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조정위원회가 의료갈등의 중재자 되려면

2025-08-18     이재현 치과의사·변호사
지난해 8월 2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간호사 관련 대자보가 붙어 있다. 간호법이 이날 여야 합의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간호법은 PA(진료지원) 간호사를 법제화해 이들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photo 뉴시스

의료 현장에서 직역 간 업무 범위 분쟁은 오래된 난제다. 초음파 사용, 보톡스 시술, 수술실 PA간호사, 진료보조 범위 등과 관련한 그동안의 갈등은 언론보도와 송사로 이어지며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겼다. 

지난 8월 4일 국회를 통과한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은 이런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업무조정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제도적 전환점일 수 있지만, 성공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다. 이번 표결에 224명의 의원이 참석했고 이 중 210명이 찬성, 5명이 반대, 9명이 기권했다. 의원 다수가 개정안에 찬성했지만, 위원회의 독립성, 전문성이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의 기능 중복 등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반발도 여전하기 때문에 향후 논쟁이 예상된다.

 

면허제도의 배경과 변화

우리나라 보건의료인력의 면허제도는 ‘종별 면허’ 구조를 따른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르면 보건의료인력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한약사, 의료기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물리치료사·치과기공사·치과위생사·작업치료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안경사, 응급구조사, 영양사 등의 면허나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을 한다. 각각은 의료법, 간호법, 약사법,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국민영양관리법 등 개별 법률에 의해 업무 범위가 규정된다.

이러한 제도는 국민 안전과 전문성 보장이라는 원칙에서 출발했다. 1950~1960년대 인력 부족 속에 직역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던 시절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1980년대 이후 의료기술과 진료 분야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전통적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용, 재활, 예방, 데이터 기반 진료 등 신영역이 등장했고, 현장에서는 직역 간 업무가 자연스럽게 겹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제도의 변화 속도가 현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면허제도는 ‘허용된 범위 외 금지’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 새로운 시술이나 장비가 등장하면 필연적으로 법적·규제적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곧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다. 한의사단체는 한방 진단과 치료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초음파 장비를 비롯한 각종 의료기기를 활용하려 하지만, 의사단체는 이를 의료법상 허용되지 않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본다. 

이 문제는 단순히 장비 사용 여부를 넘어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경계 설정, 나아가 법원이 판단하는 ‘진료행위’의 정의와 직결된다. 판례와 행정해석이 시기에 따라 엇갈리면서 갈등은 장기화됐고, 그 사이 환자와 현장은 혼란을 겪었다. 의료기술의 발전 속도와 법령 개정 속도의 간극이 만든 전형적인 사례다.

 

애매모호한 직역 구분

수술실과 같은 고난도 진료 환경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PA(Physician Assistant) 논란이 이어져 왔다. PA간호사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봉합, 수술 보조, 처치 등 고위험 의료행위를 수행하지만, 현행 법령에는 이들의 법적 지위와 업무 범위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그 결과 의료기관마다 자체 매뉴얼과 해석이 달라지고 분쟁 소지가 상존한다. 실제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보건복지부에 접수된 유권해석 요청만 828건에 달했다. 이는 제도의 모호함이 현장에서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직역 간 업무 경계 다툼은 치과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2011년 한 치과의사가 눈가와 미간 주름 개선을 위해 보톡스 시술을 했다가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아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201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를 무죄로 뒤집었다. 대법원은 구강·악안면 부위는 치과 진료 범위에 포함되고, 해당 시술은 치과 교육과 임상현장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의사단체는 면허 제도를 흔드는 것의 위험성과 환자 안전 문제를, 치과계는 해외에서의 허용 사례와 구강·악안면 부위의 전문성을 들어 정당성을 주장하며 판결 이후에도 의견 대립은 남았고 이후 일선 현장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상호간 비방전으로 옮아가기까지 하였다.

이런 분쟁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법령과 현장의 불일치다. 법률이 규정하는 업무 범위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요구되는 역할 사이에는 종종 간극이 존재한다.

둘째, 판례와 행정해석, 그리고 법률 규정 사이의 불일관성이 갈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법원은 사안별로 구체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이는 기존 실무나 행정해석과 상충할 수 있고, 사실관계가 결합된 법률 조문과도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갈등의 이면에는 환자 안전과 직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구조가 자리한다. 각 직역은 환자 안전과 치료의 질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동시에 자신의 전문 영역을 지키고 생계와 직결된 시장을 보호하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이 두 요소가 얽히면 문제 해결은 단순히 법령을 개정하는 수준을 넘어 직역 간 이해를 정교하게 조율하는 복잡한 과제가 된다.

