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유동성 과잉의 시대 온다
전 세계적 유동성 파티의 서막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년 11월에 중간선거를 치른다.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트럼프의 레임덕이 일찍 찾아오고 공화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기반을 놓치기 쉽다. 따라서 미 트럼프 행정부는 가용할 수 있는 유동성 공급 장치들을 총동원해 증시를 부양하고, 경제주체들의 금리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지지율을 끌어올리고자 할 것이다. 이미 올해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를 겨냥한 유동성 파티를 구상해 왔다.
첫째, 통화정책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에게 지속적으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해왔다. 둘째, 부채한도 증액을 의회에 통과시키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준비했다. 셋째,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방안을 마련했다. 넷째,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면서 유동성 공급과 미국 국채 매입처 확보를 준비했다. 다만 이러한 여러 유동성 공급장치들이 오히려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만들 가능성도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2025년은 피벗의 시대다. 세계 주요국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중립금리를 향해 기준금리를 인하 혹은 인상하는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을 법하다. 미국도 피벗의 시대에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큰 장애물 앞에 망설이는 모습이다. 연준은 지난해 5.50%→4.50%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올해 들어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단행되면서 금리인하 여부를 망설이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무역정책의 불확실성과 무역정책이 미국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이에 트럼프는 전방위적으로 파월을 압박하며,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말에는 연준의 개보수 현장을 방문해 파월의 면전에 대고 날선 발언까지 했지만, 이는 고금리의 책임이 파월에게 있음을 미국 유권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임기가 1년이나 남아 있는 파월 연준의장이 아무리 금리인하 압박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자, 차기 연준의장으로 케빈 워시(Kevin Warsh), 케빈 하셋(Kevin Hassett), 미셸 보우먼(Michelle Bowman) 등을 지목했다. 차기 연준의장으로 거론된 인물들은 독립성을 피력하기보다 금리인하에 협조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2026년 독립성을 스스로 무시하는 새로운 연준의장이 취임할 경우, 물가 불안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연준이 무리하게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행보를 보일 우려가 있다.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도는 깨지고, 연준은 위험한 유동성 공급을 단행하는 일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감세법안(OBBBA) 통과와 부채한도 상향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재정정책 관점에서도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지난 7월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가 통과되고, 부채한도(debt ceiling)가 상향되었다. 2026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제도적 여건을 마련한 셈이다. 미국 정부는 더 많은 부채에 의존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다. 부채한도를 약 5조 달러 상향한 만큼, 미국 정부는 국채 발행을 늘려나갈 전망이다. 미국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글로벌 국채 매입이 감소하고 있는 국면에서 국채 발행이 늘어나게 되면 국채금리가 치솟을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더 악화하고 이자 상환 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 더욱이 국채금리가 높은 상황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기가 부담스러워지는 등 상당히 불안한 요소들을 안고 확장 재정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 정부는 SLR(Supplemen tary Leverage Ratio·보완 레버리지 비율)규제 완화를 통해 주요 은행들의 유동성 공급과 국채 매입을 유도할 것이다. 지난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초대형 은행들인 GSIBs에 SLR 5% 규제를 적용해 왔다.
SLR은 은행의 자본 건전성 지표다.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예금 등을 받으면, 이를 대출 및 국채 매입 등의 형태로 운용한다. SLR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은행이 대출 및 국채 매입을 덜 하도록 제약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더 적극적으로 대출해 주고 국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열어준다는 의미가 된다. SLR 규제가 5~6% 수준에서 3.5~4.25%로 완화됨으로써 은행들이 대출 및 국채 매입을 늘릴 수 있게 된다. 가계나 기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신용을 제공해 주고, 국채 시장에서의 중개 활동이 확대될 환경을 마련한 것이다. 반면 은행들이 자본을 감소시키고 무리한 대출을 이행하게 되며, GSIBs의 자회사에 대한 규제완화가 시스템적 리스크를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미국 정부는 2025년 7월 성공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상당한 유동성 공급장치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발행업체는 매수자에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줌과 동시에 현금을 수취하고, 이를 국채 매입의 방식으로 운용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이 증가할수록 국채 매입 규모가 증가하는 구조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규모는 2023년 1380억달러→2024년 2000억달러→2025년 약 2500억달러로 급증했다. 스테이블코인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사우디아라비아나 한국이 보유한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동성 파티를 즐기기 위한 국채 매입처의 기능을 수행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자체적인 한계가 아니라 어떠한 대외적 변수가 등장할 때 급격히 유동성이 수축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나 2023년 뱅크데믹 현상과 같은 일들이 전개될 때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코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고, 발행업체들은 현금으로 즉각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유동성 장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
‘유동성 파티’를 즐길 것인가,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것인가? 가계는 ‘돈의 이동’을 관찰해야 한다. 유동성이 집중적으로 시장에 공급된다는 것은 자본시장과 자산시장에 활력을 가져다준다는 걸 의미한다. 돈의 이동은 곧 수요의 증가를 의미한다. 돈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뜻한다. 유동성이 집중되는 영역과 섹터를 찾고, 유동성 파티를 즐겨야 할 때다.
위험한 유동성의 시대, 어떻게 대응할까?
다만 파티에 취해 돌연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채권시장 불안 등 위험한 요소들을 모니터링함으로써 대세 하락장을 구분하여 이탈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미국의 국채 불안이 한국에 전이되는 일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 국채금리는 세계 금융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세계 국가들의 대출 금리, 채권 금리,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 등이 미국 국채금리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국채 매도 스케줄을 점검하고, 기관들의 자산운용 면에서 국채 매입 규모와 시점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