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선우 후폭풍? ‘수박 보좌진’ 색출 나선 개딸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정부 첫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이른바 ‘보좌진 갑질’ 논란 끝에 낙마했지만 진통이 여전하다. 민주당 내부에서 일부 당원 등 강성 지지자들이 의원실 보좌진들을 향해 ‘수박(겉과 속이 다른 자) 색출’을 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의원실 소속 보좌진들은 허탈함을 넘어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
국회의원 보좌진 등이 모인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 익명 공간 ‘여의도 옆 대나무숲’은 최근 강 의원 사태로 심리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보좌진들의 게시글과, 이들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난무하면서 얼룩졌다. 민주당 의원실 소속으로 추정되는 한 보좌진은 게시글에서 “문제가 있는 후보자의 진실을 밝히고 아주 작지만 우리의 최소한의 인권을 지키고자 했던 외침은 ‘수박’이라는 멸칭과 보좌진들은 출마는 꿈도 꾸지 마라는 협박, 그리고 국회 누리집(홈페이지)을 뒤져 찾은 300개 의원실의 보좌관과 선임비서관 명단을 온라인에서 조리돌림하는 칼날이 됐다”며 “마치 그 후보자의 낙마가 보좌진의 탓이고, 거대 언론과 야당이 협잡한 결과물이라는 듯 프레임을 씌워가며 몰아세움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보좌진은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든 정규직으로 근무를 하든 공무원을 하든 보좌진을 하든 모두 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특별히 갑질을 당해도 싼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호소했고, 또 다른 보좌진은 “지지자들의 글을 보면서 10년차 보좌진으로서 요즘 정말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 언제부터 우리당이 이런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는 당이 된 건가”라고 토로했다.
반면 어떤 보좌진은 “누가 강○○ 보좌진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개인의 능력이 떨어져서 소문 자자한 의원실로 가는 거 아닌가”라며 “본질은 의원의 갑질과 이를 개선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맞습니다만, 지금 이 상황이 돼서야 민보협(민주당보좌진협의회) 욕하고 의원실 욕하고 그러는 거 스스로 초라하지 않느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글에 달린 댓글은 더 살벌하다. 민주당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은 “민보협은 앞으로 당원들한테 대우받을 생각 하지 마라” “이낙연 같은 놈들. 동지를 적의 아가리에 밀어넣고 니들은 무사할 거 같냐” “민보협에서 설치는 보좌관들의 선출직 진입 역시 당원들의 아주 차가운 눈초리의 심판으로 영원히 불가능해졌다. 자업자득” “뒤에서 칼질한 것에 대한 엄청난 역풍을 정청래 당대표 체제를 통해 강력히 경험하게 될 것”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과거 강성 이재명계 지지자들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벌이던 이른바 수박 색출 작업이 보좌진으로까지 번진 건 강 의원 낙마가 단초가 됐다. 강 의원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내부 폭로로 그가 낙마하자, 분노가 보좌진을 향한 것이다.
의원에서 보좌진까지 번져
민주당에서 ‘수박 논란’은 고질적인 정치적 팬덤에서 비롯한 ‘남 탓’과 ‘편 가르기’ 현상 중 하나다. 내부에서 입장이 다른 사람을 겨냥해 ‘겉은 파란데(민주당) 속은 빨갛다(국민의힘)’고 몰아붙이며 ‘색출’과 ‘퇴출’ 압박을 일삼는다.
민주당 내에서 수박은 이재명 대통령 강성 지지층을 일컫는 ‘개딸’들이 비(非)이재명계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2023년 당시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 통과 후 당내 ‘가결파’를 향해 ‘수박’이라고 직격하면서 친명과 비명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개딸들은 가결 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의 명단을 작성해 이른바 ‘수박 색출’ 혹은 ‘수박 깨기’ 등의 폭력적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이후 법원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당시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지난해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며 수박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지난 6월 이재명 정부가 조기 출범하는 등 민주당에는 ‘훈풍’이 이어졌지만, 첫 내각 인사 과정에서 또다시 수박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명심(이재명의 마음)’을 얻은 것으로 보인 강 의원에 대한 의원실 내부 보좌진들의 폭로로 임명 수순에 제동이 걸렸다. 이에 강 의원이 사과 대신 “사실이 아니다”라며 반박하고 나서면서 ‘진실 공방’ 문제로 번졌다. 한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은 “사실 관계보다 의견과 감정의 문제”라며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했으면 될 일을 ‘난 그런 적 없는데’ 식으로 맞서면서 진실 공방으로 번져버렸다. 강 의원이 잘못 대응한 문제”라고 봤다.
강 의원의 갑질 논란이 도마에 오르자 국민적 공분도 커졌다. 급기야 ‘찐명(진짜 친명)’으로 꼽히는 박찬대 의원이 나서 ‘용단’을 촉구했고, 강 의원은 곧장 ‘자진 사퇴’ 형식으로 낙마했다. 그러자 소위 개딸로 불리는 강성 민주당원들이 다시 ‘수박론’을 들고 나섰다. 강 의원의 낙마로 이재명 정부의 내각 인선에 발목이 잡히자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강 의원의 갑질 의혹을 공론화한 해당 의원실뿐만 아니라 민주당 전체 보좌진을 타박했다. 심지어 박찬대 의원마저 ‘수박’으로 칭하며 비판하는 당원들도 있었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은 “강 의원 낙마 후 일부 당원들로부터 민보협과 여러 의원실에 ‘너네(보좌진)가 뭔데 나대냐’ ‘수박이냐’ 등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면서 “강선우 의원 지역구(서울 강서갑)가 당초 금태섭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면서 거긴 ‘수박밭’이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민주당 의원실 보좌진들은 이러한 지지층의 움직임에 공식적인 대응은 자제한 채 향후 갑질 재발 방지를 위한 조용한 후속작업을 진행 중이다. 1500명 규모의 민보협은 자당 보좌진을 대상으로 갑질 피해 사례와 처우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다. 의원 말 한마디면 일자리를 잃는 고용 불안으로 인해 갑질 사례를 제보하거나 의견을 말하기가 여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외풍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며 ‘멘탈 관리’에 나서고 있다.
고건민 민보협 회장은 “최대한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며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취합 단계”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논란을 만드는 건 부담”이라며 말을 아꼈다. 민주당에서는 불필요한 ‘내부 총질’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강선우 사태가 전당대회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지층 분열과 팬덤 정치 가속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의원실 보좌진은 “(수박 색출 압박으로) 실제 신변의 위협을 느낀 보좌진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괜히 당원과 보좌진이 싸우며 분열될 문제도 아니고, 떠들어 봐야 남는 게 없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다”고 일축했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국보협)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대표 후보자 전원에게 ‘보좌진 권익 보호 정책협약’을 공식 제안하고, 법안 마련을 위해 입법조사처 용역 검토 등 입법적 절차도 추진하고 있다. 황규환 국보협 회장은 “민보협 측에 필요 시 국회의장도 함께 만나서 건의하자는 의견을 전달해놓은 상태”라며 공동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