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돈'에 좌절하는 정치 신인들
“돈이 걱정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준비 중인 예비 정치인 A씨(40대 초반, 수도권 시의원 도전)는 벌써부터 선거 자금이 걱정이다. 그는 선거사무실 임대, 선거운동원 관리, 홍보물 제작 등 필수 비용만 따져도 약 40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A씨는 “여기에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일할 수 없어 발생하는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부담은 더 크다”며 “능력 있는 신인이 정치에 진입하기 어려운 ‘높은 벽’이 있다”고 토로했다.
정치 신인들의 ‘돈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돈을 모을 수 있는 유리한 구조지만, 정치 신인들에게 이 벽은 높다. 정치자금 문제는 단순히 개인 부담을 넘어 정치 전반의 공정성과 민주주의 근간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을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제정됐으나, 현실에서는 현역 정치인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 정치 신인들에게 높은 장벽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기득권 유지에 유리하다는 비판이다.
현행 선거법상 후원회 등으로 마련한 정치자금은 정책 개발, 현수막 설치 등 법으로 정해진 용도로만 엄격히 사용할 수 있다. 선거운동 비용으로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받는다. 그래서 정치 신인들은 “실질적인 경비 부담은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이라며 “결국 충분한 자금 없이는 선거 경쟁이 어려워지는 구조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치 신인들은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비를 털거나 인맥에 의존해 자금을 모으고 있으나 한계에 좌절한다.
기존 제도는 ‘그들만의 리그’
기존 정치인들의 경우 돈을 모으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지난 6월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김민석 총리의 ‘출판기념회 축하금’ 문제가 논란이 됐다. 김 총리는 2차례 출판기념회를 통해 2억50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렸으나 법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판기념회 수익은 현행법상 정치자금으로 분류되지 않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되어 모금 한도 및 내역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현역 수도권 시의원 B씨는 “출판기념회는 3선 이상 고위 정치인만 활용 가능한 ‘그들만의 리그’”라며 “초선이나 정치 신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만원도 아깝다’는 분위기에서 대가 없는 후원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정치자금의 비공식 창구로 기능하면서, 자금 출처 세탁 통로가 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 총리의 경우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세비 수입 약 5억1000만원에 비해 지출은 13억원에 이르자, 출판기념회와 축·조의금 수익이라고 해명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출판기념회 축하금은 자금 출처를 숨기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어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국회에서는 출판기념회에서 발생하는 도서 판매 수익을 정치자금에 포함시키고, 판매 가격을 도서 정가로 제한하며, 수입과 지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는 방안이 논의만 되어 왔고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쪼개기 후원’ 편법과 ‘얼굴 없는 돈’ 문제
2004년 ‘오세훈법’ 도입으로 법인·단체의 직접 후원은 금지됐다. 그러나 기업들은 ‘쪼개기 후원’이라는 편법으로 정치자금을 우회 지원한다. 임직원과 가족 명의로 나눠 기부하는 방식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정치자금 중 쪼개기 후원 비중이 최소 1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얼굴 없는 돈’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기득권 세력의 자금 독점을 가속화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5년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이 적발한 ‘쪼개기 후원’ 사건만 120건 이상에 달한다. 2023년에는 대기업 임직원 30여명이 법인을 대신해 분산 기부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현역 수도권 시의원 B씨는 “쪼개기 후원은 실제 후원자를 숨기고 법망을 피해 정치권에 ‘얼굴 없는 돈’을 유입시키는 통로가 됐다”며 “기득권 정치인이 독점하는 후원금으로 신인 정치인들은 경쟁 기회를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과 선관위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쪼개기 후원은 편법이지만 적발이 어려워 현실에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한 대형 기업 임원은 “회사 내부적으로 ‘후원 명단’은 비밀이며, 법적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복잡한 절차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정치자금 회계자료는 선관위 사무실에서 스캔 이미지 형태로만 열람 가능하고, 검색 기능이 없어 이용자 불편이 크다. 복사와 사진 촬영도 금지돼 있으며, 열람 기간은 3개월로 제한된다. 헌법재판소는 ‘과도하게 짧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후원자 명단 공개가 논의되었으나 정치 활동을 제한한다는 반대가 있었다. 정치 참여의 자유와 개인 보호를 위해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후원자 공개가 정치적 낙인, 보복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반발이 컸다. 야당에 후원금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심리적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