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열풍, 주사 한방에 담긴 우리 시대의 '웃픈' 자화상

2025-09-27     권아현 기자
서울 강남구 한 약국에서 약사가 입고된 비만치료제 ‘삭센다’를 정리하고 있다. photo 뉴스1

먹고살 만해지면서 ‘날씬한 몸’이 미덕이 됐다. 불과 100년도 안 된 변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건강의 기준은 단순했다. “잘 먹고 많이 움직이기만 하면 건강하다”는 인식 아래, 통통한 체형도 건강한 체형으로 여겨졌다. 국민체조와 에어로빅이 대세였고, 공원의 철봉·평행봉이 대표적인 운동기구였다. 사람들은 운동복이 아닌 일상복 차림으로 운동장이나 공원에 모여 몸을 풀었다. 헬스클럽은 일부 체육관과 호텔에만 있었으며, 건강기능식품이나 체계적인 식단 개념도 거의 없었다.

먹고살 만해지는 사이 한국인의 몸도 변했다. 일례로 1953년부터 2000년까지 남성 평균키는 7㎝가 자라고 체중도 8㎏ 가까이 늘었다. 1980년대에는 육류 소비가 많이 증가하고, 외식산업이 붐을 이뤘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스트푸드점인 롯데리아가 들어선 것도 1979년이다. 식생활 구조가 서구화되고, 서구 패션의 영향이 커지면서, 미적 기준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다이어트 시장도 조금씩 커졌다.

이제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시대다. 불과 100년간 대략 3만가지의 다이어트 방법이 유행하고 소멸했다고 한다. 흡연 다이어트, 분유 다이어트 같은 위험하고 황당한 방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의학이 발전하면서 과학기술과 데이터에 기반을 둔 똑똑한 다이어트가 유행이다.

특히 당뇨병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삭센다(성분 리라글루타이드), 위고비(성분 세마글루티드) 등이 비만치료제로 발전하면서 ‘비만 주사’ 열풍이 뜨겁다. 식욕 자체를 차단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고, ‘뱃살 빼는 마법의 주사’라고 불린다. 하지만 급격한 확산 이면에는 품귀 현상과 무분별한 처방, 그리고 외모 강박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라는 그림자도 짙다. 특히 ‘날씬한 몸’을 넘어 ‘깡마른 몸’을 목표로 하는 10~30대 여성들이 치료 목적이 아닌 단순 미용 목적으로 처방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가장 유행하는 건 지난 8월 말 국내에 출시된 ‘마운자로’(성분 티르제파타이드)다. 출시 직후부터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이 주사는 단 12일 만에 1만8579건이 처방됐다. 이는 지난해 출시된 ‘위고비’의 한 달 처방 건수(약 1만1000건)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임상시험에서 마운자로가 위고비보다 더 큰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고, 초기 용량 가격을 위고비보다 낮게 설정한 점이 처방 급증의 배경으로 설명된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모두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 지수, 즉 BMI가 30이 넘거나 27 이상이면서 고혈압이나 제2형 당뇨병 등 한 가지 이상의 질환이 동반될 때 처방받을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또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로, 한 달에 수십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구토나 소화불량 같은 위장 관련 질환이나 급성 췌장염 등의 부작용도 존재한다. 그러나 처방 기준에 강제성이 없어 사실상 의사의 양심에 기대야 하는 데다, 무조건 살을 빼주는 약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처방이 폭증하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내과의사는 “처방 기준이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다 보니, 사실상 의사의 양심에만 기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위고비·마운자로 품귀현상… “미국은 처방기준 훨씬 엄격”

지난 9월 22일 서울 목동의 한 약국에서 기자는 구매자를 가장해 “여기 마운자로가 있느냐”며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냐”고 물었다. 약사는 “마운자로는 없다. 대신 위고비가 ○○만원으로 이 근방에서는 여기가 가격이 가장 싸다. 처방전 없이는 구매가 불가하니 바로 위 병원에서 받아오시면 된다”고 답했다. 그의 답변에서 이 주사가 치료제라기보다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건강 보조 주사처럼 가볍게 여겨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엔 위고비를 싸게 처방해 준다고 광고하고 있는 서울 강서구의 한 가정의학과를 찾아봤다. 의사는 위고비 처방 상담을 왔다는 기자에게 BMI 지수 측정은커녕 키와 몸무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부작용이 뭐냐”라고 묻자, “초반 투약 때 메스꺼울 수 있는데, 그것도 적응이 되면 괜찮을 거다”라는 두루뭉술한 답이 돌아왔다. “처음 투약해보는 것인데, 용량은 어떻게 정해야 하냐”라는 질문에 의사는 “첫 단계인 0.25㎎으로 보통 시작한다. 다만 1㎎ 등 처음부터 고용량을 맞는 경우도 있다”라고 답했다. 구매자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3개월간 위고비를 투약했다는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BMI 지수가 30을 넘지 않지만, 의사가 오히려 고혈압 치료를 목적으로 위고비를 권했다”며 “(같은 회사의) 주변 사람들도 꽤 많이 맞는다. 쇼핑중독을 없애 주는 등 다른 효과도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미성년자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마름과 거식증이 유행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비만치료제 시장 경쟁이 격화하면서 업계에서는 처방 대상을 청소년층으로까지 넓히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12세 이상〜18세 미만 비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운자로 주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 시험 2건을 진행 중이다. 각 임상은 2023년, 2024년 시작됐다. 이들 임상은 각각 2029년, 2030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릴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마운자로의 청소년 투여 적응증 허가를 받으면 우리나라 등에서도 청소년 처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지난 9월 23일 유튜브, 카카오톡 정보방 등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위고비 대용량을 사서 나눠서 맞으면 싸게 살 수 있다’ ‘위고비 양도받는 법’ 등 오남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비만치료제가 아닌 ‘다이어트 주사제’로 여러 확인되지 않은 부수적인 효과들까지도 언론이 자주 소개하고, 유명 연예인, 셀럽들이 비만 주사로 살을 뺐다는 내용이 퍼지면서 무분별한 유행이 우려되고 있다.

마운자로의 본고장이자 위고비가 가장 먼저, 강력하게 유행했던 미국에서는 처방 기준이 훨씬 엄격하다. 미국의 한 병원에서 약사로 일하는 30대 교포 황모씨는 “미국에서도 엄청난 유행이 계속되고 있고, 품귀현상으로 당뇨 환자에게 오히려 수급이 안 되기도 한다”며 “미국에서는 BMI지수를 성별에 따라 철저하게 확인하고, 기준 BMI지수에 미달하는, 비만환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처방이 절대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치료 목적인 경우라도 부작용과 요요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 9월 2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삭센다와 위고비는 최근 5년간 111만건이 처방됐는데, 이 중 2022년부터 지난 3월까지 보고된 이상사례는 1708건(삭센다 1565건, 위고비 143건)에 달한다. 주요 증상은 구역질과 구토, 두통, 주사 부위 반응 등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비만 주사제를 끊은 후 1년 내 요요현상이 나타난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