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해산’ 강공 뒤에 숨은 여권의 정치적 노림수

2025-08-09     이정현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현수막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이곳이 정치 투쟁 최전선이라는 사실은 공해 수준으로 붙여 놓은 각종 현수막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쪽에서는 “위헌 정당 ‘국민의힘’은 해산이 답!”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다른 곳에는 “독재에 저항한다! 8·15, 광화문! 국민 저항의 날!”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정적을 향한 거친 말과 조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곳의 갈등을 한껏 끌어올리는 것은 제1야당 국민의힘 정당해산 청구 논란이다. 원래 여의도에서 107석을 가진 제1야당인 국민의힘을 강제 해산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지난해 12월 3일 국힘 의원 18명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에 참여했고, 대통령 탄핵 투표에도 10명 이상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당 대표를 포함해 국힘 의원 절대다수가 비상계엄을 사전에 알지 못했기에 일부 의원은 몰라도 당 자체가 해산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계엄 당일 단일대오로 반대하지 않은 것에 책임을 묻는 여당의 정치공세 정도로 인식했다.  

야당을 해체하겠다는 여권의 주장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한 것은 정청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당선되면서부터다. 원래 이것은 그의 소신이었다. 

‘위헌정당 해산’을 주장하는 국회 앞 현수막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정청래, “열 번, 백 번 해산감” 

지난 8월 5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그는 국민의힘 위헌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대해 “못 할 것이 없다”며 평소 소신을 재확인했다. “통진당도 내란 예비음모 혐의로 해산당했는데 지금은 내란을 직접 하려고 한 것 아닌가. 통진당 해산을 잘했다는 게 아니라 거기 비춰 보면 국민의힘은 열 번, 백 번 해산감”이라며 이유까지 덧붙였다. 

다만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질문이 등장한다. 진행자가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만류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이에 정 대표는 “대통령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때는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헌법 규정만으로 볼 때 정부가 어렵다고 하면 그냥 안 되는 것이다. 헌법 제8조가 그렇다. 해당 조항 3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해산된다”고 규정한다. 결국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제소하는 주체는 이재명 ‘정부’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권유 혹은 요청 정도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정 대표는 지난 7월 국회가 본회의에서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하면 이를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하기엔 쉽진 않을 것이니 국회 의결로 (정당 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상 정당해산 제소권은 정부에만 있다”며 “국회의 정당해산 제소권 신설안은 헌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했다. 또 ‘국힘 정당해산’의 근거로 사용되는 통진당 해산 사례에 대해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성격 때문에 해산된 것이지, 내란을 실제로 실행했느냐 음모 단계였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내란 혐의가 확정된 이후에 정당해산을 논의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당선 전 (자기 재판에서) 무죄추정을 주장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배지환 국민의힘 혁신위원(수원시의원) 역시 “만약 국민의힘이 해산되면 사실상 일당 독재가 되는 것으로 양당제가 붕괴되는 것”이라며 “헌법상 정당해산 청구권자는 ‘정부’이다”라며 “정 대표가 법안 발의로 바꾸겠다고 하는데, 그건 법으로 바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헌법 개정 사안이다”라고 했다. 고작 “서명운동을 통해 ‘청구해달라’고 촉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독재 저항’을 주장하는 국회 앞 현수막.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국힘 정당해산’은 정 대표의 자기 정치?

이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다’라는 입장은 민주당의 당론이 될 수 없다”며 “정 대표 개인의 주장이지 민주당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만약 “당론이라면 국회에서 국민의힘과 어떤 협업도 하면 안 되고, (민주당 의총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상임위원장을 전부 해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만약 국민의힘이 해산되면 “선거 없이 지도자를 추대하는 중국 시스템처럼 될 것”이라며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정하면 당선되는 일당 독재가 된다”고 했다. 즉 “국민의힘을 위헌 정당으로 규정해 해산시키면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가 되어 버린다”며 “이것이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국힘 정당해산’이라면 정 대표가 바람을 잡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국민의힘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야당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영수회담 정례화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8월 15일 광복절에 열리는 ‘국민임명식’에 박근혜·이명박 대통령도 초청하는 등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악수는 사람하고 하는 것”이라며 취임 인사차 야당 대표를 다 만나고도, 국민의힘은 찾지 않은 정 대표와는 다른 행보다. 만약 이번 달 새로 선출되는 국민의힘 당 대표와 이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하게 된다면 정 대표가 아주 어색해지는 모양새가 된다. 

그렇다면 정 대표가 현재로서 권한도 없는 걸 법까지 바꿔가며 추진하는 이유가 뭘까. 야당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자기 정치’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준우 대변인은 “정 대표 자신의 강성 지지층, 특히 ‘개딸’들에게 어필하려고 일부러 과격한 언어를 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핵심 지지층을 의식해 이 대통령 측과 조율되지 않은 강경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당 대표를 연임했던 것처럼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 대표 연임에 성공하면 정 대표는 총선 공천을 주도해 민주당을 정청래 당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차기 대권 도전도 가능해지는데, 이 모든 것이 이재명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이다. 

야당에서는 ‘차명주식거래’ 의혹으로 이춘석 의원을 제명하는 과정에서도 정 의원이 자기 정치를 했다고 보고 있다. 후임 법사위원장으로 임명된 추미애 의원 자체가 ‘럭비공’이라는 비판이 있어 안정적으로 법사위원장직을 끌고 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 대표가 이를 대통령실과 상의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정 대표가 독자적으로 이를 결정했다면 원래 당 대표로 박찬대 의원에 마음이 기울었던 이 대통령 측으로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위해 국힘을 내란정당으로 묶어 두는 데 목적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배지환 혁신위원은 ‘국힘 정당해산’은 “강성 지지층만 보고 가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초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과 같다”고 했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초기 이재명 대표를 형사 피의자라며 만나지 않았다.

배 위원은 “결국 이것은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이라며 “국민의힘이 야당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프레임을 씌워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제 헌재가 해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계속 공격을 당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배 위원은 “이것이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무대응 전략을 취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준우 대변인 역시 정 대표의 내란정당 해체 주장이 “강성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라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이겨서 연임에 성공해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설령 헌재로 사건이 올라가더라도 “쉽게 판단을 안 해 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보다 3년 후 총선까지 내다본 ‘총선용 전략’이다”라고 주장했다. “저 당은 없어질 당이니 찍지 마세요”라는 분위기를 총선까지 끌고 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부담? 

다만 정청래 대표의 강경일변도 대야 전략이 이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국힘 정당해산’은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최종 결심은 이 대통령이 하는 거라, 만약 헌재로 올렸다가 기각되면 그 책임은 이 대통령이 져야 한다. 잘못되면 ‘야당 탄압’ 지도자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헌재로 올리지 않으면 ‘내란당 해체’를 원하는 민주당 지지층에 불만이 쌓일 수 있다. 결국 이들은 국힘과 악수도 하지 않는 선명한 정 대표에게 기울 수 있다. 이들의 선택을 받아야 당을 장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정 대표에게 힘이 된다. 당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