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이 불러온 고입 사교육 시장 과열
2022개정 교육과정 첫 세대의 한 학기가 끝났다. 2022개정 교육과정은 대학처럼 자유롭게 학점을 듣는 고교학점제 그리고 내신 경쟁 완화를 위한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의 전환, 마지막으로 생활기록부 내에서의 표준편차 삭제를 골자로 한다.
필자는 ‘틀리다’라는 말을 상당히 안 좋아한다. 정책에 있어서도 모든 정책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다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학생 신분으로 2000년대를 보내며 그 말 많던 등급제도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보았고, 동생의 입시를 지켜보며 입학사정관제도 그런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2022개정 교육과정은 틀렸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고입마저 사교육이 활성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면접에 관한 사교육 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자유롭게 교과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탁상공론일 뿐, 학생들에게 자유는 없다. 오히려 1학년 때부터 ‘2학년 때는 무슨 선택과목을 선택해야 하냐’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자유가 아닌 자유를 부여하니 혼란만 가중되고 컨설팅 문의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만약 약학대학을 지망하고자 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학생에게 생명 과목을 듣지 않을 자유가 있겠는가? 겉으로는 자유를 준 것처럼 보이지만 2022개정 교육과정은 이미 진로에 맞춘 정답이 존재하고 그 정답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오히려 중학교를 막 벗어난 아이들에게 진로를 빠르게 정하여 그에 맞춘 선택과목을 듣도록 교육 과정이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약사라는 꿈을 가졌던 학생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경영인이 되겠다며 진로를 바꾸면 우리의 교육과정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이미 2학년 1학기 때에는 선택과목들을 약학대학에 맞춰 이수했을 것이기에 경영학과를 가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진로에 맞추어 어떤 선택과목을 들어야 하는지 문의가 쏟아지고 있으며, 사교육이 줄기는커녕 사교육 시장은 더욱더 커지는 듯하다.
늘어나는 고입 문의
현장에서는 고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선택과목이나 진로 상담을 받고자 하는 중학생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수능 최저는 사탐으로 맞춰도 된다’며 융합을 강조하지만, 정작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어느 고등학교’를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목 선택이 매우 중요해지다 보니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에 유리한 교육 과목 편제에 있어서 어떤 고등학교를 보내면 좋을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교 입시 시장이 대학 입시 시장 이상으로 과열되고 있다. 실제로 ‘고입 컨설턴트’ 양성을 계획하는 학원들도 생기고 있다. 틀린 정책이 불안감을 가중하고 이 불안감은 사교육 시장을 더욱 부풀릴 확률이 커진 것이다.
또한 지금의 교육과정은 학생부 교과전형을 흔들 수 있다. 학생부 교과 전형은 내신을 위주로 하는 전형이다. 물론 사교육 비용이 0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전형, 즉 생활기록부나 면접이 가미된 학생부종합전형 등에 비해서는 사교육 비용이 낮은 편이다. 즉 학생부 교과전형을 흔드는 것은 사교육 비용을 늘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5등급제하에서는 한 과목이라도 2등급을 받으면 상위권 대학 진학이 힘들다는 생각 아래 내신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금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2년 뒤 원서를 쓸 때를 떠올려보자. 경쟁은 여전하지만, 결국 9등급제보다 5등급제는 변별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변별력이 낮은 상황에서 각 대학들은 순수한 의미의 학생부 교과전형을 가져가기보다는 변형된 학생부 교과전형을 가져갈 확률이 크다. 예를 들어 서류 평가를 조금이라도 추가한다든지 면접을 추가하는 형태로 말이다. 내신 이외에 다른 요소를 추가하는 것은 결국 사교육 시장의 규모 확대만 가져올 뿐이다.
이처럼 지금의 교육 과정은 학생부 교과전형을 흔들어 사교육 시장을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 특히나 교과전형의 경우 꽤나 많은 상위권 대학들에서 수능 최저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수능 최저라는 제도는 내신이 훌륭하더라도 수능에서 일정 등급을 넘지 못하면 떨어지는 제도인데 내신 변별력이 떨어진다면 수능 최저를 강화할 수 있다. 대체로 선행을 많이 한 학생들이 수능 최저를 잘 맞추기에 선행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고등학교 선행을 어떤 교재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해야 할지 문의가 정말로 많이 늘어나고 있다.
정책혼선이 부른 과열
2022개정 교육과정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생활기록부에서의 표준편차 삭제’이다. 표준편차 삭제로부터 촉발된 불안감이 사교육 시장을 또 부추기고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표준편차를 없앴다는 점이 한동안 ‘이제는 고등학교 수준을 파악할 수 없다’처럼 여겨졌다. 표준편차는 기존 교육 과정에서 각 고등학교가 어느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지 혹은 아이들이 얼마나 뛰어난지의 지표로 활용되었기에 언뜻 보기에 올바른 방향처럼 보였다.
하지만 필자와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표준편차는 없어졌지만 성취도, 분할점수 등을 활용해 충분히 표준편차와 평균을 유추해낼 수 있으며 5등급제하에서도 얼마든지 각 학교의 경쟁 수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부 종합전형은 달라질 게 없다. 그러나 표준편차가 삭제되었기에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생활기록부의 탐구 주제가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생활기록부 탐구 주제에 대한 조언을 받고자 하는 수요가 커지면서 여기에 발맞춘 사교육 시장의 공급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정책이 바뀔 때 오해는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오해를 놔두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교육은 이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 도대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정리하자면 2022개정 교육과정은 세 가지 면에서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일단 불안감을 가중시켜 사교육을 확장시키고 있다. 또한 학생부교과전형을 흔들어 사교육 시장을 확대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표준편차 삭제와 같은 정책으로 인해 오해를 가중시켜 사교육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사교육 시장’이라는 생물은 카멜레온 이상으로 적응력이 높은 생물이다. 근시안적인 접근 혹은 단기적인 접근으로는 사교육 비용 낮추기에 성공할 수 없다. 앞으로 더욱 깊은 논의와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른 정책 수립을 통해 이러한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