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가(MASGA) 위해 한국형 차기 구축함 서둘러야"

[인터뷰] 이병권 전 해군 군수사령관

2025-09-21     이동훈 기자
이병권 전 해군 군수사령관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총사업비 7조8000억원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이재명 정부 들어 또다시 암초를 만났다. 지난 2년간 여러 법적 논란으로 사업이 차일피일 지연됐는데, 당초 9월 18일 방위사업기획 분과위를 열어 사업방식을 결정하려던 방위사업청이 “KDDX 사업 관련 추가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또다시 결정을 미루면서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경쟁과 함께 대만해협을 둘러싼 동북아 긴장이 고조되면서, KDDX 사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특히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측이 제안한 ‘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와 한·미 간 ‘함정 MRO(유지보수운영)’ 협업 확대를 위해서도 KDDX 사업을 반드시 성사시켜 ‘K-조선’의 기술력을 대내외에 다시 한번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오션 필리조선소를 직접 찾아 한·미 간 조선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바있다.  

이병권 전 해군 군수사령관(예비역 해군 소장)은 ‘국산화된 미니 이지스함’을 표방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을 초기 구상한 주역이다. 2012년 합동참모본부(합참) 전력기획처장 시절,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에 ‘KDDX’란 명칭을 직접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KDDX 사업이 지연되면서 조기 전력화에 차질이 빚어지자 그의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2018년 전역 후 아주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북대 특임교수(방위산업융합학부)로 있으며 최근 ‘4차 산업혁명과 민군융합(CMF)’이란 국방서적을 번역 출간하기도 한 이 전 사령관은 “지난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봤듯이 국가안보와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KDDX 사업을 더 이상 지체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라며 “듀얼야드 공정배분 방식을 채택해 KDDX 사업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KDDX는 단순한 구축함 사업이 아니라 해양안보와 조선산업 전략의 핵심”이란 말도 덧붙였다. 

다음은 지난 9월 16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만난 그와의 일문일답.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8월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국 해양청 발주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의 명명식에 참석해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대통령 오른쪽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photo 뉴스1

-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왜 시급한가. “지난 2년간 군사기밀 유출, 절차 공방, 추진방식 논쟁 등으로 사업이 한동안 멈췄다. 국가안보와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 이상의 지체는 심각한 위험이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과 동북아 해양갈등이 격화되는 현실에서 해군력 강화가 시급하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 이후 ‘마스가’ 프로젝트가 전략적 동력이 되면서 조선·방산업은 이제 한·미 경제협력의 핵심 축이 됐다. 이를 실질화하려면 국내 조선·방산업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 KDDX 초기 구상을 하고 직접 이름을 붙였다고. “KDDX는 통합 전기 추진, 국산 통합 마스트, 듀얼밴드 AESA(능동형 전자식 위상배열 레이더)를 탑재한 차세대 국산 구축함이다. 2012년 합참 전력기획처장으로 있을 때, KDX-I/II 구축함의 후속함으로 세종대왕급 이지스함보다 작지만 오는 2030년대 주력함이 될 국산화된 미니 이지스함 개념을 수립했다. ‘KDDX’라는 명칭도 내가 정했다. 이후 중기소요도 확정했지만, 건조가 미뤄진 건 안타깝다.”

- 방위사업추진위가 또다시 결정을 미뤘다. “신임 안규백 국방장관 체제에서 열릴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KDDX의 향배를 가를 분수령이었다. 단순히 ‘선도함의 상세설계 및 건조계획’ 심의를 넘어 후속함 건조까지 포함하는 종합 추진전략을 의결해야 한다. 이미 개념설계(한화오션)와 기본설계(HD현대중공업)가 완료됐다. 전기 추진·자동화·스마트 첨단함정 등 미래 지향적 기준선이 마련된 만큼,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일정과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실행 프레임워크가 절실하다.”

- 지연된 사업 일정을 앞당길 방법은. “KDDX 6척을 Batch-I(3척), Batch-Ⅱ(3척)로 나눈 뒤, 듀얼야드 공정배분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Batch-I은 현 기준선 기반으로 조기에 상세설계와 건조를 시작해 오는 2030년 최초 작전운용능력(IOC)을 확보하고, Batch-II는 동일 기준선을 유지하면서 무인기 운용, AI(인공지능) 기반 국산장비 등 검증된 항목을 선별 반영해 2030년대 중반까지 전력화하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두 조선소가 교대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연속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예컨대 Batch-I의 1번함과 3번함을 한 조선소에서 맡고, 다른 업체는 2번 업체가 맡는 식이다. 이후 Batch-Ⅱ에서는 순서를 바꾸는 식이다.”

- 두 방산업체의 일감 나눠 먹기 아닌가. “불필요한 출혈경쟁을 막고, 국내 조선·방산산업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두 조선소 모두를 생산능력을 갖춘 방산업체로 지정한 바 있다. 두 조선소 모두 이지스함 건조 경험도 있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분할수의계약과 복수낙찰제도 조항은 복수 업체 계약을 허용한다. 방추위는 사업추진 방식과 계약구조를 심의할 권한이 있다. 합리적인 의결을 갖춘다면 현실적 실행이 가능하다.”

- 해외에도 비슷한 방식이 있었나. “미 해군이 70척 이상 운용하는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을 ‘제너럴 다이내믹스 배스 아이언웍스’사와 ‘노스롭 그루먼 잉걸스 조선’에 각각 배분해 듀얼야드 방식으로 건조했다. 알레이 버크급은 우리 해군의 첫 이지스함인 세종대왕급 구축함과 비슷한 함정이다. 일본 해상자위대도 조선방산업 기반 유지를 위해 미쓰비시중공업과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 두 조선소가 분담해 재정적 안정성을 담보하는 방산 계약 모델을 운영 중이다. 우리도 이 같은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이는 조선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K-방산’의 대외 신뢰도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