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자율제·기부금 입학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
현재 국내 대학 대부분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학생 1인당 연평균 등록금은 682만원 수준으로, 이 중 국·공립대학이 462만원,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760만원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비싸다, 적당하다 등 갑론을박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2009년 이후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상태라는 점이다. 사회적 여론과 학생 사회의 반발,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그동안 등록금 인상은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져 왔다. 등록금을 올릴 수 없는 여건 속에서 대학은 재정 확보를 위한 우회로를 찾기 시작했고, 수익사업을 벌이거나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정부 재정 지원에 의존함으로써 대안을 찾았다.
그러나 단기 수익에 급급한 상업화, 교육 여건과 무관한 외국인 학생 유입,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한 과도한 행정력 소모가 대학 교육의 전반적인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 재정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정부의 재정 기조나 정권의 교육 철학에 따라 대학 운영의 방향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학문과 교육의 독립성이라는 대학의 근본적 가치와 자율성마저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록금 문제는 오랫동안 ‘인상 대 동결’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만을 두고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되어 왔다. 각자의 입장이 첨예한 탓에 문제를 덮는 데에만 급급했고, 결국 갈등만 남긴 채 교착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의 안정적인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관한 고민을 마주하고, 그 해답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사립대학 등록금 자율화’와 ‘기부입학제’의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등록금 자율화, 금기에서 가능성으로
우선 사립대학의 등록금 자율화는 대학이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산정함에 따라 재정적 자립을 도모하고 대학 경쟁력을 회복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물론 등록금 자율화가 곧바로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지금의 일괄적인 동결 정책이 오히려 사립대학 전체를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대학마다 처한 재정 상황, 교육 여건, 학문 수준은 제각각인데, 등록금은 모두 비슷한 수준에 묶여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대학은 학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육기관이자 동시에 자율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조직인데, 그렇다면 수요자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질과 비용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한도 있어야 한다. 등록금 자율화는 단지 등록금 인상을 넘어 대학이 등록금에 걸맞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등록금의 상한이 해제된 상황에서 대학은 학사, 연구 전반에 있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구조적 혁신에 나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는 대학 교육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립대학 등록금 자율화가 자칫 교육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역할은 국·공립대학이 해내야 한다. 등록금 자율화는 사립대에 한정하고, 국·공립대학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등록금을 유지한다면 “훌륭한 역량에도 등록금 부담 탓에 유수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일각의 우려 또한 해소할 수 있다. 오히려 우수한 인재들이 국·공립대학으로 몰리는 흐름이 생기면서 국·공립대학의 위상과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 또한 지방 국·공립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이 같은 선행작업을 동반한다면 정책적 목표를 이루는 데 효과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외형적인 성장을 넘어 핵심 인재들이 상주하는 지역 명문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부입학제 또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많은 대학이 총동문회나 기업과 연계한 발전기금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기부 시스템을 갖춘 곳은 없다. 결국 대학은 등록금 외 수입원이 마땅치 않은 현실에 놓여 있고, 기부입학제는 그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아직 우리에게는 “돈으로 입학 자격을 산다”는 부정적인 인식 탓에 기부입학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만, 기부입학생을 ‘정원 외’ 선발로 제한하고, 이들의 기부금을 전액 재학생 지원에 활용한다면, 학생들의 불만 또한 완화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미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기부입학을 허용해왔고, 그 기부금은 다시 재학생의 장학금이나 연구비, 복지 예산 등으로 환류되고 있다.
입학에만 지나치게 큰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입학제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큰 이유는 한국 사회가 입학 자체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났다는 인식이 강하고, 이로 인해 입시 과정에서의 경쟁과 공정성에 특히 민감하다. 그러다 보니 기부입학제는 늘 ‘돈으로 입학 기회를 사는 불공정한 제도’로 간주되고, 관련한 논의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미국 등 기부입학제를 시행하는 다수의 국가에서는 입학보다 졸업, 즉 입학 이후의 학업 성취와 성장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교육의 중심이 입학 이전이 아닌입학 이후에 놓인 사회에서는 기부입학도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 입학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인 학습과 성취에 대한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나아가 공정에 대한 이해 역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도 공정이지만, 누구도 손해보지 않고 각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면, 그것 또한 또 다른 형태의 공정일 수 있다. 만약 기부입학을 통해 유입된 재원이 재학생 장학금으로 쓰인다면, 이는 구조적 상생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정치권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등록금 문제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경향이 있다.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교육 또한 국가의 책임이고, 궁극적으로 고등교육까지 무상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등록금 인상과 관련한 논쟁이 더욱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쓰려 할 때 주변에서 우려를 건네거나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마저도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지방대학의 위기, 고등교육의 질적 하락, 대학의 재정 자립 실패 등 그동안 외면해온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고, 이를 외면한 채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머무는 것은 문제 해결을 방기하는 정치의 무책임함에 기대는 일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이 불편한 질문들을 마주하고 공론장으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