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전승절 참석, 한미 관계에 나쁜 일 아니다?
중국은 북한에 많이 고마워해야 한다. 그 이유는 중국이 미국에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북한이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으로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그간의 정세 평가가 완전히 틀렸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우선 중국은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직접 나선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 중국은 그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같이 중국도 주변국을 침공할 수 있다”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고려해 군사적 중립을 선언해왔다. 대신 중국은 북한이 자신을 대신해 유럽 전구(戰區)까지 뛰어들도록 허락했다. 아마도 이는 중국이 북한의 참전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이유일 것이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과 군사지원은 미국으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전쟁에 얽매이게 하는 성과를 얻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이미 3년이 넘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휴전 시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심지어 최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재개했다. 그동안 중국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성사시킨 뒤 유럽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맡기고, 주된 전략과 자원을 인도·태평양에 집중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기를 내심 고대해왔다. 여기에 북한의 러시아 군사지원은 큰 기여를 해왔다.
다음으로 북한은 지난 7월 31일 한국을 패싱하면서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선언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을 새로운 타깃으로 하기보다, 북한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초강수였다. 이 점에서 중국은 북한의 이러한 행동이 참으로 기특할 것이다.
특히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7월 29일 담화를 통해 미국에 ‘새로운 사고(new thinking)’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라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 위상을 인정하고 핵 군축협상을 하자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이는 중국이 미국에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주한미군 붙들어 놓는 북한
중국이 북한에 고마워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주한미군을 북한을 상대로 하는 붙박이 해외주둔군으로 붙잡아두는 것이다. 사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북한의 군사적 위협만이 아닌 대만해협 위기 또는 남중국해 우발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갖춘 원정군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가져왔다. 한데 느닷없이 북한은 최근 이재명 정부가 지난 몇 주간 취한 대북방송 중단 등의 선의 제스처가 신뢰회복에 부족하다고 선언했다. 이에 당황한 이재명 정부는 마지막 유화 제스처로 8월 중순으로 예정된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에서 이미 계획된 한·미 연합훈련을 조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당장 후유증이 나왔다. 주한미군 사령부 대변인은 한국 통일부가 양국 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8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방위태세 연습을 변화시키는 것은 양국 합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난 7월 28일 반박 성명을 냈다. 이는 당장 한·미 연합방위태세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때문인지 제이비어 브런스 주한미군 사령관(육군대장)의 최근 행보도 과거와 달리 매우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향후 북한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에 집중해 주한미군을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갖는다는 느낌이다.
아울러 북한은 중국이 부담을 갖는 주한미군이 원정군으로 변신하지 않도록 과거와 달리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 아주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주한미군은 중국이 원치 않는 대만 또는 남중국해를 대비하는 원정군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이 같은 결과를 우려해 요즘 북한은 주한미군의 ‘주’ 자와 철수의 ‘철’ 자도 언급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북한이 한·미 양국에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일수록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보여줄 수 있는 카드를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할 것이다.
트럼프, 李 전승절 참석 동의할 수도
필자는 오는 8월 말로 예상되는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동맹 현대화에 따른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와 주한미군 주둔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것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면, 트럼프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가 재차 작동할 것으로 본다. ‘타코’는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도망간다’는 뜻의 줄임말이다. 이 경우 ‘타코’가 작동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대화에 나서도록 하라고 잘 설득해 보라”고 주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지난 2018년 베트남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할 카드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한국 역시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중국 카드’를 사용해 왔다. 북한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도 안 먹힌다. 한국으로서도 북한에 쓸 대안을 거의 소진한 상태다. 미국 역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제재 완화’를 솔직히 하기 싫어했다. 이에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한 제재에 동의했던 중국이 미·북 간의 중재를 하기를 기대해 왔다.
위의 연장선상에서 필자는 향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9월 3일 중국 전승절 천안문 군사열병식에 가는 것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양해를 얻어낼 것으로 조심스레 기대한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잘 설득해 핵무기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수용해 생존하라”고 시진핑 주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건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에 동의할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트럼프 타코’이며, 이 대통령이 중국이 초청한 오는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광장 군사열병식에 참석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대신 중국은 이재명 대통령의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sphere of influence)’를 미국에 내비칠 수 있는 매우 좋은 사례로 활용할 것이다. 대신 중국은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며, 러시아의 반대에 맞닥뜨릴 외통수가 될 것을 우려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미국 입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잃을 것은 별로 없고, 얻을 것만 있는 일이 될 수 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