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수상한 여론조사', 민주주의를 흔들다

2025-09-21     홍영림 전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방송인 김어준씨가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계엄 당시 암살조 제보를 폭로한 뒤 자리를 이석하고 있다. photo 뉴스1

권력자가 “국민이 원한다”는 말로 기존 질서와 제도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진다. 여기서 ‘국민’은 실제로는 권력을 지지하는 집단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역사는 ‘국민’을 내세워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통치를 ‘대중 독재’라 기록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9월 15일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제기한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최고 권력은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내란 특별재판부 논란에 대해서도 “그게 무슨 위헌이냐”며 “국민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주요 사안마다 ‘국민 여론’을 앞세우며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특별재판부 이슈는 김어준의 ‘수상한 여론조사’가 점화시켰다. 지난 7월 28일 그가 운영하는 ‘여론조사꽃’은 특별재판부 찬성이 65%라고 발표했고, 네 차례나 조사를 반복하며 찬성 여론을 부각시켰다. 이후 8월 28일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특별재판부 신속 추진’을 결의했다. 김병기 원내대표(9월 2일), 정청래 대표(9월 5일), 이 대통령(9월 11일)도 차례로 동조했다.

조사방법론 기본 원칙도 무시

그러나 여론조사꽃 문항은 편향적이었다. ‘내란사건 수사를 기존 검사가 아닌 특검이 하듯, 내란사건 재판도 기존 사법부가 아닌 특별재판부가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공정성을 갖춘 조사라면 ‘사법부 독립을 해치는 위헌적 조치’라는 반대 논거도 함께 제시하고, 어느 쪽 주장에 동의하는지 물었어야 했다. ‘질문은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조사 방법론의 기본 원칙을 무시했다.

결론을 정해놓고 응답을 유도하는 방식은 반복됐다. 지난 8월엔 ‘650만원 룸살롱 접대 의혹을 받는 지귀연 판사를 대법원의 인사조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이 있었다. 구체적 사실관계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650만원 룸살롱’이란 단어로 응답자를 자극했다. 2023년 2월에는 

‘1월 무역적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경제성장률이 IMF 이후 최초로 일본에 역전당했다. 현 정부의 경제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란 조사도 있었다. ‘사상 최고치’ ‘일본에 역전’ 등 부정적 표현을 나열해 놓고 윤석열 정부의 능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매주 정례조사도 마찬가지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거나 현 정권에 유리한 주제는 반복적으로 다뤘다. 반면 불리한 이슈는 아예 빠졌다. 특검과 윤 전 대통령 부부 관련 조사는 빈번했지만, 조국 전 장관이 포함된 8·15 특별사면과 표절·갑질 논란이 제기된 이진숙·강선우 전 장관 후보자 관련 조사는 없었다. 

‘부정선거론’ ‘세월호 고의 침몰설’ ‘생태탕’ 등 가짜뉴스 논란을 일으킨 김어준은 이제 ‘여론조사 정치’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읽는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선전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따르면 여론조사꽃이 2022년 10월 첫 조사 이후 발표한 정치·선거 조사가 616건. 평균 1.8일에 한 번꼴이다. 한국갤럽 297건, 리얼미터 264건, 전국지표조사(NBS) 83건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김어준은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다음 날 “다시는 여론조사에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도록 여론조사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맞춤형 설문과 대규모 물량 공세로 가스라이팅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메이저 조사회사와의 괴리가 뚜렷했던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3년간 257차례 정례조사의 정당 지지율에서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됐던 2024년 7월 3주 딱 한 번을 제외하면 줄곧 민주당이 1위였다. 김남국 코인 사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민주당 악재가 겹쳤던 2023년 5월에도 한국갤럽(35% 대 32%)과 NBS(32% 대 29%)는 국민의힘이 앞섰지만, 여론조사꽃(32.3% 대 41.0%)은 민주당이 앞섰다. 여론조사꽃의 민주당 지지율은 다른 조사들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높았다.

선거 때 개표 결과와 크게 다른 사례도 잦았다. 지난해 10월 부산 금정구청장 재보궐선거의 사전투표 첫날 발표한 조사에선 민주당 후보가 3.2%포인트 앞섰다. 그런데 개표함을 열어보니 국민의힘 후보가 20%포인트나 이겼다. 22대 총선 주요 격전지 예측도 빗나갔다. 부산 해운대갑의 경우 사전조사는 민주당 후보가 9.1%포인트 앞섰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로 국민의힘 후보의 9.1%포인트 차 승리였다.

 

정치공학의 흉기로 변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조사꽃이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의 전형이라고 한다. 조사회사 성향에 따라 응답자 반응이 달라지면서 결과가 편향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 국민에게도 ‘꽃’이란 특이한 명칭 탓에 김어준의 조사회사란 게 널리 퍼져 있다. 김어준에게 거부감이 있으면 “여론조사꽃이 실시하는 조사”란 전화 멘트를 듣는 순간 끊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통계학회장 출신 김영원 숙명여대 교수는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여론조사꽃 조사에는 진보 성향 응답자가 다수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심리학에는 ‘환상적 진실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거짓 정보라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비판적 사고가 무뎌지고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이다. 이 원리를 극적으로 활용한 인물이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였다. 그는 라디오와 영화 같은 매체를 활용해 반복적 메시지로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려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괴벨스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가짜뉴스 같은 수상한 여론조사의 물량 폭격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이러한 편향을 제어할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여심위는 정당이나 후보 지지율처럼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항목만 관리하고, 일반 정치 현안 조사의 질문 편향이나 조사 남발은 사실상 사각지대다. ‘하우스 이펙트’ 같은 왜곡 현상도 막기 어렵다. 여론조사꽃을 우군으로 둔 여당은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못 느끼겠지만, 극우 진영 일각에서도 규제의 빈틈을 파고들며 ‘맞춤형 조사 결과’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여론조사는 정치공학의 흉기가 될 것이다.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나침반이어야 한다. 정치와 결탁한 여론조사는 나침반 바늘이 심각하게 흔들린다. 미국 저널리스트 대럴 허프는 “통계에 속지 않기 위해선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지 의심해 보라”고 했다. 왜곡된 나침반에 길을 맡기는 순간 민주주의는 방향을 잃고 권력에 휘둘린다.(여론조사 자료는 여심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