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네팔 청년들..."네팔 혁명은 공산당 부정부패 때문..."

2025-09-27     이성현 기자
지난 10일 네팔 카트만두에 위치한 정부 부처 싱하 두르바르가 시위대에 의해 불타고 있다. photo 뉴시스

핵심은 SNS 차단이 아닌 부패였고, 폭력의 임계점은 학생들에게 겨눠진 총구였다. 행복지수 1위 국가로 불리던 네팔의 2025년 9월은 핏빛 폭력으로 물들었다.

비폭력을 중시해온 힌두교와 불교의 나라에서,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체제 전복을 외치며 의회와 대통령실 건물을 불태우고, 총리 부부를 구타했다. 왜 네팔의 젊은이들은 이토록 분노했을까.

유혈시위의 자세한 내막을 듣기 위해 주간조선은 지난 23·24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한 카페에서 한국외대 국제학부에 재학 중인 네 명의 네팔 유학생을 만났다. 그들 목소리에는 부패와 세습 특권에 대한 분노, 국가 폭력에 대한 충격, 그리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뒤섞여 있었다.

학생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공산·사회주의 집권당의 부패를 꼽았다. 한국외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라마 사랄라 양은 “2008년 왕정 종료 후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국가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며 “하지만 15년이 넘도록 세 거대정당(네팔 공산당, 네팔 의회당, 네팔 사회주의인민당)이 의석 과반수를 번갈아가며 차지해왔다”고 전했다.

2학년 타파 사우라브 군은 “네팔 총리 월급은 한화 70~8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국민과 반대로 네포 키즈(Nepo Kids, 정치인·유명인의 자녀라는 뜻의 신조어)는 SNS에 각종 명품을 두르고 사치를 부린다”며 “네포 키즈의 사치가 정치 부패를 본격적으로 의심하게 만든 도화선”이라고 주장했다.

2학년 카드카 스웨타 양은 “정부의 SNS 차단이 기존 외신 보도처럼 혁명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니다”라면서 “다만 그간 쌓여온 의심과 분노를 폭발시킨 결정적인 계기”라고 했다. 스웨타 양은 “경제 불황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해외로 떠나 네팔 내 해외 거주 구성원이 있는 가구 비율이 20%가 넘는다”며 “SNS를 ‘네포 키즈에 대한 의심과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 방어’라는 명분으로 봉쇄하는 것은 가족과의 유일한 연결선을 끊어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1학년 구룽 아심 군은 “혁명 또한 처음에는 평화로웠으나, 경찰이 학생에게 발포하고, 최루탄을 뿌리면서 폭력적으로 그 국면이 전환됐다”고 말했다. 스웨타 양은 “혁명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정부는 통행금지령을 내렸는데, 1996년부터 10년간 진행됐던 네팔 내전 때도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고 1만명 넘게 사망했다”며 “부모님께서 그 순간 내전의 아픔이 떠올라 무서웠다고 말씀하셨다”며 말했다.

반면 사랄라 양은 “어머니가 경찰이시고, 시위 진압 현장에도 투입됐다”며 “이번 혁명이 10년이 넘는 경찰 생활 중 가장 격렬하고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70여명이 사망한 반정부 유혈시위로 공산당 연립정권이 무너지고 의회가 해산됨으로써 혁명은 일단락됐다. 지난 12일에는 네팔 최초 여성 대법원장 출신 무소속 수실라 카르키가 신임 총리로 취임했다. 네팔 최초 여성 총리다.

아심 군은 “수실라 카르키 현 총리는 예부터 부패 정권에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라며 “취임하자마자 재외 국민 투표권 부여 법안을 추진 중인데, 새 정권의 산뜻한 출발로 보인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