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며] 멀리 하고 싶은 사람
‘정호용’이란 이름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제 위 세대는 아마 그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은 전두환 정권 신군부 ‘핵심 5인’ 중 유일한 생존자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을 맡은 바 있습니다.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을 무력 진압한 혐의 등으로 1997년 징역 7년을 확정받은 바 있죠.
2008년 즈음에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저는 당시 신군부 인사들의 재산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렵게 찾은 그의 집은 과천의 한 전원주택이었고, 널찍한 마당에 푸른 잔디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는 과천에만 1만㎡에 달하는 부동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는데, 그의 집에서 나온 한 인사는 “장관님은 이제 조용히 살고 있고 숨겨진 재산도 없으니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정 전 장관은 강남 논현동 한복판에도 대지 443㎡의 부동산이 있었습니다. 대지 위에는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전시장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해당 토지는 그 당시만 해도 수십억원의 가치를 지녔던 걸로 기억합니다. 2019년 한 탐사보도 매체가 정 전 장관의 재산을 다시 한번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취재했던 건 빙산의 일각이더군요. 한동안 잊고 있던 그의 이름을 다시 본 건 지난 14일 오후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 캠프에서 발표한 상임고문 명단에서였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의 영향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판단과 비상계엄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헌법재판소는 윤 전 대통령을 파면했고, 그는 지금 내란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긴 하지만, 국민의힘은 지금의 이 정치적·사회적 혼란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대선을 치르고 있습니다. 더 몸을 낮추고, 과거와 선을 긋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도 유권자들이 표를 줄까 말까 하는 판에 정 전 장관의 등장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 많은 유권자들이 떠올리는 단어는 저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최근에 한 유튜브에서 진행자가 어떤 유명 작가에게 ‘어떤 유형의 인간을 멀리하냐’고 묻자 평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답을 꺼내들더군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제가 멀리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 중 하나는 무례한 사람입니다. 무례한 사람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잘합니다. 식당 종업원 같은 사람들에게 무례한 사람이 저에게는 잘하는 이유는 제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의 필요가 사라지면 저도 비슷한 대접을 받겠죠.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관계만 맺을 순 없지만, 가급적이면 그런 관계에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속지 않고 싶습니다.
저는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도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우리는 필요할 때만 잘하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구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탕발림 같은 말보단 주변에 어떤 사람을 쓰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본다는 것이죠. 필요할 때만 잘하는 정치인들의 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죠.
김 후보 측은 발표 6시간 만에 인선을 철회했지만, 다음 날 “계엄은 사과한다”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출당에 대해선 “본인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선거가 얼마 안 남았네요. 독자님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