 대의원을 여러 차례 지낸 인물로, 정년퇴직한 상태였다. 그는 과거 자신의 지위와 인맥을 기반으로 자신에게 취업을 청탁하는 지인들을 B씨에게 소개했다. 특히 그는 피해자들에게 “노조 간부들과 인사 부서 직원들을 잘 알고 있다”며 “내게 부탁하면 자녀를 정규직으로 취업시켜 줄 수 있다”고 속이는 방식으로 범행했다. 이렇게 가로챈 돈은 주식 투자로 탕진했다. 결국 A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취업 청탁이 본질”
현대차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단순 사기가 아닌 자녀에게 자리를 대물림하기 위해 벌어진 청탁 사건의 성격이 더 짙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취업사기를 당한 피해자들 대부분이 다름 아닌 현대차 직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현대차 생산직으로 취업시키기 위해 노조 간부들에게 돈을 줬다가 취업이 이뤄지지 않자 경찰에 고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는 “사실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들’ 역시 취업 청탁을 요청한 이들”이라면서 “결국 더 큰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경찰 관계자는 또한 “피해자들은 ‘이 사람에게 주면 무조건 취업시켜주겠지?’라는 확신으로 돈을 줬을 것”이라면서 “특히 이들이 노조 고위직 간부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 인물이자 피의자였던 B씨가 사망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홀로 남은 A씨가 더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고용 세습이 문제가 됐던 것은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2019년에는 현대차 사장의 동생이 직접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윤갑한 사장의 동생이었던 윤모씨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사장인 형에게 부탁해 현대차 수출선적부 등에 취업시켜주겠다며 최소 10여명에게 1인당 약 1000만〜2000만원씩 금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노조에서도 취업을 미끼로 동료 직원들로부터 금전을 받은 사례도 있다. 2013년 현대차 노조 전 간부 C씨는 동료 직원들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 당시 C씨는 동료 직원 2명으로부터 “인사팀 담당자를 잘 알고 있다. 자녀가 채용될 수 있도록 힘을 써주겠다”며 각각 5000만원씩 수금했다. 시간을 거슬러 2005년에도 2001년부터 2003년 말까지 당시 노조 간부들이 취업희망자들의 취업을 도와주고 금품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취업사기 이면에는 동료 직원들을 통해 취업 청탁을 주고받으며 금전적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결국 일부 노조 간부 출신들을 중심으로 윗선까지 취업 청탁의 악습은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편 현대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라며 “모든 채용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전했다. 노조 관계자 역시 주간조선에 “보도된 내용 말고 별도로 알고 있는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