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맞는 매가 낫다"… 여권의 조국 사면 강행 속내

2025-08-16     오기영 기자
지난해 9월 2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당시 조국혁신당 대표(왼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2대 국회 개원식 겸 제418회 국회(정기회) 개회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 전 대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2개월여 만에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취임 초부터 언급됐던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그의 배우자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결국 사면 명단에 포함됐다. 이외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후원금을 횡령한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강욱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등 여권 인사에 대해 사면이 이뤄졌다. 통상 ‘정치인 사면’은 역대 정권 초반 국정운영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뒷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이지만, 이 대통령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당장 ‘조국 사태 시즌2’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조 전 대표의 법무부 장관 지명 직후 불거진 ‘입시 비리 의혹’은 취임 이후 탄탄한 지지율을 유지해왔던 문 전 대통령의 기반을 흔들었다. 급기야 ‘조국 수호’와 ‘조국 규탄’으로 여론은 갈라졌고, 광장이 둘로 쪼개지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를 기점으로 집권 2년 차였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정권교체라는 결말로 귀결됐다. 

수감 7개월여 만에 출소하게 된 조 전 대표를 두고 여론의 향방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이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사면 직전까지 조 전 대표의 사면에 대한 여론은 팽팽했기 때문이다. 7월 중순부터 사면 얘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또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권 초기 이 대통령의 결단이 지난 문재인 정부 때처럼 정부를 흔들 만한 기폭제로 작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文정부 땐 ‘블랙홀’… 6년 전과 지금은? 

조 전 대표가 정치권의 중심에 선 것은 6년 전 이맘때였다. 2019년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에서 물러난 조 전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직후부터, 딸 조민씨를 비롯한 ‘자녀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아내 정 전 교수와 관련해 사문서 위조, 탈세 등의 의혹도 함께 제기되면서, 그야말로 모든 정치권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블랙홀은 자연스레 정부에도 타격을 줬다. 2017년 5월 취임 후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문 전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고, 조 전 대표를 두고 진보 진영은 분열하기도 했다.문재인 정부 말기 진행했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일 중 ‘조국 전 장관 임명’이 ‘부동산 정책’에 이어 두 번째로 꼽히기도 했다. 집값 상승이 문재인 정부 후반기 정점에 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집권 2년 차에 떠올랐던 ‘조국 블랙홀’의 여파는 정권 말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번 ‘조국 사면’은 어떨까. 우선 시기가 다르다. 당시 집권 2년 차 중반에 터졌던 조국 사태와 달리, 이번엔 소위 ‘허니문’ 기간이 채 가기도 전인 두 달여 만에 사면이 이뤄졌다. 민주당 모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했다면, 오히려 정권에 더 부담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며 “정권 초에 ‘매를 먼저 맞자’는 선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취임 직후부터 꾸준히 제기되면서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문제를 단기간에 안고 가겠다는 식이다.

또 다른 점은 조 전 대표의 지위다. 당시 조 전 대표는 임명직인 민정수석비서관을 내려놓고 또다시 임명직인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올랐다. 그러나 현재는 선출직인 국회의원을 이미 경험한 상황이다. 그는 원내 12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였으며, 차기 대권 주자 물망에 오르기도 하는 입장이다. 

이미 실형을 받고 짧게나마 수감 생활을 이어왔다는 점에서도 조 전 대표로 하여금 ‘법적 책임을 졌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모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윤석열과 비교했을 때 (조 전 대표는) 사법부 판단을 수용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무리한 수사를 통한 ‘사법 피해자’라는 인식은 6년 전 처음 조 전 대표를 바라봤던 국민적 시각을 바꿀 여지도 있다.

6년 전에 비해 시기나 입장도 각기 다르지만, 여권을 중심으로 여론의 추이를 유심히 살피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이 잔인하게 과잉 수사한 측면도 있지만, 입시 부정은 곧 공정의 문제 아니냐”면서 “이번 사면이 향후 지지율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당 내에서는 아직 안심하는 분위기가 더 커 보인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사면 발표 다음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전반적으로 사면에 대해 여론은 크게 나쁘지 않다”며 “사면이 결정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배경이라 보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조국 사태’를 경험해 본 민주당이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우선 조 전 대표의 사면 전까지 여론이 팽팽했다. 지난 6월 이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 조 전 대표의 사면에 대한 여론조사 추이는 꾸준히 ‘5 대 5’ 수준이었다. 물론 이 대통령과 민주당에 경고등이 켜진 것 같은 대목도 있다. 사면 이후 처음으로 발표된 이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3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54.7%, 부정 평가는 39.5%로 집계됐다.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보다 4.1%포인트 하락했다. 해당 조사는 8월 11일부터 12일까지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광복절 특사 발표는 11일 오후에 나왔다. 온전히 조사에 반영될 수는 없었으나, 조사기관은 “광복절 특사 갈등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동력 없는 野… “여야 거래처럼 보여” 

민주당이 여유를 갖는 또 다른 이유는 국민의힘 덕분이다.특별사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이를 강도 높게 비판할 야권의 목소리가 크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당장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야권 주요 인사들이 사면 단행 직후 “정의가 죽었다”(나경원 의원), “이 대통령, 당신은 매국노”(안철수 의원) 등의 비판을 하고 있지만, 이른바 ‘전한길 논란’으로 난장판이 된 국민의힘 입장에서 대여(對與) 투쟁을 진행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면 명단에 국민의힘에서 요구한 야권 인사들도 대거 포함되는 모양새가 나오면서, 비판 동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번 사면 대상엔 야권에서 뇌물·횡령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정찬민·홍문종·심학봉 전 의원 등이 사면됐다. 이들은 앞서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4일 국회 본회의 도중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사면 및 복권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을 때 포함됐다. 

여야의 ‘사면 거래’가 이번에도 재현됐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송 비대위원장은 “당 차원에서 공식 요청하거나 법률적 검토를 진행한 사실은 없다”며 “심려를 끼쳐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사면·복권을 단행하면서 오히려 난감한 처지가 됐다. 이와 관련해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며 “의도가 어쨌든 결과론적으로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