결국 이러한 사례들은 서로 다른 직역이 법적으로 구획된 업무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합의가 부재할 때, 기술 발전과 현장 요구가 곧바로 갈등으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직역 간 이해를 조율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상설적인 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됐다.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스코프 오브 프랙티스 리뷰(Scope of Practice Review)’를 통해 직역별 업무 범위를 주기적으로 재검토한다. 새로운 시술·기술이 등장하면 전문가 패널과 환자 대표가 함께 논의해 가이드라인을 개정한다. 법적 강제성은 약하지만, NHS 가이드라인이 사실상 표준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주(州)별 ‘스코프 오브 프랙티스 로(Scope of Practice Law)’로 직역별 업무 범위를 규정한다. 미국 각 주에서 의료 서비스 제공 범위는 주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데 갈등이 생기면 주 의회 또는 주 보건국 산하 조정위원회가 조율하며, ‘선라이즈/선셋 리뷰(Sunrise/Sunset Review)’라는 절차로 신규 면허나 업무 범위 확대를 심사한다. 공청회와 이해관계자 증언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여러 직역들이 존중하는 상설 조정기구가 이미 자리 잡아, 판례보다는 협의·합의 기반으로 갈등을 풀어가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 업무조정위원회도 참고할 만하다.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를 신설했다. 위원 수는 50~100명.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약사, 의료기사, 영양사, 응급구조사 등 다양한 직역과 시민단체, 노동계, 전문가가 포함된다. 위원회는 직역 간 업무 범위·협업·분담을 심의·조정하고 필요 시 권고한다. 

이 기구가 도입되면 가장 먼저 기대되는 효과는, 분쟁의 중심 무대가 법정이나 언론이 아닌 ‘대화와 협의의 장’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상설 협의 구조가 마련되면 각 직역은 서로의 논리를 직접 마주하고, 현장의 세부 사정을 공유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는 규정의 현실 반영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다학제 협업 문화 확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직역별 단체가 개별적으로 정부나 국회에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권 안에서 공론을 통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의료갈등 해결의 전제조건

그러나 이 제도가 곧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우선 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가 정부 주도로 설계된 만큼 특정 직역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동할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제도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또한 법적 구속력이 미약해 권고안 수준에 머무른다면 실제 현장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위원회의 논의와 결정이 늦어질 경우 새롭게 발생하는 갈등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업무조정위원회가 성공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

첫째, 위원 구성은 단순히 직역별 인원 비율을 맞추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다양한 직역이 고르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표성이 보장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현재 의료 일선에서 가장 넓은 영역을 담당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체 진료 시스템을 이끌어온 것은 의사들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질과 접근성 역시 장기간에 걸친 의사들의 전문적 리더십과 책임감이 뒷받침되어 가능했다. 그런데 직역별 균등대표만을 기계적으로 맞추다 보면 필연적으로 기득권이라는 이유로 의사들의 의사결정권과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직역의 ‘몫’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가장 핵심적이고 복잡한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 전문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의정 갈등에서도 의사들을 기득권 집단으로 상정해 견제하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필수의료·응급의료 인력 부족과 같은 심각한 후폭풍이 발생했다.

둘째, 위원회의 결정이 단순한 권고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논의 결과가 실질적 변화를 만들려면, 필요한 경우 법령 개정이나 행정지침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적 연결고리가 마련돼야 한다. 위원회가 현장의 갈등을 조정하더라도 그 결과가 법과 제도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변화하는 의료기술과 진료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속도를 갖춰야 한다. 신기술이나 새로운 진료 방식이 등장했을 때 이를 적시에 다룰 수 있는 긴급 논의 절차, 그리고 정기적인 제도 점검이 필요하다. 의료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위원회의 대응 속도가 늦으면 오히려 새로운 갈등이 누적될 수 있다. 

직역 간 갈등의 본질은 ‘누가 더 큰 권한을 가지느냐’가 아니다. 환자 안전과 진료의 질이라는 원칙 위에서 경계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면허제도는 국민 신뢰를 담보하는 장치인 만큼 변화의 방향은 신중해야 한다. 이번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선이다. 그러나 상설 조정기구의 탄생은 각 직역이 서로의 논리를 테이블 위에서 마주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기구가 갈등의 심판자가 될지, 또 다른 논쟁의 무대가 될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과 운영 방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