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갈라파고스' 전당대회, '개딸'과 '전한길'에 빠진 여야
정치 용어에 ‘컨벤션(convention) 효과’란 말이 있다. 전당대회와 같은 정치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면서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이다. 더불어민주당 8·2 전당대회는 이재명 정부 들어 첫 여당 대표를 뽑는 행사였다. 중대 이벤트였지만 컨벤션 효과는커녕 관심조차 제대로 끌지 못했다.
한국갤럽의 민주당 대표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7월 1주 차엔 ‘지지 후보가 없다’ 또는 ‘모르겠다’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40%였다. 3주 뒤에 다시 조사해 보니 유보 의견이 41%로 더 늘었다. 친(親)민주당 성향 김어준씨의 ‘여론조사꽃’ 조사도 전당대회에 대한 무관심이 확인됐다. 7월 21일 발표한 당대표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모름·무응답’이 41%였고, 일주일 후 전당대회 직전에는 44%에 달했다.
민주당 당권 경쟁에 국민이 무관심했던 이유는 계엄과 탄핵으로 무너진 정치의 복원보다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친명 인증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당권 주자들은 출마 선언문부터 “이재명과 한 몸처럼 행동하겠다” “이재명의 곁을 지켜주겠다”고 했다. 경선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 눈빛만 봐도 안다”는 식의 ‘명(明)비어천가’가 울려퍼졌다. 과거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전당대회 때마다 당대표 후보들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 추종자’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막상 여당의 자리에 서자 민주당 당권 주자들이 내세운 비전은 ‘용산과 민심의 가교 역할’이 아닌,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했던 ‘용산 출장소’였다.
민주당 대표 후보들이 ‘찐명’ 경쟁에만 몰두한 것은 전당대회 선거인단에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인 권리당원 비율을 작년부터 40%에서 55%로 대폭 늘린 것의 영향이 크다. 개딸을 겨냥한 후보들의 표심 구애는 정치적 내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야당 말살 경쟁으로 이어졌다. 당권을 놓고 불붙은 ‘개딸만의 리그’는 지켜보기 민망한 수준이었고 흥행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전대에 관심 없다’ 응답률 높아
8월 22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관심 있는 국민이 많지 않다. 쇄신파 대표 주자인 한동훈 전 대표의 불참으로 처음부터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민의힘 대표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선 ‘무응답’ 또는 ‘모르겠다’는 유보 의견이 30~40%였다. 출사표를 던진 당권 주자 중에서 지지도가 25%를 넘는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일반 국민은 관심이 저조하지만 당내에선 진흙탕 싸움이 한창이다. ‘친윤 대 반윤’ ‘찬탄 대 반탄’ ‘혁신 대 반혁신’ 등 복합적 대립을 넘어, 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전한길씨 입당을 둘러싸고 ‘친길 대 반길’ 논란까지 더해졌다. 최근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은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혁신 후보’들과 ‘윤(尹)어게인’ 세력의 충돌”이라고 했다. 그는 “여의도연구원 여론조사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한 반성과 사과가 충분했다’는 국민이 23%에 불과하다”며 “정권에 이어 당까지 말아먹으려는 ‘윤어게인’ 세력으로부터 당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전한길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미디어를 뜨겁게 장식한 것도 당권 주자들보다 전씨 관련 소식이었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8월 8일 전당대회 난동 사건 이후 닷새간 온라인 뉴스와 블로그에서 ‘전한길’ 언급량은 2540건이었다. ‘김문수’(2056건)를 비롯해 ‘조경태’(1560건) ‘안철수’(1375건) ‘장동혁’(1349건)보다 많았다. 전씨는 자신의 입당을 알리면서 “나를 품는 자가 당대표, 최고위원이 될 것”이라며 전당대회 개입을 예고했다. 야권에선 “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서 당권 승부를 좌우하는 지지층에 강경 성향만 남았다”며 “극우 스피커로 부상한 전씨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생각은 일반 국민과 크게 달랐다. 이른바 ‘당심과 민심의 괴리’ 현상이다. KSOI가 지난 13일 발표한 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당대표 후보 선호도가 조경태(22.1%), 김문수(16.6%), 장동혁(13.1%), 안철수(12.1%) 순이었다. 그런데 당 지지층과 무당층은 김문수(28.6%), 장동혁(22.3%), 안철수(12.2%), 조경태(10.4%) 순이었다. 다른 조사들도 일반 국민은 조경태 후보가 1위였지만, 당 지지층에선 ‘친윤·친길’ 성향인 김문수·장동혁 후보가 1·2위였다.
국민의힘은 전씨와 같은 극단 세력의 전당대회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선 당대표 선출 방식을 손질했어야 했지만 친윤 지도부는 방관했다. ‘당원투표 80%·국민여론조사 20%’ 대신 민심반영(국민 여론조사)을 최소한 50%로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랬다면 ‘대선에서 참패하더니 달라졌다’며 국민이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당권을 잡기 위해 강성 당심을 노리고 ‘윤어게인’ 경쟁을 벌이는 친윤·친길 후보들도 득표 전략을 민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
2022년 당헌에 명시한 ‘역선택 방지’ 경선룰도 재검토가 필요했다. 이 방식에 따라 경선 여론조사는 당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요즘처럼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한 상황에선 사실상 ‘아스팔트 지지층’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웬만해선 국민의힘을 찍지 않을 진보층은 제외하고, 보수층과 중도층을 대상으로 경선 여론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그럴 경우 역선택도 상당 부분 막으면서 민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중도층과의 접촉면을 넓힌다면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한 당 운영과 정책 개발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중도 성향이 많은 청년층과 수도권에 어필할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뀔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변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사라진 컨벤션 효과
세상과 동떨어진 남태평양의 외딴섬 갈라파고스에 갇힌 것처럼 국민과 단절된 여야(與野)는 전당대회로 지지율이 오르는 컨벤션 효과도 없었다. 국민의힘은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대선 직전 31%였던 지지율이 8월 1주 차에 16%로 반토막 났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지만, 야당이 죽을 쑤는 와중에도 일부 조사에선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지지율이 떨어졌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극단적 대결 정치의 참담한 잔해에서도 여야는 각자 강성 지지층만 의식하며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다. 올해 초 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국민의 4명 중 3명(75%)은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 신뢰도는 조사 때마다 공공기관 가운데 최하위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도 꼴찌 수준이다. 여야에 대해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는 이제 ‘지하실을 뚫고 암반을 깨는’ 수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