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X세대'와 BTS의 'MZ세대'는 무엇이 다른가?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건전지를 갈아 끼운 워크맨을 귀에 꽂고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트에 맞춰 몸도 흔들면서 방배동 카페골목을 걷는다. 레코드 가게에 들러 최신가요 모음 앨범 카세트테이프를 뒤적거리면서 무스를 발라 넘긴 머리를 쓸어넘긴다.
무릎이 찢어진 통 큰 청바지는 신발이 안 보일 정도로 덮었고, 선글라스는 밤에도 벗지 않는다. X세대의 패션은 “나는 다르다”는 과감한 나만의 ‘자유선언’이다. 토큰을 내고 버스에 올라 압구정 로데오거리 록카페로 향한다. 친구들은 서로 “야, 뽀대(폼) 난다”고 따봉(엄지 척)을 날린다. 늦은 친구에게 공중전화로 삐삐(무선호출기)를 친다.
“Cos ah-ah- I’m in the stars tonight”
아이폰에 무선 에어팟을 연결하고 방탄소년단(BTS)의 인기곡인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듣다가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에 따라 최근 인기 해외 팝송도 확인하며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업데이트한다. 앞머리 컬 유지를 위해 구루뿌(헤어롤)를 맨 채 홍대 거리를 걷는다. 짧고 딱 맞는 크롭티에 길고 와이드한 팬츠를 믹스매치하니 오늘 따라 유난히 내 몸매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아 자신감도 덩달아 오른다. 힙한 장소에서 예쁘게 찍은 셀카(셀피)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인생네컷 사진도 남긴다.
MZ세대의 패션은 ‘나는 나답게’란 표현이자 공감적 소통을 통한 ‘집단 연결’이다. 기후동행카드로 지하철과 버스를 최적 노선으로 환승해가며 압구정 로데오 골목으로 이동하면서, 친구들과 소셜미디어(SNS)로 실시간 연락하며 갈 맛집을 고른다. 만난 김에 틱톡에서 유행하는 재미있는 챌린지 영상을 따라 찍고 다시 올려 반응을 즐긴다.
자유분방한 ‘개인 중심’ X세대
X세대(1965~1980년생)는 베이비붐세대(1955~1964년생) 다음 세대로, 우리 중심의 마지막 세대이자 ‘개인’ 중심의 첫 세대다. 이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황금기를 이끌고 사회 변화를 주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배꼽티(크롭티)와 청바지(데님), 염색, 농구와 야구, 홍콩영화, PC통신, 무선호출기 등으로 상징된다. ‘신인류’ 혹은 ‘세기말(Y2K)’로 지칭된 이들은 파격적인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기존 질서에 저항하면서 자유롭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tvN 인기 방영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덕선이(혜리 분)와 택이(박보검 분)·정환(류준열 분)·동룡(이동휘 분) 등 그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학창시절 모습이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94년 MBC 뉴스데스크 길거리 인터뷰에서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베레모와 배꼽티를 착용한 한 젊은 여성이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구요(입고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라며 그 시대 X세대 특유의 말투로 말하는 보도 영상도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 모습은 요즘 젊은 층인 MZ세대의 공감을 자아내면서, 최근 온라인과 SNS에서 ‘조크든요’라는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이러한 소비문화와 함께, 정치적으로는 이른바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이 대학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7년 1월 당시 서울대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 사건, 연세대 이한열 학생의 최루탄 피격 사건으로 6월 민주항쟁 이후 ‘호헌철폐’(대통령 직선제 개헌)로 민주화가 본격 진전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0년대 디지털 전환기를 경험하면서 조직 중심의 가치와 생존을 위해 순응하는 면모도 보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이들은 현재 40~50대 중장년층에 접어들어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나답게 ‘미닝아웃’ MZ세대
X세대의 청춘이 흘러가고 기성세대가 되면서, 현재 청년층은 MZ세대가 메우고 있다. 넓게는 1981년생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디지털 환경에 매우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X세대보다 개인적인 성향과 개성이 더욱 다양해졌다. 2000년대 1020 문화를 이끈 밀레니얼세대(1981~1996년)와, 디지털 네이티브(원주민)인 Z세대(1997~2012년생)로 구분하기도 한다. 밀레니얼세대는 X세대와 Z세대 사이 ‘낀 세대’라고 해서 Y세대라고도 한다.
이들은 온라인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최신 트렌드부터 과거 아날로그 감성까지 소화한다. 대중가요의 경우 H.O.T.와 S.E.S.부터 소녀시대와 빅뱅, 요즘 방탄소년단(BTS)과 에스파까지 폭넓은 음악 취향을, 고전 TV예능 ‘무한도전’부터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방대한 문화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한다. SNS를 통한 ‘쇼츠’나 ‘릴스’ 등 다양한 쇼트폼 콘텐츠가 글로벌 밈과 유행을 주도한다. 패션은 스키니진과 레깅스부터 과거 X세대와 비슷한 크롭티와 통바지까지 다양한 취향에 따른 ‘추구미’ 범위가 넓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국내 프로야구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로 대표되는 해외 축구와 세계 4대 테니스 대회 등 스포츠 관심 분야도 넓다.
MZ세대의 연애와 결혼관은 기존 세대의 자유로움에 더해 자기결정적인 성향이 강해졌다. 고전적인 남녀 소개팅 혹은 미팅보다 다양한 콘텐츠와 개방성을 가미한 ‘소셜링’, 수동적인 이른바 ‘부킹’ 시스템의 나이트클럽 대신 능동적인 ‘헌팅’ 위주의 라운지클럽으로 지각변동이 이뤄졌다.
이들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중시하고, 소유보다는 공유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적 가치나 특별한 의미가 담긴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미닝아웃(meaning out·신념+커밍아웃)’과 동시에,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고가의 명품과 한정판을 구매하는 ‘플렉스(flex·재력과시)’ 소비 형태도 보인다. 더욱 다양해진 개성과 취향을 바탕으로 나 자신의 현재 즐거움과 자기만족을 중시한다. 그러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과 코인(가상자산) 투자 등 재테크에도 관심이 많고, 정치·사회 이슈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에 민감해 영향력도 발휘한다.
다른 듯 닮은, 갈등과 가교 사이
1980~1990년대 X세대와 요즘 MZ세대는 다른 듯 닮아 있다. 대학가 혹은 공연장 떼창 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고, 대학 축제기간 일일주점은 과거 ‘일일호프’에서 ‘일일클럽’으로 형태만 바뀌고 본질은 유사하다. 나이키 신발과 청바지는 여전히 보편적인 ‘기본템’이다.
세대 말투와 유행어도 마찬가지다. X세대는 TV와 라디오 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들리는 “짱(최고)” “지대(매우) 좋다” “~그든요(거든+요)” “~했걸랑요(했거든+요)” 등을 유행어처럼 썼다. MZ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쌉인정(완전 인정)” “개웃(엄청 웃겨)” “어쩔티비(어쩌라고, 가서 TV나 봐)” “~했누(했네)” 등 줄임말과 신조어를 활발하게 생산하고 사용한다. 레트로(복고풍)를 넘어 뉴트로(new+retro) 문화로 옛 세대는 향수를, 요즘 세대는 신선함을 느끼며 공감하고 소통한다. TV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1990년대 댄스곡을 최근 감성으로 재해석해 히트 친 혼성 3인조 ‘싹쓰리’ 신드롬이 대표적이다.
달라진 건 세월의 흐름에 따른 계층 이동과 사회적 역할이다. 베이비붐세대가 기성세대일 때 X세대가 이에 맞선 신세대였지만, 어느덧 X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서 MZ세대에게 젊음을 물려줬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대중문화가 젊음을 설명하는 ‘거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기술 발전에 따라 그 거울이 ‘브라운관’ 화면에서 ‘스마트폰’ 액정으로 변화했을 뿐이다. “요즘 것들” “꼰대”라면서 소통을 포기하면 세대 갈등만 커진다. X세대와 MZ가 서로 이해하며 우리 사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잇는 ‘가교’ 역할을 기대해본다.